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크 윤 한 로짠물 호수 속에 잠겨앉아 있는 줄 알았는데다들 깜짝 놀랐다실망스런 네 개그 짧은 다리로서 있는 게로구나누더기 떨쳐 일으키며물방울 뚝뚝 흘리며아아, 그대 여기 있었구나야크 성자여교활한 초생달 눈웃음진종일 사진 손님 받더라시작 메모 티벳 여행을 다녀왔다. 겨우 며칠이지만. ‘사람이 건널 수 없는’ 긴 강 보다, ‘아름다운 소녀’ 초원보다, 넋을 빼는 거대한 빙하니 설산보다, 인간 신심의 절정 불교 사원들보다 야크를 잊을 수 없다. 거대한 누더기 덩어리 떨치고 일어선 아주 짧은 다리, 그 짜른 다리로 진종일 소금 호수에 잠
‘인간은 당신처럼 전지전능하지 않아. 그래서 실수할 수밖에 없고 아플 수밖에 없다고. 저 여자를 봐. 이혼했어도 곧 털어 내고 자기 자유와 즐거움을 찾아 씩씩하게 진군하는 것 같지? 진실로 진실로 여자의 아픔을 체휼하고 있는가? 타고난 편력에 상처까지 더해져 자기 착취를 일삼는, 그 즐거운 고통을 알기나 하는가? 당신은 너무 오래된 구식인이라서, 텔레비전도 비행기도 없던 시절에 나귀 따위나 탔던 인물이라서, 60억 인구로 그득그득한 이 세대를 살아 보지 못해서 모르겠지. 결코 알 수 없을 거야.내가 현실을 가르쳐 줄까? 선한 행동보
유령 해변이 아름다운 작은 도시에서 사는 G는, 바다라면 연상되는 태양 빛에 그을린 탄탄한 피부를 갖고 있지 않았다. G가 하얀 머플러를 바람에 휘날리며 산책하는, 단순히 바다를 좋아하는 소녀인줄 알았다. 거의 한달 동안 바다바람에 까맣게 탄 내 얼굴은 G의 하얀 낯빛과 대비되어 보였다. 그녀는 산에서 살았던 늑대아이처럼 야성적이면서 어찌 보면 숲의 요정처럼 기묘하게 아름다웠다. 오후 해변이 보이는 거리를 산책할 때마다 나는 G와 조우했다. 우리는 가벼운 인사와 눈웃음을 나눌 뿐이었다. 하루는 그녀가 내가 두 달 예정으로 묵고 있는
S와 잠자리를 갖는 일은 늘 기분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언제 내가 주도권을 잡아야할지, S에게 마냥 맡겨야할지 알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터질지 모를 폭탄을 가지고 놀고 있는 기분이랄까. S는 평소에는 철저한 페미니스트였다. 그러나 침대에서만큼은 예쁜 소녀처럼 굴었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스트립쇼를 보여 주거나 내가 그녀 엉덩이를 세게 때려주기를 원했다. 얌전하게 굴다가도 어느 순간 돌변해서 나를 흥분시키고 자극했다. 그런 다음 날이면 나는 꽃다발을 사들고 가서 그녀에게 바쳤다. 전날 황홀한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녀는 내게 한
식욕 다음에 오는 것 남녀가 음식을 먹다 말고 여자가 섹시하다고 느낄 때, 여기에 어떤 심리가 깔려 있는지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왜 많은 남녀가 성스러운 게임에 들어가기 전에 거의 일관되게 식사 같은 복잡한 절차를 밟는가. 보통 남녀기 약속을 잡을 때는 식사 시간에 맞추는 경우가 많다. 사실 여기엔 상대를 존중한다는 의미도 있다. 왜냐하면 식사는 누구나 하여야 하는 바 그 시간이나마 잠시 빌리겠다는 겸손한 제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식사를 해결해줌으로써 상대의 일거리 하나를 들어준다는 의미도 있다. 매우 고귀하거나 유명세를
스타가 되기 전에 엮어두는 게 필요해 복권 1등 당첨 후의 자신의 행적에 대해 갖은 상상을 다하고 있는 우리의 40대 동영상제작자 남자는 마침내 `미나`라는 신인 여배우와 저녁약속을 잡는 데까지 이르렀고, 이제 그녀를 만나러 약속장소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지하철 3번 출구라든가 엘지 편의점 앞이라든가 우리은행 정문 앞에서 보자는 등 그러한 약속은 사내들끼리 즉 만나자마자 한 잔 하러 가야 하는, 촌각을 다투는 사내들끼리, 혹은 찻값따위 아깝게 왜 낭비하느냐고 생각하는 오래된 연인이나 부부끼리나 하는 것으로, 아무래도 예의를 지키거
기말 고사 윤 한 로우리 재수할라요웬만한 애들 거의 엎드리고수학 시험 시간수학 시험 문제지에모자도 그리고우스꽝스럽게 권총도 그리고시내 삐끼 다리도 그리고조용조용히 어느 소녀 얼굴과다시 그 얼굴 코 밑에 찍찍 숯검정 수염도 칠하고속절없이 먼 산 바라다간 어느새 손가락 깨물며, 물어뜯으며깨알같이 쓰는 시란정말 맛있습죠만우리 곧 구겨버릴라요시작 메모조선시대 문장가 이옥이 쓴 글 중에 저잣거리 모습을 쓴 게 있다. 소, 닭, 청어 끌고 엮고 오는 사람들에 입은 옷, 옷자락, 신발 같은 누추한 행색이 고작인데, 아아. 이옥은 이것들을 퀘퀘하
쟁반 윤 한 로한갓 젖비린내 나는 계집아이 한마디에 목 뎅강 잘려나갔으니가고 말았으니싯누런 얼굴 쥐눈 딱 부릅뜬 채사과처럼 향기롭지도 않고포도처럼 탐스럽지도 않고애오라지 옳을 뿐세상의 면상을 향해피끓는 가슴더 더 대차게 손가락질하고파 목 뎅강 잘렸습니다흰 쟁반 위에 함뿍 담겼습니다여자한테 난 자 중 가장 큰 자더러운 사치와 음욕과 방탕을 광야의 거친 모래처럼 씹던 자시작 메모헤로데 왕의 불의를 손가락질하며 끝까지 싸우다가 소녀의 한마디에 목이 달아난 성인. 여자한테서 난 자 가운데 가장 큰 자, 예언자 가운데 가장 큰 예언자 세례자
"많이 기다리셨죠?" 하고 사진작가가 물었을 때 "산책하고 있었어요." 하고 고대해가 대답한 것은 기다렸다, 아니다 하는 대답보다 훨씬 유쾌하고 격조 있는 답변이었다는 걸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러한 대답에 마음이 움직인 사진작가는 고대해를 세워놓고 바로 사진 작업에 들어가기보다 `함께 좀 더 산책하지 않겠냐는` 제의를 하였다. 그 제의는 경우에 합당하지 않았으므로 고대해는 응하지 않았다. 고대해는 사진작가가 늦게 온 것은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었으나 경우에 맞지 않게 산책 운운한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굳이 좀 더 걷지
라파엘의 집 윤 한 로목감 연립주택 골목 언덕바지아침부터 깨끗이 세수하고 앉았다가솜요대기 봄볕 마당에 나오니허블렁하니 좋아하구마을긋불긋 꽃나비 구경도 하고,옛날 같으면 웅틀붕틀 멍석자리백지 엿질금도 식, 쓸어보곤 오죽 좋으랴마는이제 다 모이믄 손뼉치며 노래 배네아침에도 감사 점심에도 감사 저녁에도 감사 감사 감사 감사 뭐 그런 노래라네상고머리 할마씨들 앙금앙금 열심히 배네 두살 반, 세살 반짜리 라파엘라들똥길 듯 하나도 똥기지 않네봄볕머리 다시금 싹틔운 겉보리 꽁무니께쭈글쭈글 말라비틀어져 달달하이시작 메모‘가브리엘’, ‘라파엘’ 천
밤은, 혈기왕성한 수말에겐 고삐를 채우고, 윤기나는 털과 탱탱한 엉덩이가 도도한 암말에게는 앞발 아래 길게 깔린 주황빛 융단을 밞으며 와야 하는가? 일찍이 이 밤은 돌돌 말아 10년 과부를 보쌈하는 데 쓰이기도 하고 오색 불빛으로 물들여져 청춘남녀 눈앞에서 현란하게 회전되기도 하고 소녀에게는 별 몇 개 달 한 개의 의미를 조용히 문의해오는 예쁜 수수께끼이기도 했다. 마돈걸에게 밤은 은은히 달구어진 화롯불이자 동시에 미구에 타오를 횃불이었다. 오로지 이 한 몸 급히 불살라 여체를 녹이겠다고 조바심치는 유세련, 이것은 그가 꼭 젊고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