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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억 2-7 / 이층 큰방에서

김홍성
  • 입력 2020.12.29 12:48
  • 수정 2020.12.29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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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 큰 방에는 체경이 달린 오래된 장롱들과 철제 침대 대여섯 개가 있었다. 일제 때는 사교댄스 교실이었을 거라는 소문이 돌 만큼 크고 넓은 방이었다. 장롱들 속에는 전쟁 때 납북된 할아버지의 양복과 모자와 가방과 안경 등의 유품들이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었다. 벽을 따라서 배치되어 있는 침대들을 대학생이었던 외삼촌 두 분과 내가 하나 씩 쓰고도 몇 개가 남았다.

 

이층 큰 방에서는 골목을 지나가는 행상들의 노래가 잘 들렸다.

“ 아지나 동태 ~ 도루묵……. 아지나 동태 ~ 도루묵…….”

“ 다발무가 싸구려~ 다발파가 싸. 다발무가 싸구려~ 다발파가 싸.”

 

아침저녁으로 골목 저 끝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이 구성진 노래들은 생선(아지, 동태)이나 채소(무, 파)를 작은 리어카에 싣고 다니는 늙수그레한 행상들의 노래였다. 도중에 노래가 그치면 어느 집 앞에서 물건을 파는 중이고, 다시 노래가 이어지면 리어카를 밀며 행진을 시작한 것이다. 때로는 아지나 동태가 먼저 지나가고 때로는 다발무 행상이 먼저 지나갔다.

 

두통이 심해서 결석한 아침나절이나 일찍 조퇴한 날 저녁에 침대에 가만히 누워서 이 노래가 지나가는 걸 듣자면 명랑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골목에서 이들을 만나 한동안 따라다니기도 했다. 아지나 동태 노래는 아지나 동태 행상의 발걸음과 절묘하게 일치했으며, 다발무 노래는 다발무 행상의 발걸음에 잘 어울렸다.

 

추석 지나고 추위가 올 무렵이었을 거다. 먼 데서부터 징 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어느 날은 심한 편두통 때문에 조퇴를 하고 귀가하다가 원서동과 계동 사이의 고개 마루에서 징 치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굴뚝 청소부였다. 대나무였는지 굵은 철사였는지 뭐 그런 것들을 몇 겹으로 둥글게 말아서 어깨에 걸치고 조그만 배낭을 등에 진 그는 염색한 군복에 개털 모자를 쓰고 있었다. 비록 검댕이 묻은 허름한 옷을 입었지만 청수한 얼굴이었다. 나는 편두통도 잊고 그의 징소리에 취해서 한동안 정신없이 따라 다녔다.

훗날 도보여행을 다닐 때 강원도 홍천 쪽 산골에서 만난 노인은 산중에서 농사를 짓다가 추수가 끝나면 굴뚝 청소 도구를 메고 징을 치면서 도시로 나가 벌이를 다녔다고 했다. 그 마을에는 농한기에 냄비나 주전자를 때우러 서울에 다녔던 땜장이도 있었고, 시누대로 조리를 만들어 팔러 다녔다는 할머니도 있었다. 농한기에 그런 저런 행상을 했던 그 산골 사람들은 대부분 동학 전쟁 때 왜군을 피해 숨어든 의병들의 후손이며 부모도 그런 행상을 했다고 들었다.

 

이층 큰 방은 골목을 지나가는 행상들의 노래가 잘 들리는 방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왕산 위에 펼쳐지는 일몰이 장관이었다. 수 십 수 백 마리의 솔개들이 날개를 펼치고 일몰 위에 떠 있기도 했다. 밑에 내려가 밥을 먹고 올라오면 붉던 하늘은 어느새 검푸르게 변하였고 그 속에 별이 떠서 반짝였다. 나는 그 별을 일몰이라는 커다란 새가 떨어뜨리고 간 한 방울의 눈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때 나는 편두통을 심하게 앓았다. 눈을 떠도 아프고 눈을 감아도 아팠다. 뇌 속 깊은 곳의 혈관 한 부분이 꽈리만한 심장으로 변하여 펄떡펄떡 뛰면서 뇌신경을 자극하는 것 같았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할머니에게 하소연 했더니 할머니는 당신도 그렇다면서 당신이 먹는 약을 먹어 보라고 했다. 할머니가 손바닥 반 만 한 네모진 곽 속에서 꺼내 준 것은 약포지에 쌓인 하얀 가루약이었다. 종이 곽에는 이 약의 이름인 明朗이 한자로 인쇄되어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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