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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182) - 돈이 있다 보니 이 무한 자유가 오히려 버겁구나

서석훈
  • 입력 2013.12.07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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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돈이 있다 보니 이 무한 자유가 오히려 버겁구나


복권에 당첨되어 주머니에 큰돈이 들어 있는 40대의 동영상 제작자는 여배우 미나양을 불러내 저녁을 함께하고 식당 밖으로 나온 바,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고심하였다. 미나 양은 `우리 어디로 가죠` 따위의 말은 꺼내지 않았는데 이는 여성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감독에게 보다 폭넓은 선택권을 주기 위한 배려이기도 했다. 감독은 돈이 많다 보니 아무데나 가도 된다는 사실에 만족감과 함께 전에 없는 당혹감도 느끼고 있었다. 주머니에 그저 몇 푼 푼돈을 넣고 다닐 때는 항상 다음 장소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고, 찻집이든 술집이든 공연장이든 항상 그곳의 물가 수준과 가격 대비 버틸 수 있는 시간대를 헤아려 보는 게 습관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가격에 상관없이 천지 사방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된 복권 사나이는, 이 무한한 자유 앞에서 전율과 함께 `아 갈 데가 없구나` 하는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아무 데나 갈 수 있는 건 갈 데가 없다는 것과 같다`는 오묘한 진리를 깨달은 것 이다. 스릴도 없고 마치 시간 앞에 자신을 방기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오묘한 진리도 잠시, 감독은 미나라는 여배우에 대한 탐닉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아 무한한 자유와 자유의 공허함 속에 솟구치는 이러한 충동이 매우 반가워서 감독은 자칫 박수를 칠 뻔 했으나, 이를 자제하며 앞서 걸음을 옮겼다. 그의 뒤로 반 발짝 떨어져 여배우 미나가 다소곳이 따라 붙었다. 남자가 돈이 있으니, 돈이 있다는 걸 비싼 일식 정찬으로 증명해주었으니, 여배우의 태도 또한 상냥함과 함께 잔잔히 온 몸으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몸이 미소를 지으면 어떻게 되는가? 몸이 발그레하게 수줍은 미소를 띠면 어떻게 되는가? 그 미소를 가시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감독은 여배우를, 간판이 담백하면서도 고급스럽고 그 실내가 차분하면서도 이국적이며 조명이 따뜻하고 음악이 잔잔히 깔리고 있는 바(BAR)로 안내했다. 순간적인 이러한 판단은, 순대와 빈대떡과 삼겹살이 주였던 사내의 머리에서 섬광과 같이 일어난 것으로 보통 감각으론 찾아낼 수 없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돈이 저절로 알아서 길을 찾는지, 여성이 마음을 감성적으로 물들일 수 있는 곳을 선택하고 만 것이다. 이러한 곳에서 감독이 선택한 자리는 테이블이 아니라 스탠드였으니, 젊은 바텐더가 깨끗한 양복 차림으로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스탠드에 그녀를 앉히고 그 옆에 앉아 나란히 각종 술이 진열된 곳을 바라보며 함께 하게 된 것이다. 마주 보았으니 나란히도 앉아 보자. 이러한 다양한 연출은 감독이었기 망정이지 보통사람은 잘 떠오르지 않는 감각적인 선택이었다.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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