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성용원 음악통신 426] 리뷰: 한혜열 & 윤호근 듀오 콘서트 슈베르트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04.24 08:47
  • 수정 2021.04.24 09:4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공간을 넘어 이어지는 아프니깐 청춘인 이대남의 슬픈 사랑이야기

어이하여 필자는 질풍노도의 10대와 20대 초중반을 독일에서 자라고 보내 다른 한국 사람들과는 다르게 독일어를 알아듣고 구사하는 고통(?)을 받게 되었는가! 무언가의 사랑하는 대상을 타인과 공유하지 못하는 삶은 얼마나 고독한가! 한국에서 독일 가곡이라 하면 누가 즐기고 알아주는가! 불과 하루 앞두고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베이스 한혜열이 윤호근의 반주로 슈베르트의 연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전곡을 한다는 소식을 알게 되어 부리나케 표를 구해 금요일 당일, 오전과 오후 하루에 네 번이나 한강을 건너는 일정을 소화하면서까지 달려갔다.

베이스 한혜열이 부른 슈베르트 연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아무리 독일 가곡을 좋아하고 즐겨 부른다고 해도 엄연히 한국인이니 언어적인 측면에서의 언급은 삼가겠다. 총 20개의 가곡들을 개별적으로 소감을 적고 곡 제목은 삭제하고 숫자 표기로 대체했다. 테너 또는 바리톤으로만 듣다가 베이스가 부르는 전곡 실황은 처음 접했다. 그래서 산뜻하고 화사한 느낌보단 중후하면서 묵직했다.

1번: 발랄하고 활기차게 시작한다. 독일어판 윤선도의 오우거다. 경쾌하기 이를 데 없는 발자국이요 봄 햇살 가득한 나들이다. 피아노 반주는 가사에 따라 변한다. 냇물에서는 흐르고 맷돌에서는 왼손 저음이 무거워진다. 이렇게 첫 발을 뗀 여정의 종착지는 마냥 해피엔딩일 거만 같다.

2번: 정확한 목적지도 없이 시냇물이 인도하는 데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16분음표의 물결과 살짝 얹어진 듯한 한예열의 즐거운 환희가 청량하기 이를 데 없다.

3번: 절제된 발랄함이 돋보인다. 이 시냇물아(Ei, Baechlein) 부분에서 한혜열의 화자 전환은 상냥하기 그지없다.

4번: 지금까지 잘나가던 피아노가 전주에서 살짝 삐긋했다. 한혜열은 가사와 단어에 맞게 소리를 조절한다. hat sie dich geschickt(그녀가 널 보냈니?)에서는 정말 주인공을 사랑하게 여인에게 보내는 것처럼 소리를 밀어 전달한다.

5번: 곡의 두 번째 부분이라 할 수 있는 피아노 8분음표 해머가 가격하고 가사는 마치 현대의 랩같이 라임을 맞춘, '들어 올리고, 들어 나르고, 이리 쪼개고, 저리 두드리고' 부분에서 합이 안 맞았다. 하지만 Der Meister(주인님)에선 베이스가 주인공이다. 육중한, 거부할 수 없는 위엄이 섞인 베이스다운 등장이다.

6번: 지극히 낭만적이고 순수한 한 폭의 우화를 펼쳐 보인다. 오늘 부른 20개의 노래 중 베스트 5안에 들어간다. 애절하다. 6번을 들으니 마치 모차르트 <마술피리>에서의 1막 마지막 수수께끼에 이은 '자라스트로'가 연상되었다. '자라스트로'도 베이스다.

7번: 피아노의 8분음표 셋잇단음표의 연타는 흔들린다. 기계같이 정교하고 규칙적이었더라면. 그러다 보니 성악과 피아노의 밸런스가 유난히 흔들린다. 가사까지 빠르고 많아서 알아듣기 힘들었다.

8번: 굳이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의 내용을 기승전결로 나누자면 신나고 설레는 1-5번까지가 기(起), 6번부터 10번까지는 승(承)이라 할 수 있다. 이야기 전개 범위에 들어가는 노래들이 느리고 유절가곡이다. 여기에 나그네의 심정과 심리가 세밀하게 묘사되고 물방앗간 아가씨에 대한 연정의 정과 추억이 이어지면서 시인과 슈베르트의 실체가 이입된다. 두 사람이 속않이를 한다. 시를 쓴 뮐러나 작곡가 슈베르트 모두 찌질이다. 연애다운 연애 한번 못해보고 멀리서 바라만 보면서 푸념만 한다.

9번: 유절가곡의 묘미가 펼쳐진다. 한탄과 절규... 원망과 혼자서 잠 못 이루는 이불 속의 하이킥만 연속이다.

10번: 회상과 연연함이 음과 언어의 절묘한 조화로 펼쳐진다. 후주에서 슬픔은 한없이 증폭된다. 슈베르트 특유의 장단조 변화를 윤호근은 절묘하게 완급조절한다. 윤호근으로 인한 텍스처의 반전에서는 "아~" 하는 탄식이 절로 입에서 흘러나온다.

총 20개의 곡으로 이루어진 연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의 대장정을 마치고 인사하는 베이스 한혜열

11번: 분위기를 일순에 일거하면서 반전을 꾀한다. 굳은 결의와 의지를 표방한다.

12번: 6번과 더불어 또 하나의 백미다. 곡 자체로 후대의 바그너 악극을 예언하는 독일 무대극의 장면음악이다. 성악이 설명(?) 하고 피아노가 배경을 연출하는 새로운 시대 음악의 전주곡이다.

13번: 조금 더 가벼웠더라면.... 베이스라 테너랑 비교하는 건 무리이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왠지 이 곡에서만큼은 참을 수 없는 가벼움, 후하고 불면 날아가 버릴 거 같은 깃털이 되고 싶다.

14번: 8분음표의 수직적인 타건 시 불명확하다. 개별적이기보다는 한 덩어리로 묶어져버리니 정신이 없고 언어전달의 난관에 부딪힌다.

15번: 한혜열이 부르는 약박에서의 강박으로의 강세(Betonung)가 비수 같다.

16번: 이 죽일듯한 역설이여.... 13번과의 짝짓기다. 계속해서 빗방울같이 떨어지는 한 음 연타가 더욱 비수같이 후벼판다. 때린데만 때린다. 때린데 또 때린다. 초록색은 보기만 해도 징글징글하다.

17번: 정말 나쁘다. 셋잇단음표는 윤호근이 싫어하는 리듬형일지도 모르겠다.

18번: 부점리듬은 선명하고 유도적이다. 부점으로 이끌어 가면서 마지막 부분의 단조 전환은 기가 막히다. 저음과 pp의 연출은 황홀하기만 하다.

19번: 이제 작별의 노래다. 한혜열은 깨끗하고 정숙하다. 영원한 이별을 준비하듯이 천상의 노래가 윤호근의 절묘한 '나폴리6화음'과 괴를 같이 한다.

20번: 영원한 안식을 위한 자장가이자 찬송가 같은 경건함이 묻어난다. 한혜열의 정확한 반음정 구사와 안정적인 호흡은 한 줌의 위로(Quantum of Solace)로 남는다.

피아노 반주의 윤호근(왼쪽)

큰 목소리와 스태미나로 좌중을 압도하는 열창이 아닌 내면의 속삭임이자 화자일체, 음유의 산물이 가곡이다. 시와 음악이 별개가 아닌 하나다. 노래는 시와 음악에 깊이 체화된 산물이다. 이역만리 한국에서 독일 가곡 한다고 하면 누가 하든 만사를 제쳐두고 가서 듣고 그들의 이야기에 언제나 공감하고 싶다. 어차피 오늘의 스토리도 동서고금을 막론한 아프니깐 청춘인 이대남의 슬픈 사랑 이야기다. 한혜열과 윤호근의 슈베르트 연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독창회 총평은 본작에서의 가사로 대체하겠다.

Der Meister sagt zu Allen: Euer Werk hat mir gefallen, Euer Werk hat mir gefallen!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