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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556] 임윤찬의 반 클라이번 콩쿠르 연주평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2.06.22 07:30
  • 수정 2022.06.22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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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8세의 나이로 유학을 가지도 않았던 임윤찬이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대상을 차지하였다. 불과 2년 전에 일련의 작곡가 그룹에게 유학을 갔다 오지 않고 국내의 음악대학에서만 수학하였다는 의미에서 순수 국내파 작곡가들이란 표현을 썼다가 '유학을 다녀온 기성 현음러로서 우월감에 빠진 상대 비하'라는 거센 항의를 받았는데 이제 언론에서도 대놓고 순수 국내파 피아니스트네, 유학을 가지도 않았는데 이런 국제 콩쿠르의 대상을 수상했네 하면서 대서특필하니 세대 차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40대 이상의 현 음악인이라면 소위 말하는 명함 하나 파고 달고 학교에 적을 두기 위해선 유학이 필수였고 서양 클래식 음악이 필연적으로 ‘타국에서 발원한 문화’라는 특성이 수반한다는 사실은, 바꿔 말해 완전히 다른 문화권 아래 있었던 국가가 타문화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문화 사대주의 또한 함께 확산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는데 지금은 도리어 셀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음악인들이 연일 쏟아져 나오고 유학이 필수 코스가 아니며 도리어 한국으로 유학 오는 실정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각설하고 이번 임윤찬의 반 클라이번 콩쿠르의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준결승과 결승의 감상평을 남긴다.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 포트워스에서 열린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결선에서 마린 알솝이 지휘하는 포트워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악장을 협연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임윤찬. 사진 제공: 반 클라이번 재단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 포트워스에서 열린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결선에서 마린 알솝이 지휘하는 포트워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악장을 협연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임윤찬. 사진 제공: 반 클라이번 재단

1. 준결승 세미 피날레(Semi finale) : 리스트 12개의 초절기교연습곡집(LISZT 12 Transcendental Etudes)

1번 전주곡: 장대하면서 대양과 같은 아르페지오가 한치의 흔들림도 없다.

2번: 명확한 박자감, 그리고 양손의 박진감 넘치는 교차

3번 풍경: 거인들 사이에 끼인 쉼터... 전원적인 수채화의 풍경이 펼쳐지며 하지(夏至) 오후에 나른함을 더해준다.

4번 마제파: 실황인데 이렇게 안 틀리고 치는 피아니스트가 전 세계가 또 존재할까? 미친듯한 속주, 악마에게 팔아넘긴 완벽에 가까운 테크닉과 지치지 않는 젊음의 스태미나, 체력안배와 완급조절! 곡 전체가, 그리고 콩쿠르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마제파를 마치니 벌떡 일어나 브라보를 외쳤다.

5번 도깨비불: 인간이 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곡을 이렇게 가볍고 산뜻하게 가지고 놀 수 있다니... 경이롭다.

6번 환영: 쇼팽의 겨울바람 리스트 버전이다.

7번 영웅: 테크닉은 기본이고 연주에 필수적인 구성과 형식에 대한 기본 이해가 밑받침되어 있다는 걸 증명하는 탄탄한 서사

8번 사냥: 동양인이라고 믿을 수 없다. 마치 한국 출신의 농구선수가 NBA를 제패한 거 같다. 이제 체격적으로도 전혀 꿀리지 않는다.

9번 회상: 리스트의 순례의 해 1권의 6번 '오베르망의 골짜기'도 나중에 꼭 들어보고 싶다.

10번: 19세기 유럽의 리스트가 21세기 한국의 임윤찬에 빙의한 듯한 신들린 그 자체

11번 밤의 회상: 어떻게 바로 앞의 광기를 끊고 단 3-4초 만의 짧은 호흡으로 전혀 다른 음악적 표현과 세계를 연출할 수 있는 걸까? 오른손과 왼손의 반대 방향 도약이 오차가 없이 도달한다. 반음계 화음도 정확하다. 나이를 망각시키는 중간부의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악풍과 그것을 이은 격정의 토로.

12번 눈보라: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트레몰로와 거기에 용해되어 있는 낭만파 음악의 깊은 미장센

콩쿠르에서 12개의 초절기교 연습곡을 쳤다는 게 믿어지지 않고 실황이라는 게 더욱더 믿을 수 없다. 임윤찬이 치는 초절기교연습곡 보고 '나도 한번 쳐보자'라는 섣부른 치기로 곡에 접근하면 곡소리 난다. 이젠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은 보리스 베레조프스키가 아닌 임.윤.찬이다.

2. 결승 세미 피날레(Finale)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RACHMANINOV Piano Concerto No. 3 in D Minor, op. 30

1악장의 제시부 2주제의 서정적인 도입과 선율미는 일품이며 카텐차에서는 맹수 같은 강렬한 타건으로 압도하면서 1악장 중간부의 절정으로 치닫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16분 경의 재현부의 1주제에서는 담백하기 이를 데 없는 무위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라흐마니노프 예술의 총체인 황홀한 2악장과 빠르게 몰아가지만 절대 삐거덕 거리지 않았던 광폭 질주의 3악장까지 18살의 예술가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의 담대함이다. 섣부른 자기 과잉과 자기애 대신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온전히 오케스트라와 밸런스를 맞추는 음악의 정석을 보여준다. 내가 독주자니 나한테 맞춰라 하는 듯한 오만도 없고 그렇다고 나이도 어리고 콩쿠르 참가자라는 겸손한 자세로서 무조건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에만 맞춰 나가는 게 아닌 진정한 협주곡이란 그리고 음악 만듦이란 이런 거라는 걸 보여준다. 이 한 편의 협주곡만으로 그보다 훨씬 연륜이 앞서고 더 배운 그리고 치지도 못하면서 겉멋에만 찌든 이기주의자들 앞에 깊은 가르침을 선사한다. 뜨려고 여러 가지 현대적이고 자의적인 해석과 별의별 시도를 하는 연주자들의 입을 대번에 막아버리는 연주의 정석: 이렇게 연주하면 누가 클래식이 과거이며 사장된 예술이며 생명력을 잃었다고 하겠는가. 결국 임윤찬 같이 못 하니 다른 편법을 쓰는 거라는 거만 드러난 셈. 앞의 초절기교 연습곡이 리스트의 빙의라면 이번에는 라흐마니노프의 완벽한 빙의이자 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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