까마귀 윤 한 로치운 하늘 구덩 때갈스럽게 우짖는다마치 제 밥숟갈 동가리라도 훔쳐간다는 듯내 느닷없는 도둑놈 되어이렇게 설맑고이렇게 값지고이렇게 기쁠 줄이야삼시세끼 송장 파먹는가막 잡놈다 쉬어터진, 퉤퉤 재수 옴 붙은 그 두어 마디밭 갈다 찾은숨겨진 보물일 줄이야시작 메모헐벗고 메마른 겨울 산 구덩, 느닷없이 전나무 삭정 가지 쪽에서 쉰 목소리로 우는 까마귀. 마치 제 밥숟가락 동가리나 훔쳐가는 듯 때갈스럽게 울부짖는다. 정나미가 뚝 떨어지는 듯 역겨우면서도 이보다 더 깨끗한 놈 있을까 싶다. 새겨볼수록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
홍동지 윤 한 로뭐 먹냐 해 먹는다 달도 먹지 그래 장닭 볏처럼 온통 붉지뭐 입냐훌렁 벗지 아주 발가벗지뭐 하냐똥 누다가 잠자다가 똥 누지뭐 배냐일자무식일레 천하에 에미 애비 모르는 후레자식이다뭐 잡았나왜 용강 *이시미란 놈애개개 한주먹에 때려 뉘였다어딜 가남꼴고 지고 꼴고 대고 저기 평안도 평안 감사 대부인네 상여 매라게 어찌 매남아따 귀찮시러 울룩불룩 불두덩이로 번쩍 받쳐들고 말지라그럼 세상 뭬이 무서울 게 있더나송사리 떼 경장히 무섭단다 이이, 시냇물 건너다가 내 불알 땡금줄 깨물려 혼났구나* 이시미 : 꼭두각시 놀음에 나오는
배론 * 윤 한 로코는 다 깎아 먹고언청이 굵은 금만 죽 갈라져산 중턱께 걸터앉았다비리직직하니엄장 큰 만무방이쥐뿔도 없는 주제련만때갈스럽지만은않아외눈박이 눈 뜬 채번연히 듣고 있다골짜구니 배 산꼭대기까지 오르는 소리랄까파란 하늘 아래 떡대 바우 움푹 팬 옆탱구리사다리나 한 대 척, 걸쳐놨으면* 배론 : 충청북도 제천 봉양에 천주교 성지가 있는 골짜기로 지형이 마치 배 밑바닥 모양 같이 생겨서 배론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산골짜기에는 이렇게 생긴 곳들이 많다. 시작 메모1930년 작가 김유정 소설은 재미있고 슬프고 아름답다. ‘
영동 윤 한 로할퀴고 멍들고툭 튀어나온 마빡아무도 닮지 않아허구한 날 골목 구석쟁이에 꾸물꾸물 감꼭지 사과껍데기 주워먹어이수교 굴다리 밑주워왔단 모개(木瓜)야탑삭부리 아버지만이 품에 꼬옥 끌어안고 이 세상에 가장 이쁘다두만내 상주로 전학 갔다 다시 온 새 여름지나 가을된 새수양 딸 가고 없어라 손가락 짭쫄하던 우리 모개밤마다 황간 쪽 하늘 먼 먼 뭇별 되었다시작 메모 학교에서 울퉁불퉁한 모과 한 개를 책상 위에 두고 갔다. 올가을에는 많이 열리지 않아 한 개씩 밖에 못준다고 하면서. 아무려나. 멍든 자국, 좀먹은 자국, 뭣이 할퀸
선종(善終) 윤 한 로우리 외숙모 꼭 병신춤 추는 공옥진 여사처럼 생겼는데곱사등이 앉은뱅이그딴 춤 하나 못추셨더라늘 밥상다리 놀 듯 절룩거리기만 할 뿐 선진병원 요양실에찾는 자식도 동무도 없이 그저아침마다 머리 깨끗이 빗고 앉았다가짓무르고 눈꼽낀 눈 뚜릿뚜릿 사람들만 훑더니 천장만 훑더니얼마나 외로우셨을까 마침내 안경 벗어 밥을 떠 먹으시네그걸 숟가락이라 여기셨는감아아, 시인이시구나 우리 외숙모 가시기 전 대세(代洗)를 드리니 곧 선종(善終)하셨다 전아가다 외숙모 이제 하늘의 별보다도 병신춤 공옥진 여사보다도 훨씬 이쁘셔라시작 메모
마돈걸의 ‘씻으라’는 명령에 따라, 유세련은 김이 뿌옇게 서린 욕실에서 샤워를 하였다. 유세련은 욕실에 들어가서야 팬티를 벗었는데, 없이 산다고 여자 앞에서 알몸으로 나돌아 다니지는 않는다는 면모를 보여준 것이었다. 청결하고 비누 향기가 나는 남자의 몸을 좋아하는 여자들이 있는가 하면 땀내 나는 야성적인 몸에 집착하는 여자가 있다는 것을 유세련은 잘 알고 있었다. 마돈걸은 형편에 따라,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청결에서 땀내까지’ 매우 폭넓은 기호를 보였으나, 오늘은 거칠고 야만적인 행위에 대한 특별한 기대는 하지 않고 있는 듯 보
노을 윤 한 로말 구루마에뙤약볕 빗겨가고긴 팔 아우팔목 시계꽃 본다바깥대미 개똥 보리밭 언저리저녁 노을 붉다해와 달 암벌 수펄처럼 꽁무니를 맞대고 쌍 붙었다우쭐우쭐 바들바들 불 붙었다 해와 달 서로 대가리 틀고좋아라 내빼봐도질긴 꽁댕이 명 길다홀짬맨 듯 떨어질 줄 모른다 빨갛게 떠오른 채거북아, 우리 노을 국에 밥 말아 먹자웨, 순 쌍것들시작 메모 인천에서 어릴 때 보던 노을은 언제나 수도국산 옆탱이에서 인천제철 쪽으로 길게 펼쳐져 있었다. 우리 동네 8번지 날망 바로 맞은쪽이었다. 그 시간이면 국제실업 배 만드는 깡깡부대 소리가
책 한 권 윤 한 로컹컹편의점 뒤안 고물상에서 똥개가 짖는다실로 오랜만에 듣는구나불현듯 어머니 생각, 굴뚝같다베란다로 나가 쭈굴시고가을 하늘 별 본다더벅머리 서카리 뽑아주던 따뜻한 손가락, 쇠무르팍하며입때 저녁이면 골목 어귀 아버지 큰 고무신 질질 끌고 나오던 길동이도 생각나싱긋이 웃음 머금는다컹컹궤짝 틈서리 똥개 소리그 소리 한 장 찢어내서 읽고 또 읽는다속 썩고 열 받는 일맑게 헹군다시작 메모어느새 가을이다. 저녁 미사를 하는데 지하차도 차 소리를 뚫고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성당 창문이 삐죽이 열려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텔은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이것이 모텔을 한 번이라도 이용해 본 자들의 한결 같은 감회다. 과연 모텔은 그러했다. 이름과 나이, 직업과 신용카드 색깔을 물어오지 않았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듯 베드는 그 눈부신 흰 빛으로 열려 있었다. 유세련은 베드에 바로 몸을 던질 만큼 아마추어가 아니었다. 베드는 기다릴 필요가 있었다. 보다 특별한 주인을 맞이하여, 베드도 긴장하며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9층 909호실 더블 베드는 마치 순결한 처녀처럼 떨고 있는 듯했다. 오늘 낮에만 해도 남녀 도합 170킬로그
천둥 소리 윤 한 로옛날에, 아주 옛날에 둥둥 하고 울리는 북이 하나 있었습니다그런데 사람들은 너도 나도 이 북이 싫다고 했습니다 머리통 커다란 장구대가리 장군님이 치던 북이라고 퉤퉤, 치던 북이라고 뭐라고 뭐라고들 사람들이 싫다고 하니까 닭들도 싫다고 했습니다닭들이 싫다고 하니까 개들도 싫다고 했습니다개들이 싫다고 하니까 소들도 싫다고 했습니다둥둥, 둥둥 소리 우굴쭈굴하니 산 넘고 물 건너 아무리 잘 울려도 소용이 없었습니다뭐라뭐라 어쩌고저쩌고들 해서장구대가리 장군님 북은싹이 돋고 코가 깨지고 마침내 수염까지 나게 됐습니다이 세상
여자에게 술을 잔뜩 먹여 이성을 마비시키고 하체에 힘이 빠지게 해 원나잇 투어로 이끄는 게 천하의 바람둥이 유세련의 장기인데, 마돈걸은 오히려 앞장서서 더 마시자고 하니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었다. 커피나 한 잔 하자는 유세련의 건의는 바로 묵살 당했다. 그는 마돈걸에게 손목을 잡혀 요사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고 있는 막걸리집으로 끌려 들어갔다. 예전에는 일일 노동자 아니면 마실 나온 동네 아저씨가 이런 곳에 주로 찾아와 사발에 철철 따른 걸쭉한 막걸리를 선 채로 단숨에 들이켜고 소맷자락으로 입술을 쓱 한 번 훔친 다음, 김치 한 조각
화수분 윤 한 로골방 속초저녁 풋잠 한 불 했다허섭스레기 입성 홀닥 벗은만신 할매걀걀 잠지만 골려 쌌고 보소들, 별 쌀다 떨어졌네!우묵한 하늘 복판화수분 구럭무녀리 홀로둥두렷달 고프다시작(詩作) 메모밤이 좋다. 하늘이 좋다. 촌 동네가 좋다. 거기에다 골방 속에서 홀딱 벗고 자는 할마씨들까지 하며. 아름다운 것보다, 깊은 사색이나 명상보다 이런 궁상이, 가난이 좋다. 궁벽이야말로 나를 맑게 해 주는 뿌리이다. 먹을 쌀은 다 떨어졌지만 하늘엔 오히려 화수분처럼 별이 퐁퐁 샘솟는다. 또 달은 둥두렷 밝게 떠 배고프고도 배부르게 한다.
미국 본토 유학파 유세련이 송파구 육체파 마돈걸과 함께 강남의 한 와인 바에서 ‘메종’이라는 와인을 홀짝홀짝 마신지 어느덧 두 시간이 지났다. 비록 오늘 경마에서 돈은 잃었지만 이토록 아름답고 아련한 밤까지 잃어버리는 건 너무나 아쉽다고 마돈걸은 느끼고 있었다. 유세련 또한 요 며칠 주식에서 깨먹고 오늘 낮엔 슬롯머신에서 호주머니를 탈탈 털렸지만 마돈걸과 함께 하는 이 밤은 예외라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30대의 두 성숙한 육체가 와인과 함께 하는 강남의 밤은 홀로 지새는 원룸의 밤이나 아는 인간끼리 떠들썩하게 마셔대는 동네 호프집의
천대(賤待) 윤 한 로졸참새 서너 마리 삐뚜름 날아오르고담배창고 막지붕너머남빛 하늘 곱고나벌건 대낮돼지 멱따는 소리 산내끼에 *둥구재벼설랑동네방네 떠나가라예미,흙투뱅이 불알 출럭거리메온갖 거이 먹고 마시고 싸고지지고 볶고 자시두마 밥숟갈 동가리 빠진새참 돌우물 물맛만 맑고 쓰거운데곁을 주는가왠녀르 나무인지 긴 머리 몇 발 풀어제치고 섰다 참고* 둥구재비다 : 백석 시인 시 ‘연자간’에 나오는 구절을 좀 빌렸다. 돼지 따위 짐승을 물동이를 안은 것처럼 둥그렇게 잡거나 묶어놓은 모양을 뜻한다.시작 메모올 여름에 시골을 갔다오다가 담배창
오늘 따라 거는 말마다 져야 했던 백팔만은 당나귀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술도 한 잔 마셨겠다, 하늘에 별도 총총하겠다, 바람은 솔솔 불어오겠다, 비록 빈털터리지만 마음만은 호방하게 가지려고 애쓰고 있었다. 세상에 돈보다 더 소중한 걸 잃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가족, 명예, 건강 이런 걸 잃어버리고는, 그래도 돈 걱정만 할 때가 행복했지 하고 회환에 잠기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백팔만의 살 만한 점이라면 바로 이런 낙천적인 성격이었다. 어떤 나쁜 상황에 빠져서도 자신보다 더 불쌍한 자들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
궁벽(窮僻) 윤 한 로쫄딱망했구료개꿈 한줄금 흐벅지게 꾸고 난 밤 깊푸른 하늘푸대기 속엔오막살이 별 총총 맑구나이슥토록벼름박 진곰보 지애비 낯짝슬몃비릿한 이슬 묻어개꼬랭이나발 바람이 든다시작 메모용꿈도 아니고, 돼지꿈도 아니고, 똥꿈도 아닌 개꿈이라는 말이, 개꿈이라는 이미지가 참 좋다. 등줄기에 식은 땀 한줄기 흐벅지게 흘리면서 개꿈을 꾸고 난 밤, 때타고 해진 남루 같은 밤 하늘에 총총한 별들은 어떤 때 별보다 맑고 서글프다. 그리고 윗목엔 꿔다놓은 보릿자루 서말에 뿔뿔 기어나오는 잿빛 식솔, 저 쥐며느리들. 그런 밤 아버지는
맑은 하늘에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쬐는 토요일 아침, 백팔만은 당나귀에 올라타고 장정에 올랐다. 과천까지는 먼 거리였지만,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타박타박 가다보면 해가 중천에 오르기 전에는 당도할 터였다. 승용차의 경우 운전자가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간 큰일 나지만, 당나귀는 주인이 공상에 잠겨 있든 꾸벅꾸벅 졸든 개의치 않고 눈앞의 장애물을 잘 피해가며 묵묵히 갈 길을 갔다. 때로 젊은 여성의 꽁무니를 따라가기도 하는 건 자기도 모르게 주인의 마음을 닮은 탓이었다. 마침내 당도한 과천 경마장엔, 눈부시게 차려입
밤 하늘 윤한로별시시껄렁왼갖 푼수데기시러배 잡녀르눔들서껀야들아, 오늘따라다 뫄코야 오도방정에내미룩니미룩육갑 꼴값궁시렁다 떨어쌌남제길헐 시작 노트부쩍 어깨가 켕기고 뒷골이 땡긴다. 왜 그럴까, 무엇 때문에 그럴까, 알듯말듯하다. 인생이 뻑적지근할 때 밤하늘에 뜬 별을 떠올린다. 그저 즐겁고 정겹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우리네 주변에도 정겨운 사람들이 가득 넘친다. 노는 거며 생김생김이, 무엇보다 먼저 걸판지다. 언제나 ‘헤’ 웃는 듯하다. 그런 이들한테 별을 비겨서 쓰고 싶었다. 절대로 별에 그 이들을 비긴 게 아니다. 그 이들을 변
분교 마을의 봄 윤한로우리 분교 마을엔산 너머 너머 언니가가는 체로 쳐 보낸 고운 바람사택 울타리엔 노란 봄먼 산엔 붉은 봄하늘엔 뻐꾹 봄손등엔 쓰린 봄내 마음엔 산 너머 너머 언니가튼 손 씻어주던아직도 작년 봄시작 노트이 시는 옛날에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낸 시다. 모자란 시이지만 시 속에서 말하지 못한 일로, 밝힐 게 하나 있다. 어렸을 적 나는 워낙이 숫기가 없었고 우리 집 형제들은 남자가 둘, 여자가 셋으로 여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여자들을 따라 형을 오빠라고 부르고 누나를 언니라고 불렀다. 나이가 먹어서도 좀처럼 쑥스러워 고
바보 온달 윤한로온달님은 바보라네 주먹코에 메기 입에나무 껍질 삶아 먹어헤프디 헤픈 맘씨푸른 하늘 낮달이냐고구려 땅 심심산천풀들도 알고 돌들도 아네온달님은 바보라네하늘이 준 바보시라울보라 평강 공주나뭇짐 지듯 덥석 업고북처럼장구처럼시작(詩作) 노트천치처럼 돼서 맑고, 깨끗하고, 우직하고, 선하고, 듬직하고, 이렇게 살았으면 했는데 더욱더 지저분하고, 간사스럽고, 야비하고, 졸렬하고, 교묘하기 그지없다. 잡때 같은 몸과 마음의 재산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다. 그러나 도저히 그럴 자신은 없고. 이럴 때는 누가 다 빼앗아가거나 도둑질해가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