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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끈

김정은 전문 기자
  • 입력 2022.01.22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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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죽음

고스케 안에 있던 어떤 끈이 뚝 소리 내며 끊겼다. 아마도 그건 아버지 어머니와 맞닿아 있기를 바라는 마지막 마음의 끈일 터였다. 그것이 뚝 끊겼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 나오는 말이다. 사업에 실패한 가족과 야반도주한 아들 고스케가 아버지에게 느꼈던 끊어진 마음의 끈이다. 아들에게 동의도 구하지 않고 강물로 차를 몰고 갈 심산이었던 부모였다.

컬트 삼총사가 해체된 게 궁금했다. 그저 한 사람이 너무 뛰어나서 팀을 떠났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실제로 해체된 후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더 친했던 두 사람의 뒷담화를 들었던 게 상처가 됐다고 한다.

나도 그런 마음의 끈이 끊어졌다. 대학원은 원하는 과로 선택하려고 시험을 쳤다. 여대만 나온 내가 남녀공학인 타학교에 혼자 시험을 치러 가려 하니 어색했다. 그 학교는 고등학교 동창도 다니는데 작은 학교라 마주치기도 쑥스러웠다.

그래서 대학 친구 하나를 데리고 갔다. 친구는 시험을 보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 학교가 타교생을 받지 않기로 악명이 높은 학교였기 때문이다. 같은 국문과를 선택해도 3번을 떨어지고 결국 입학 못 한 선배도 있다고 게다가 전공도 바꾼 내가 절대 들어갈 수 없다는 이유였다.

개의치 않았다. 전공이 너무 자신 있었기 때문이다. 6개월간 영어도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솔직히 영어 문법책을 고등학교 시절에 단 한 번도 본 적 없다. 영어 공부를 한 거라곤 대학원 준비 때가 처음이다. 처음으로 중학교 수준의 문법책부터 시작해서 삼만 삼천 단어 책을 다 외우고 대학원 수준의 모든 문법책을 독파했다.

​서양철학과 동양철학도 다 혼자 읽어 나갔다. 전공시험과 영어시험이 자신 있었다. 하지만 제2 외국어인 불어 시험이 문제였다. 고등학교 때는 불어를 만점 받았지만 그 사이 딱히 공부하진 않았다. 영어와 전공 시험 준비에도 벅차서 불어는 포기했다. 비중도 낮아서 문제 없을 듯했다.

친구가 잘 쳤냐 물어서 영어와 전공은 완벽한데 불어를 좀 제대로 해석 못 하고 나왔다고 했다. 다시 본교로 돌아가서 서류를 떼야 했고 조교를 하고 있던 친구는 조교실에 들르라고 말하고 헤어졌다. 서류를 뗀 후 조교실에 갔는데 문이 반쯤 열려 있었고 소리가 들렸다. 나에 대한 말이었다.

야, 불어를 하나도 못 쓰고 나왔단다. 그게 들어가겠냐?

기분 잡쳤다. 80점 정도란 얘기를 한 건데 단 한 자도 못 쓴 것처럼 말하는 거다. 대통령도 뒷말을 듣는다. 내 말을 하는 거 자체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내게 들리면 안 되는 거다. 앉혀 놓은 후배들은 알지도 못하는 후배들이었다.

그대로 발길을 돌렸다. 나중에 눈치챈 친구는 조교실에 들렀냐고 물었다.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그 친구와는 마음의 끈이 끊어진 거다. 친구는 자신의 실수를 어쩔 줄 몰라 했지만 대놓고 물어보지 못했다. 내가 내색하지 않아서다.

말을 하는 건 화해를 할 수 있다는 거다. 그 친구와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친구가 미안해하면 받아줘야 하기 때문이다. 남을 나쁘게 말하는 사람과 우정을 이어가고 싶지 않다. 끊어진 마음의 끈은 다시 붙지 않는다. 용서한다고 신뢰가 다시 붙는 건 아니다. 사랑이 유리 같은 것처럼 신뢰도 유리 같은 거다.

컬투를 좋아한다. 재미있어서는 당연한 거고 다른 두 가지 이유다. 친구가 단체여행을 갔는데 같은 팀 중 정찬우 씨가 가족여행을 왔단다. 본인 어머님인지 아내분 어머님인지 어르신 분을 너무 지극히 모시고 엄청 효자라고 해서 좋아졌다.

두 번째는 라디오 방송에 구경 갔는데 태균 씨는 개구쟁이처럼 방청객들과 잘 호흡해서 즐거웠고, 정찬우 씨는 단 한 번도 방청 온 사람들을 쳐다보지 않아서다. 이상한 이유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여자를 쳐다보지 않는 남자를 좋아한다.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여자를 쳐다본다. 물론 사심은 없다. 여자가 못생겼건 이쁘건 그냥 여자면 지나가는 여자도 다 쳐다본다. 그런 남자가 싫다. 사건의 시작은 시선이다. 그 출발점에 서지 않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뿐이다.

​컬트 삼총사를 떠난 그분 마음도 이해되고 악의 없었던 컬투 마음도 알 수 있다. 내 경우는 흉을 본 거지만 그 경우는 팀의 발전을 위한 의논 같은 거다. 어느 경우든 이미 끊어진 마음은 똑같지만 다른 점은 세 분은 다시 우정을 이으셨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고스케처럼 뚝 끊겨버렸다. 이제는 오랜 시간이 지나 그 맘조차도 사라졌지만 사랑이나 우정이나 끊어진 끈은 잇기 힘들다. 끊어지기 전에 신의를 지키는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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