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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536] 리뷰: 한혜열 & 윤호근 듀오 콘서트 슈베르트 '겨울나그네'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2.03.20 09:44
  • 수정 2022.03.20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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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19일 저녁 8시,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작년 4월에 이어 이번에는 '겨울나그네'다. 그때와 변한 거라고는 장소뿐이다. 10분간의 강지영의 해설도 똑같았다. 봄이 오는듯싶더니, 봄을 재촉하는 봄비가 내리고 쌀쌀한 바람과 하루 종일 축 가라앉은 전형적인 3월 초의 날씨는 겨울나그네를 감상하길 더할 나위 없는 분위기였다. 긴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니 고통이 지나가 새로 태어나고 싶은 사람은 언제든 죽을 각오가 되어 있으며 시작이 있으면 최상의 것은 저절로 뒤따라오는게 인생이다.

베이스 한혜열과 피아니스트 윤호근의 슈베르트 연가곡 시리즈 II '겨울나그네'

1번: 베이스 악보답게 플랫이 많다. 3절까지 끝나고 간주 후의 Bb장3화음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그 울림이 크고 깊기만 하다. 첫 곡임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고 괘도에 오른 것이다.

2번: 명확하고 뚜렷한 아티큘레이션

3번: 악센트가 강하다. 심장을 찌르는 것만 같다. 한혜열의 프레이즈 사이사이의 뉘앙스가 밀고 당기고 완급을 조절하더니 고통 속으로 미끄러진다. 고통은 개인의 실존적 이유이다.

4번: 전주부터 베이스가 강철갔다. 빠른 속도 안에서 군더더기 하나 없는 한혜열의

호흡은 안정적이다. 가사의 분절이 정확하여 빠르지만 의미 전달이 정확했다. 거기에 화자의 감정까지 동화되어 전달되니 금상첨화다.

5번: 중간부의 단조로 변한 그 8마디가 감미로우면서 애처롭다. 가사와 문맥이 완벽하게 승화된 음악을 두 음악가가 학습하고 분석하면서 역시나 뚜렷하게 해석해낸다. 가사가 살랑거리면 피아노도 따라 살랑거렸다. 장면은 노래의 가사가 에 맞춰 시시각각 변환되었다. 이 두 남자, 성문 앞 보리수처럼 클래식 음악의 든든한 파수꾼으로 성벽 앞에 서 있으리.

6번: 그놈의 셋잇단음표. 너무나 작위적인! 가끔은 마른 장작마냥 그냥 건조해도 무방한데...

7번: 징검다리와 같은 꿍짝꿍짝은 제각각인 바위인 모양이다. 불안한 다리 위에 선 한혜열이 그 제멋대로를 미묘한 음색의 변화로 감싸 안는다.

8번: 과거를 돌아보지 못하게 가만히 서있지 못하게 만드는 흡입력

9번: 모든 고통은 무덤에 닿으리라. 한혜열의 고통이 그대로 전해지고 폐부를 찌르면서 이제 그와 나는 하나가 된다. 일심동체다.

10번: 지치고 힘든 발걸음은 휴식을 원하지만 슈베르트는 지독하고 집요하게도 8분음표를 고집하면서 발걸음을 재촉한다.

11번: 이런 곡일수록 아무리 사소한 실수도 용납이 안된다. 왜? 아주 작은 균열이 모든 걸 한순간에 일장춘몽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12번: 장엄하다. 장대하다. 도도한 대양 같은 한혜열의 음성에 무대로 뛰어 들어가 그를 부둥껴 안고 대성통곡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하마터면 음악회 진상남으로 뉴스에 나올 뻔했다.

13번: 우편마차의 움직임이 너무 거칠고 과격하다. 배경이 정경을 지배해버리면 안 되지 않은가.

14번: 하룻밤 사이에 머리가 하얗게 새어버린 사람을 아는가? 난 안다. 춘추전국 시대의 오자서가 그랬고 현대에도 심심치 않게 그런 사람 발견한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한혜열의 겨울나그네 

15번: 왜 <늙은이의 머리> 끝나고 쉬지 않고 곧바로 진입하지 않았지? 그리고 이 노래...<까마귀> 제발 이제 한국말도 제대로 구사 못하면서 어쭙잖게 독일노래 부른다는 입문곡으로 중고등학생들에게 시달림을 그만 받게 놔두자. 이 노래는 그럴만한 수준이 아니다.

16번: 혼란스럽지만 길을 잃지 않고 풀어가는 두 사람의 뛰어난 수사학

17번: 갑자기 한혜열의 목소리로 이태리 오페라가 듣고 싶어졌다. 순수한 명랑함이 서성거렸다.

18번: <까마귀>와 마찬가지로 이 노래도 그만 괴롭혀라....

19번: 15에서 16번 대신 18번에서 19번으로 아타카를 여기서 의도적으로 연출했구나...

20번: 한혜열은 실연의 아픔으로 괴로워하는 소심남이 아니라 인류의 운명을 어깨에 짊어지고 괴로워하는 암포타스다. 곡도 최고 노래도 최고다. 오늘의 베스트다. 슈베르트의 마스터피스 중의 마스터피스다.

21번: <이정표>로 인해 곤두선 내 신경과 심신도 이제 좀 쉬자. 브라스밴드와 같은 피아노의 육중함도 일품이다.

22번: 여기까지 왔음에도, 종착지가 가까워옴에도, 한혜열의 목소리는 싱싱하고 용기가 넘치고 탄력으로 빛난다. 피아노는 퐁당퐁당이다. 앞의 것이 훌륭했다면 꼭 다음 건 앞의 것의 비해 빛이 바랜다. 그만큼 가혹하다. 올려놓은 기대치와 눈높이를 흔들리지 않고 전체를 지속한다는 거 어찌 보면 무리이기도 하다.

23번: 21번 <여인숙>과 일맥상통

24번: 담담하고 모든 걸 내던지 체념이 영원한 안식으로 인도한다. 그것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 슈베르트 역시 이 곡을 작곡하고 1년 후 누구나 가지만 아무도 못 돌아오는 길을 가지 않았던가.

두 남자의 조우! 멋지고 중후하다!

피아노는 곡의 해설, 장면 묘사, 배경 설명, 내용에 따른 상징성을 구현하는데 아주 뛰어났지만 반주의 영역을 가끔 넘어 성악을 압도하는 경우가 있었다. 마치 작곡가가 자신의 작품을 치는듯했다.

넘쳐나는 성악가들 사이에 관객을 음악회장으로 끌어올 수 있을 만큼의 주목받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한국의 성악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 태반이 대중의 스포트라이트와 관심에 목말라있고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의 좋아요에 열광하고 방송 출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광대 또는 연예인들인데 몇몇 안되지만 이렇게 사망 직전의 예술가곡의 명맥을 이어가는 인간문화재들이 존재한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그중 한 명이 한혜열이다. 윤호근과의 진중한 만남이 계속 이어지면서 그럼 올겨울에는 <백조의 노래>가 되고 내년에는 슈만 그리고 계속하여 볼프, 브람스, 슈트라우스로 이어지겠지. 바로 이거다. 우리가 고통을 감내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그 실존의 이유가.... 이 자체만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한혜열과 윤호근의 슈베르트 연가곡 II <겨울나그네> 독창회 총평은 본작에서의 가사로 대체하겠다.

Fremd bin ich eingezogen, fremd zieh wieder a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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