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있다 보니 이 무한 자유가 오히려 버겁구나 복권에 당첨되어 주머니에 큰돈이 들어 있는 40대의 동영상 제작자는 여배우 미나양을 불러내 저녁을 함께하고 식당 밖으로 나온 바,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고심하였다. 미나 양은 `우리 어디로 가죠` 따위의 말은 꺼내지 않았는데 이는 여성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감독에게 보다 폭넓은 선택권을 주기 위한 배려이기도 했다. 감독은 돈이 많다 보니 아무데나 가도 된다는 사실에 만족감과 함께 전에 없는 당혹감도 느끼고 있었다. 주머니에 그저 몇 푼 푼돈을 넣고 다닐 때는 항상 다음 장소에 대한
와인 바 월광 소나타에서 동영상 제작자인 남자와 모델 고대해는 밤 8시 반 무렵에 쓴 맛 나는 와인 한 병을 시켜놓고, 서로 마주보다가 가끔은 고개를 돌려 자그마한 무대 위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 노래를 읊고 있는 여가수에게도 눈길을 주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정식 집에서 코스 음식을 먹은 남녀가 배가 어느 정도 부른 상태에서, 빚 독촉이나 빨리 오지 못하겠냐는 성가신 전화도 없는 고요한 시간의 와중에, 이러한 부드럽고 몽환 적인 색채가 배어 있는 시간의 물결 위에 떠 있으니 누가 봐도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하지 않을
‘월광 소나타’라는 클래식하고 몽환적인 제목을 달고 있는 와인바로 남자가 고대해를 안내해, 엔틱한 테이블에 그들이 앉았을 때, 앉아서 와인의 선택권을 고대해에게 줬을 때, 그때그녀는 와인 이름 대신 ‘쓴 맛 나는 와인’이라고만 말했다. 이 말에 남자가 놀란 건 모든 와인은 쓴 맛이 나기 때문이 아니라, ‘쓴 맛 나는 와인’이라는 제목이 마치 따로 있다는 것처럼 당당하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이 주문을 받은 주인장 같은 아저씨는 “쓴 맛이 좀 강한 와인을 찾으시는군요.” 하고 되받아 말했다. 단맛 나는 와인, 떫은 맛 나는 와인 같은
"에이 코스로 해요." 고대해가 한 이 말은 어떤 가격대의 메뉴를 선택할 것인가 사뭇 긴장하며 서 있던 여종업원에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종업원은 좀 더 고가대의 메뉴를 선택하도록 적극 권하지 못한 자괴감이 뒤섞인 얼굴로 "에이 코스요?" 하고 한 번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거쳐봐야, 뭘 또 묻느냐는 표정의 고대해의 단호한 얼굴만 확인할 따름이었다. 동영상 제작자인 40대 남자와 위압적인 몸매의 모델 고대해가 유명 한정식집에서 1인 당 35,000원에서 95,000원까지 나열되어 있는 차칸 메뉴를 둘러싸고 서로를 배려하고 있
40대 동영상 제작자가 고대해 모델에게, 한정식집에 마주 보고 앉아 어서 메뉴판을 열어보시라고 함에 따라 고대해는 은박 입힌 그 육중한 메뉴판을 좌우로 활짝 열어젖혔다. 웬만한 여성이면 심장이 떨려 조심조심 열어보며 가격을 훔쳐보았을 터인데, 그리고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빛이 되었을 터인데, 우리의 고대해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은박 메뉴판을 활짝 열어젖혔을 뿐 아니라 메뉴의 내용까지 사시눈으로 거만하게 훑어보았던 것이다. 보통 여성이면 매우 공손한 태도로, 또는 내심을 들키지 않으려고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태연한 척 하며 메뉴판을 읽어
고대해가 한정식을 추천하고 40대의 동영상 제작자가 이를 받아들여 저녁메뉴는 이 근처에서 꽤 잘 나간다는 한정식으로 결정이 났다. 남녀가 함께 음식을 택할 때 그 주도권은 과거엔 남자가 주로 쥐고 있었으나 차차 여성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게 추세다. 특히 가정주부의 경우 외식 시 남편에게 형식적으로 뭐 먹을까 하고 묻긴 하나, 엄밀히 따져보면 뭘 먹고 싶냐가 아니라 자신이 뭘 먹으면 좋겠느냐는 가벼운 물음의 형식을 띠고 있다 하겠다. 이럴 때 눈치 없이 족발이니 순두부찌개니 해가며 의견을 내봤자, 결론이 이미 나 있는 경우가 많아서
여자들이, 외도가 파멸로 이어지는 줄 알면서 왜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는지 언급한 바 있다. 드라마를 보라. 거기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며 식구 뒷바라지에 총력을 기울이는 여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지. 된다 하더라도 오늘날 나날이 진화하고 있는 여성시청자들을 대리만족시켜 줄 수 있는지. 그게 그렇다. 드라마에서 각종 일탈을 일삼고 온갖 패악을 부리며기어이 욕구를 충족시키고 마는 여자들을 보며 욕을 하면서도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거. 그런데 그것도 하루이틀이지 허구헌날 그런 여자들만 들여다볼 순 없잖은가? `나도 한 번 좋아야지` 이렇게
당신에겐 블공평해 보이겠지만 아래와 같은 인생도 있다. 40대 중반 나이에 정부 모처의 국장직을 수년간 수행해오고 있는 이 남자, 가출이라곤 한 번밖에 하지 않은 고 2 딸이 오늘도 방 안에 틀어박혀 있고 사소한 폭행과 절도가 각 1회에 그친 중 3 아들은 올해 들어 자숙하고 있다. 그리고 팔순 노모는 시골 형님께서 어제도 오늘도 차질 없이 모시고 있다. 남자의 아내로 말하자면 비록 집 안에서의 행실과 골프장이나 문화센터나 고급 식당을 드나들 때의 태도에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동창과는 두 시간에 걸쳐 대화의 장을 마련하지만 한 달
‘모텔은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이것이 모텔을 한 번이라도 이용해 본 자들의 한결 같은 감회다. 과연 모텔은 그러했다. 이름과 나이, 직업과 신용카드 색깔을 물어오지 않았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듯 베드는 그 눈부신 흰 빛으로 열려 있었다. 유세련은 베드에 바로 몸을 던질 만큼 아마추어가 아니었다. 베드는 기다릴 필요가 있었다. 보다 특별한 주인을 맞이하여, 베드도 긴장하며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9층 909호실 더블 베드는 마치 순결한 처녀처럼 떨고 있는 듯했다. 오늘 낮에만 해도 남녀 도합 170킬로그
당나귀 신사 백팔만 씨는 투자전문가 ‘탈법자’의 지시대로 코스닥의 ‘칠성 테크’가 일시 하락하는 오전 11시 경 일단 한 장, 즉 일 천만 원 어치를 즉각 매수하였다. ‘칠성 데크’인줄 알았더니 ‘칠성 테크’였다. 말 이름이 루이든 루니든 잘 뛰는 놈이 좋듯, 데크든 테크든 벌어만 주면 이름 따위는 아무 상관없었다. 그는 주당 3,400원에 3,000주를 한 번에 매수했다. 이 점이 경마와 달랐다. 경마는 좁고 진폭이 큰 반면 주식은 넓고 수익률이 완만하다. 해서 주식은 금액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다. 1억 투자해서 2천 버는 투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