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과 정착지 ‘벌말’
민촌, 벌말로 이사하기 전까지 방랑 생활해
민촌 생애와 작품 복원·기념하는 일은 통일시대 정신 구현하는 일
<[2022 여성평화걷기] 민촌 이기영의 ‘고향’길 6 - ‘벌말’>
(5) 벌말(방랑과 정착)
민촌 이기영의 ‘고향’길이 중암마을 표지석 출발→중암마을 집터→부모 묘소 터→성불사→쇠목 고개→분텃골로 이어져 지난 5회까지 연속 게재되었다. 이번 6회에서는 민촌이 방랑의 끝에 정착했던 시기인 벌말에 살던 때를 생각하며 바라보았다.
● 민촌, 벌말로 이사하기 전까지 방랑 생활해
이용길 회장(천안역사문화연구회)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한 식당 앞에 승합차를 세우고 우리를 하차시켰다. 우리는 점심을 먹으려는 줄 알고 식당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버스정류장 앞에 모이게 하고 건너편에 조그맣게 보이는 집들을 쳐다보며 ”저 멀리 보이는 파란 지붕의 집 뒤가 민촌 이기영이 살았던 벌말 집터“라고 설명하며 ”민촌 이기영이 유량동 분텃골에서 부친과 조모가 죽은 직후인 24세(1918)에 유량동 383번지 벌말로 이사왔다“고 말했다. 이어서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민촌 이기영은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였고 충남 서해안, 경상도, 전라도 등에서 방랑 생활을 했다“며 민촌의 방황 시기를 짧게 설명하고 ”이기영은 벌말로 이사와서 생계를 위해 천안 군청에 취업했다“고 민촌의 정착기를 말해줬다. 그러며 ”이때 겪은 3.1혁명의 경험이 1958년 3월에 「내가 겪은 3.1운동」으로 출판되었다“고 출판된 책의 배경을 설명했다.
● 민촌 생애와 작품 복원·기념하는 일은 통일시대 정신 구현하는 일
이용길 회장은 ”아직도 남북의 정치․군사적 대립과 갈등이 여전하여 민촌을 호명하는 일은 아직도 자유롭지 못하다. 민촌의 생애와 작품을 복원하고 기념하는 일은 식민지배체제와 남북분단체제를 뛰어넘어 통일시대의 정신을 구현하는 일이다. 해방 이전의 카프 활동과 해방 이후 북한으로 이어진 민촌 문학은 평등을 지향하는 계급문학이자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문학이라 할 것“이라며 힘줘 설명했다.
민촌은 동아일보에 썼던 글 「나의 수업 시대」에서 기미년 전후의 방랑과 정착 생활을 아래와 같이 적었다. 그가 방랑의 끝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군청에 취업한 사실을 알수 있다.
나는 기미년 전해에 상을 당하고 아우와 단가(單家)살림을 하게 되었다.
나는 고대 소설 주인공이 도사(道師)를 구하러 다니는 격으로 남조선 일대의 방랑 생활을 수 삼 년 하던 끝에 귀향하여, 예수를 믿었었다. 그 뒤에 논산 영화여학교 교원으로 가 있다가 친상을 당하고 그곳을 사임하였다. 그해 유행 감모[감기]에 조모와 부친은 일주일을 전후하여 구몰(俱沒)하였다.
나는 사실 동경(東京)도 못갈 형편이었다. 나는 친상을 당한 후로 군 고원(고원)을 다니다가 호서 은행으로 전임(轉任)하였다.
- 이기영, 「나의 수업 시대」,『동아일보』, 1937. 8. 8.
- 마지막 회인 7회 「향교말」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