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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여성평화걷기] 이재명, 민촌 이기영의 「고향」을 리종혁 아태위 부위원장에게 선물 -3 '성불사'

강승혁 전문 기자
  • 입력 2022.07.30 11:57
  • 수정 2022.08.0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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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여성평화걷기] 민촌 이기영의 ‘고향’길 3 - ‘성불사’
농촌 리얼리즘 소설 「고향」의 탄생지인 ’성불사‘
민촌 작품에는 식민지배 시절 천안지역의 민심 녹아들어 생생한 생명력으로 되살아나
’성불사‘, 민촌이 서울에서 내려와 40일 동안 「고향」 초고 2천 장을 집필한 곳

<[2022 여성평화걷기] 민촌 이기영의 고향3 - ‘성불사’>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는 2018년 11월 15일, 경기도 수원시 굿모닝하우스에서 열린, 북측 대표단과의 오찬에서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에게 한국에서 발간된 리 부위원장의 아버지 이기영 작가의 소설 '고향'을 선물헸다. 좌측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 오른쪽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 사진 = 경기도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는 2018년 11월 15일, 경기도 수원시 굿모닝하우스에서 열린, 북측 대표단과의 오찬에서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에게 한국에서 발간된 리 부위원장의 아버지 이기영 작가의 소설 '고향'을 선물헸다. 좌측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 오른쪽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 사진 = 경기도
2022 여성평화걷기 천안구간 참가자들이 민촌이 서울에서 내려와 40일 동안 「고향」 초고 2천 장을 집필한 곳이라는 '성불사'의 대웅전 계단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2022 여성평화걷기 천안구간 참가자들이 민촌이 서울에서 내려와 40일 동안 「고향」 초고 2천 장을 집필한 곳이라는 '성불사'의 대웅전 계단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3) 성불사(농촌 리얼리즘 소설 고향의 탄생지)

 

이용길 회장(천안역사문화연구회)최고의 리얼리즘적 성취를 이룩했다는 민촌의 작품들에는 식민지배 시절 천안지역의 민심이 녹아들어 생생한 생명력으로 되살아난다. 소설 민촌의 무대인 태조봉-향교말-동막골이나 고향의 원 터나 두만강의 송월동이나 의 벌말 등의 풍경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고 민촌의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민촌 작품에는 식민지배 시절 천안지역의 민심 녹아들어 생생한 생명력으로 되살아나

또한 시기적으로 동학농민혁명으로부터 철도가 놓이고 금광이 개발되는 개화기 천안지역의 풍물이 곰살궂게 그려져 있다. 민촌 이기영 평전을 쓴 차손 이성렬 씨는 민촌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을 추적하면서 평전을 썼다고 할 정도로 사실주의적 작품을 구현했다. 우리는 민촌 소설 속의 인물과 현장을 따라서 당시의 농투성이 민중들의 삶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안내했다.

 

절 입구에 서있는 보호수 느티나무로 수령이 837년, 둘레가 5.6미터나 된다고 한다. 그 앞에서 안양에서 온 서형백 선생이 포즈를 취했다.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기자는 절 입구의 수령 800년 된 느티나무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그 크기가 느껴진다. 민촌 이기영 선생은 소설 「고향」에서 이 나무에 대해 "절 밑 동구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절벽과 바위사이로 두터운 그늘을 떠이고 섰다. 거기에는 녹음이 뚝뚝 떴고 매미 소리는 서늘하게 석간수처럼 흐른다"라고 묘사했다.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기자는 절 입구의 수령 800년 된 느티나무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그 크기가 느껴진다. 민촌 이기영 선생은 소설 「고향」에서 이 나무에 대해 "절 밑 동구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절벽과 바위사이로 두터운 그늘을 떠이고 섰다. 거기에는 녹음이 뚝뚝 떴고 매미 소리는 서늘하게 석간수처럼 흐른다"라고 묘사했다.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우리 참가자들은 이용길 회장을 따라 성불사로 올라가는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 올라갔다. 절 입구에서 엄청나게 큰 나무가 우리 일행을 맞았다. 나무 옆에는 커다랗게 팻말이 서 있었는데 보호수라 크게 쓰여 있고 수종 느티나무, 수령 837, 흉고둘레 5.6M‘라 적혀있었다. 절에 다다르니 성불사는 아름다운 풍광을 가진 태조산의 푸르름과 절집의 거룩함이 깃들인 곳이었다.

 

이용길 회장은 '성불사'의 관음전이 마주 보이는 곳에서 '성불사'와 관련된 설화를 들려주었다.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성불사‘, 민촌이 서울에서 내려와 40일 동안 고향초고 2천 장을 집필한 곳

천안 시내가 멀리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여럿 있었는데, 참가자들은 이곳에 앉아서 이용길 회장의 낮고도 또렷한 목소리의 해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민촌 이기영이 서울에서 내려와 1933717일부터 8월 말까지 약 40일 동안, 식민지 현실의 총체적 탐구와 계급 리얼리즘을 구현한 소설 고향초고 2천 장을 집필한 곳이다. 올라오시며 보았듯이 수령 800년 된 느티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성불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라며 절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921(태조 4)에 고려 태조가 국사 도선(道詵)으로 하여금 송도에 대흥사를 짓게 하고, 그와 때를 같이하여 전국에 3천팔백 개의 비보사찰(裨補寺刹)을 세웠는데, 이 무렵 도선이 이곳에 당도해 보니 백학이 지금의 대웅전 뒤 암벽에 불상을 조각하고 날아가므로 그 자리에 절을 짓고 성불사(안서동 187번지)라 하였다 한다고 성불사 건립 설화를 말해주었다.

 

이어서 현재 대웅전 후면 암벽에는 희미한 부처의 입상이 조각되어 있고, 측면에는 여러 작은 불상들이 뚜렷이 조각되어 있다. 그러나 도선은 898년에 입적하였으므로 창건 연대 및 창건자에 대해서는 다소의 논란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 뒤 1002(목종5)에 담혜(湛慧)가 왕명으로 중창하였고, 1398년에 조선 태조가 무학(無學)의 권고로 중건하였는데, 이전까지 성거산(聖居山)이라고 부르던 것을 이태조가 기도하였다고 하여 태조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뒤의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산신각범종각영각요사채가 있으며, 충남 유형문화재인 마애석가삼존 16나한상과 불입상이 있다고 보충 해설했다.

 

이용길 회장은 전국의 사찰에 보면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자연 암벽의 불상을 대웅전 실내에서 보이도록 하는 절들이 있는데, 여기 성불사 대웅전이 불상을 모시지 않고 대웅전 후면 암벽의 부처입상을 실내에서 보이도록 설계하여 이곳에도 대웅전 내에 불상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 대웅전에 들어가 보면 불상을 모시고 있지 않다. 이용길 회장의 설명으로는 "창문으로 보이는 바위의 암각 불상을 주불로 모시고 있다"고 한다.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이 대웅전에 들어가 보면 사진에 보듯이 협시 보살상은 있으나 주불상을 모시고 있지 않다. 이용길 회장의 설명으로는 "창문으로 보이는 바위의 암각 부처님을 주불로 모시고 있다"고 한다.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시계가 좋은 날, 사진 좌측의 멀리 시가지가 보이는 너머로 서해 바다를 볼 수 있다고 이용길 회장은 설명했다. 민촌 이기영은 소설 고향에서 "앞으로 시계가 탁 트여서 서해바다를 볼 수 있다"고 적었다.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시계가 좋은 날, 사진 좌측의 멀리 시가지가 보이는 너머로 서해 바다를 볼 수 있다고 이용길 회장은 설명했다. 민촌 이기영은 소설 「고향」에서 "앞으로 시계가 탁 트여서 서해바다를 볼 수 있다"고 적었다.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이재명, 민촌 이기영의 고향을 리종혁 아태위 부위원장에게 선물

20181116일 고양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의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 참석을 위해 북측의 관계자들이 20181114일 밤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위) 부위원장과 송명철 부실장, 조정철 참사, 지원인력 2명 등 5명으로 이뤄진 북측 대표단이 그들이었다. 이들은 34일간, 행사가 열리는 고양시에 머물며, 본 행사에 앞선 15일 경기지역 기관과 시설을 참관하고 경기도농업기술원(화성시 기산동)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가 2018년 11월 15일, 경기도 수원시 굿모닝하우스에서 열린, 북측 대표단과의 오찬에서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에게 한국에서 발간된 리 부위원장의 아버지 이기영 작가의 소설 '고향'을 선물하고 악수하는 모습으로 책을 들고 있는 사람이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다. / 사진 = 경기도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가 2018년 11월 15일, 경기도 수원시 굿모닝하우스에서 열린, 북측 대표단과의 오찬에서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에게 한국에서 발간된 리 부위원장의 아버지 이기영 작가의 소설 '고향'을 선물하고 악수하는 모습으로 책을 들고 있는 사람이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다. / 사진 = 경기도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는 20181115, 경기도 수원시 굿모닝하우스에서 열린, 북측 대표단과의 오찬에서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에게 한국에서 발간된 리 부위원장의 아버지 이기영 작가의 소설 '고향'을 선물헸다.

 

노컷뉴스는 20181117이재명이 리종혁에게 선물한 '아버지 흔적'"많이 고맙소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비공개로 진행된 오찬에서 리 부위원장은 생각치 않았던 선물을 받아 들고 경기도의 세심한 준비에 대한 놀라움과 함께 눈에 띄게 기뻐한 것으로 전해졌다. 표정을 읽기 쉽지 않았던 그가 표시날 정도로 반색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고 밝히고 선물 받은 책은 다름 아닌 자신의 아버지인 작가 이기영(18951984)의 소설 '고향'이었기 때문. 이기영 작가의 3남인 리 부위원장은 오찬 중이었음에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내용을 몇 번씩이나 들쳐보는 등 감회가 남달랐다는 후문이라고 보도했다.

 

또한 북측 일행들도 현재 남쪽에서 '고향' 소설책이 판매되는 등 이기영 작가의 흔적, 발자취가 이어지고 있음에 반가움과 함께 놀라움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고 했다.

 

이어서 이 지사는 당시 리 부위원장에게 책을 건네면서 과거에는 아버님인 이기영 작가의 작품이 (이곳에서) 출간되는 것이 쉽지 않았으나 지금은 잘 출간되고 널리 읽히고 있다. 경기도에 오신 기념으로 준비를 했다고 말했고, 리 부위원장은 많이 고맙소라고 화답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기사에서 소설 '고향' 책은 이 지사가 북측 방문자 중 리 부위원장이 포함된 것을 알고 난 직후 직접 아이디어를 내 고른 것으로 전했졌다며 비화를 밝혔다.

비공개로 진행된 오찬에서,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로부터, 남측에서 발간된 소설인 「고향」을 선물 받고, 이기영 작가의 3남인 리 부위원장은 오찬 중이었음에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내용을 몇 번씩이나 들쳐보는 등 감회가 남달랐다는 후문. 사진 속에서도 리 부위원장의 미소띤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 사진=경기도
비공개로 진행된 오찬에서,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로부터, 남측에서 발간된 소설인 「고향」을 선물 받고, 이기영 작가의 3남인 리 부위원장은 오찬 중이었음에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내용을 몇 번씩이나 들쳐보는 등 감회가 남달랐다는 후문. 사진 속에서도 리 부위원장의 미소띤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 사진=경기도

 

민촌 이기영은 그의 소설 고향에서 성불사에 대해 적고 있는데, 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절 밑 동구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절벽과 바위사이로 두터운 그늘을 떠이고 섰다. 거기에는 녹음이 뚝뚝 떴고 매미 소리는 서늘하게 석간수처럼 흐른다.

그 옆으로 골짜기를 흐르는 맑은 물은 바둑돌 같은 반석을 씻고 흘러서 군데군데 석담(石潭)을 이루고는 다시 층암으로 떨어진다. 쳐다보면 의외한 석봉은 하늘과 마주 닿았는데 그 중턱에 조그맣게 터전을 잡고 제비집 같이 깃들인 것이 일심사란 외로운 절이다.

앞으로는 안계가 탁-트여서 멀리 서해 바다의 원경(遠景)이 연하(煙霞) 속으로 그림처럼 펼쳐있다. 그 사이로 연해 있는 잔단산록은 마치 바다의 파도처럼 푸른 굽이를 쳐나가고 다시 점점이 흩어진 마을들은 푸른 숲이 수묵처럼 얼클어진 속으로 아득한 그림자를 은은히 던졌다. 하늘에는 흰구름이 둥둥 떠돈다.

- 이기영, 고향,문학사상사, 2006, 267p.

 

민촌 이기영 선생은 조광19382월호의 민촌생(나의 이사 고난기-셋방 10이란 제목의 글에서 고향을 집필한 당시의 상황을 묘사했다.

 

바로 소화 7(1932) 봄이다. 나는 조선지광이 폐간된 뒤로는 그나마 잡지기사를 실직하고 있다가, 중앙일보의 처녀 장편이 신문이 휴간되는 바람에 역시 휴재(休載)하게 된 후로부터 나는 다소간에 일정한 수입이 딱 끊어지고 말았다.

나는 그해에 어린애까지 낳아서 식속을 또 하나 불린 데다가 그 자식이 태독(胎毒)으로 나올 때부터 병까지 앓아서 필경에는 단독(丹毒)에 걸려 가지고 55일만에 죽고, 또한 손위에 큰놈이 동시에 눈병이 생겨서 그날의 호구도 무책인데 우환까지 쌍나발을 부는 곡경(曲境)으로 지날 판이다.

그러니 집세를 또박또박 자그마치 9원씩이나 낼 돈이 어디 있으랴?

그때 일을 속에다 졸작을 하고 곳곳에 흠을 잡히니 우스운 일이다.

그 이듬해 여름까지 나는 집세를 밀어 내려오다가 최후의 일책으로 신문 소설의 장편을 쓰기로 결심하였다.

그래 나는 당장 호구의 거리가 없는 집안 살림을 H군에게 무턱으로 맡겨놓고 집을 떠나서 10여 년 동안 발을 들여놓지 않던 천안으로 변군을 찾아갔다.

천안은 나의 고향이다.

나는 그때 성불사로 올라가서 40일 동안 묵어가며 쓴 것이 졸작 고향의 일편이었다.

- 이기영, 민촌생(나의 이사 고난기-셋방 10,조광, 19382월호,

 

- 4회 쇠목고개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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