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인터뷰] 잘 먹고 잘 살려 미국 간 청년, 「통일 마라토너」 돼 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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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인터뷰] 잘 먹고 잘 살려 미국 간 청년, 「통일 마라토너」 돼 귀국
  • 강승혁 전문 기자
    강승혁 전문 기자 wonil21@peacerailway.org
  • 승인 2021.11.17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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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에서 백두까지 2021 – 평화 달리기
해마다 달리다 보면 언젠가 북녘땅이 열릴 테고
강명구 평화마라토너는 작년 5월 뇌출혈로 오른팔과 다리가 정상이 아냐
11월 7일 강명구 평화마라토너는 615km를 완주하고 임진각으로 들어와

<[현장 인터뷰] 잘 먹고 잘 살려 미국 간 청년, 통일 마라토너 돼>

 

2021113일 오전 10, 기자는 안성버스종합터미널에 도착한 고속버스에서 내렸다.

이날은 기자가 강명구의 평화달리기15일차 충북 진천 배티고개오산역 구간에 일일 진행요원으로 참여하는 날이다. 잠시 후, 강명구의 평화달리기를 차량으로 지원하는 이황휘 선생이 도착해 기자를 평화달리기 현장으로 안내했다. 여기서 처음으로 햇빛에 까맣게 그을린 피부의 강명구 마라토너를 만나게 되었다.

11월 23일, 배티고개(충북 진천)→오산역 구간 중, 안성시 하천변에서 잠시 휴식 중인  강명구 통일 마라토너.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11월 23일, 배티고개(충북 진천)→오산역 구간 중, 안성시 하천변에서 잠시 휴식 중인 강명구 통일 마라토너.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2021년 11월 3일 오전, 강명구 통일 마라토너의 평화달리기 안성시 현장에서 휴식 뒤 출발에 앞서 기자와 한 컷 촬영했다. / 사진 제공=휴전선 넘자 시민행동
2021년 11월 3일 오전, 강명구 통일 마라토너의 평화달리기 안성시 현장에서 휴식 뒤 출발에 앞서 기자와 한 컷 촬영했다. / 사진 제공=휴전선 넘자 시민행동

 

이날 진행된 강명구의 평화달리기의 정식 명칭은 한라에서 백두까지 2021 평화 달리기.

한라에서 백두까지2019년에 붙인 이름으로, 휴전선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는 분단 현실을 극복하고자 평화마라토너강명구는 한라에서 백두까지를 해마다 달린다. 2021년 올해 세 번째다.

 

이번 행사는 1020일 한라산 백록담을 출발해 117일 임진각까지 615km19일간 달리는 긴 여정이었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평화 달리기 2021”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동안 남북연락통신망이 재개통되고 문재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제안하고 언론의 주요 이슈로 등장하는 등 남북 평화협력의 물꼬가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평화 달리기 구간 안내
평화 달리기 구간 안내

 

11월 6일, 서울역 부근 상공회의소 앞을 뛰고 있는 강명구 마라토너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11월 6일, 서울역 부근 상공회의소 앞을 뛰고 있는 강명구 마라토너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강명구의 평화달리기를 추진한 휴전선 넘자 시민행동은 홍보 글을 통해서 “201791, 강명구는 네덜란드 헤이그를 출발하여 제주도까지 남북 평화협력을 염원하며 유라시아를 달렸다. 유모차에 텐트와 비상식량을 싣고 유럽과 아시아의 낯선 나라들을 혼자 달렸다. 무엇이 무모한 유라시아 횡단 달리기를 감행하게 했을까? 그것은 할아버지의 무덤이 있는, 아버지의 고향 황해도 송림 북녘땅을 가보고자 하는 일념에서였다. 송림에 갈 수 있으려면 한반도에 평화가 와야 한다. 그래서 한반도평화를 내걸고 달렸다고 유럽에서 아시아로 내달린 사연을 소개했다.

 

 

또한 “2018106, 마침내 천신만고 13개월 만에 중국 단둥 압록강변에 도달했다. 유럽과 아시아를 달리는 동안 북미 간 전쟁 일보 직전이던 정세가 급변하여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연거푸 개최되는 등 평화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그래서 북녘땅 할아버지 산소에 성묘하고 휴전선을 넘어 한라산 백록담에서 16,000km 대장정을 마칠 수 있겠다고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북한 입국 허가가 끝끝내 나지 않았다. 한 달간 압록강에서 북녘땅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비자 만료로 1,000km를 남겨두고 한국에 돌아왔다. 미완의 유라시아 달리기 완주를 기약하며라고 두 번째의 유라시아 횡단에 대해 적고 있다.

 

11월 6일, 독립문 앞에서의 강명구 마라토너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11월 6일, 독립문 앞에서의 강명구 마라토너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이어서 돌아오자마자 강명구 자신의 소원을 달성하기 위해, 또 한반도평화를 염원하며 동해에서 고성까지, 고성에서 강화도까지, 제주에서 임진각까지 계속 달렸다. 마지막 남은 북녘구간 완성을 간절히 염원한다라며 강명구의 말을 덧붙였다.

 

 해마다 달리다 보면 언젠가 북녘땅이 열릴 테고, 그러면 내 소원이 이루어질 테고, 남북 평화도 이루어질 날이 오겠죠

 

또한 현재 강명구 평화마라토너는 작년 5월 뇌출혈로 오른팔과 다리가 정상이 아니다. 하지만 병원 치료를 마치고 나자마자 또 두 번째 한라에서 백두까지를 절뚝거리며 혼자 달렸다.”고 밝혔다.

 

11월 6일,  3호선 삼송역 부근에서의 강명구 마라토너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11월 6일, 3호선 삼송역 부근에서의 강명구 마라토너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그러면서 “ 1020, 세 번째 <한백평화달리기> 출발점인 한라산 백록담에 올라 평화발원제를 올리며 기도할 것이다. 아버지 고향 땅을 달릴 수 있게 해달라고. 또 기도할 것이다. 내년 24,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남···중 정상이 모여 종전선언 발표하고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게 해달라고. 그의 기도가 꼭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하며 하루빨리 남북이 화해하고 코로나19도 물러가서 강명구 평화마라토너가 휴전선 넘어 북녘땅을 달릴 수 있길 간절히 기원한다.”고 바램을 적었다.

 

기자는 이날 35km 하루 구간 중 18km를 강명구 마라토너와 함께 뛰고 걸었다. 강명구 마라토너는 이날 허리에 통증이 심해 자주 걸음과 달리기를 멈추어 허리를 폈는데, 안성시를 지나 오산으로 넘어가는 오르막 산길을 만나며 허리 통증으로 달리기를 잠시 중단하고, 내일 다시 뛰기로 하고, 이날 일정을 마무리 했다.

11월 3일 안성시, 갑작스러운 허리 통증으로 멈춰서 허리를 감싸는 강명구 마라토너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11월 3일 안성시, 갑작스러운 허리 통증으로 멈춰서 허리를 감싸는 강명구 마라토너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강명구 마라토너는 아픈 몸을 회복하고, 다음날부터 다시 일정을 이어가 117일 임진각 망배단에서 평화기원제 행사에 참석해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다.

임진각을 향해 임진강 강변을 달리고 있는 강명구 평화 달리기 일행들. / 사진 제공=휴전선넘자시민행동
마지막 임진각을 향해 임진강 강변을 이동하고 있는 강명구 평화 달리기 일행들. / 사진 제공=휴전선넘자시민행동
한라에서 백두까지 615Km의 긴 여정을 마치고 임진각 망배단으로 들어오는 강명구 통일 마라토너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한라에서 백두까지 615Km의 긴 여정을 마치고 임진각 망배단으로 들어오는 강명구 통일 마라토너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한백마라톤의 도착지 임진각 망배단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 기원제'에 참가자들이 기념 사진을 찍었다.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한백마라톤의 도착지 임진각 망배단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 기원제'에 참가자들이 기념 사진을 찍었다.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강명구 마라토너와 함께한 날, 점심시간에 기자는 강명구 선생과 식사하며 인터뷰하는 행운을 가졌다. 아래는 이날 현장에서 점심 식사가 나오기 전에 간단히 인터뷰한 내용이다.

11월 3일 기자와 인터뷰 하기 전 SNS를 확인하는 강명구 마라토너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11월 3일 기자와 인터뷰 하기 전 SNS를 확인하는 강명구 마라토너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기자: 처음에 평화 마라톤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떤 것이었죠.

대단한 일을 하고 계신데, 말씀 좀 해 주시죠

 

강명구: 처음 제가 미국 생활 25, 6년 했는데 미국 처음에 갔을 때 외국에 (여행)하러 간 거 아니고 나 혼자 잘 먹고 () 살겠다는 마음으로 간 거죠.

 

강명구: 근데 이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내가 과연 잘 먹고 살고 있는 건가 그런 회의가 들기 시작한 거예요.

말하자면 이제 중년 사춘기죠. 그래서 그 무렵에 누가 이제 저희 선배가 하나 미국 횡단을 마라톤으로 했는데, “! (그걸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 사람은 이제 뉴욕 사회에서 명망가여서 스폰()을 얻기가 쉬운데 나 같은 사람은 뭐 누가 스폰() 해줄 것 같지도 않고 그 돈을 자비로 마련하는 것도 안 될 것 같고 그냥 그렇게 한번 해보고 싶다.”라고 생각하다가, 저걸 혼자서 하면 경비가 별로 안 될 텐데, 배낭을 메고 달릴 수는 없고. 그리고 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센트럴 파크에서 어떤 엄마가 유모차에다 애기를 싣고 달리는 장면을 본 거예요.

 

강명구: “! 저 유모차는 짐을 좀 싣고 달릴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그 순간 팍 꽂히더라고, 그러면서 마음이 이제 유체이탈이 된 거지. 마음이 벌써 떠나고 있어요.

 

그래도 저걸 몇 달 하려면은 내가 스몰 비즈니스를 하는 거 있는데, 그거 몇 달 조금 다 망가지고, 그다음에 팔고 하자니 어느 세상에 팔릴 것 같지도 않고, 그때도 경기가 굉장히 안 좋을 때로서. 그래서 그 당시에 이제 와이프가 저하고 결혼한 지 한 5, 6년 되면서, 태국 와이프인데, 홈시기에 온 거예요. 집에 가자는 둥 뭐 한국으로 가든지 태국으로 가든지 하자. 여기서 뭐 이거 미국 생활이 아름다운 것 같지도 않다. 살기 힘들 것 같고, 그거 오케이 알았어. 난 그 대신 내가 이거 대륙 횡단을 한 번 해보고 천천히 머리를 좀 정리 정돈을 하고선 우리 한 번 인생을 재설계하자. 그러고 이제 시작을 했는데, ! 저 유모차를 사놓고 보니까 앞이 허전한 거예요.

 

그 시작은 뭐 개인적인 거였지만 공익심, 기왕 하는 거, 공익심 있는 슬로건을 하나 내걸자 그렇게 시작을 했는데 이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가 얼떨결에 생각난 게 남북 평화 통일이야.

 

기자: 얼떨결에 통일 운동가가 되셨네요. 하하

 

강명구: 그런데 저는 말했다시피 제가 처음도 아니고 한국 사람으로 두 번째고, 뭐 세계적으로는 한 삼사백 번째, 아시아인으로서는 일본 사람들이 한 오 육십 명 했어요.

 

기자: 오 육십 명!

 

강명구: 오 육십 명도 넘을 거예요. 아마

 

기자: 일본 사람들이 많이 했군요.

 

강명구: 일본은 아마추어 마라톤은 굉장히 강국이었으니까. 그래서 뭐든지 첫 번째만 주목을 받지 내가 한국 사람으론 두 번째. 주목받을 생각을 안 했는데, 그래도 이제 기사에 몇 번 나가고, 그 기자가 기사를 기가 막히게 뽑아낸 거야. ! 아시아 사람으로서는 무도움으로 횡단하는 건 처음이다. 혼자서 그러니까 그냥 지극히 개인적인 그냥 달리기가 이제 첫, 아시안 최초라고 그러니까 이제 사심이 생기기 시작한 거죠.

 

이거 한 번 해보면 내가 찌질하게 못나게 인생 오십을 살았는데 이거 하면 그래도 내가 뭐 그래도 아시안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도 있겠네.

 

기자: 그렇죠. 개인적으로 무도움 개인 최초, 아시아 최초. 그게 몇 년도였죠. 아까 연도를 말씀 안 하셨는데,,,

 

강명구: 2015!

 

기자: 2015년도에 지금부터 한 6년 전, 식사하시죠.

 

강명구: 그래서 처음에는 뭐 가다가 힘들면 돌아오지 그런 생각으로 출발했는데,

이제 잘만 하면 나도 찌질하고 못난 사람에서 탈피할 것 같으니까 사심이 생겨가지고 (가다 보니까) 그리고 이 신문 기사에 몇 번 나오니까 사람들이 강명구라는 이름은 잘 기억을 못하는데 이제 자기들끼리 얘기할 적에 이제 통일 마라토너라고, 사람들이...

 

기자: 이름은 잘 몰라도.

 

강명구: . 통일을 내걸고선 뛰니깐.

 

기자: 최초로 내걸었으니까.

 

강명구: . 그래서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가 생각나잖아요.

 

내가 그 이름을 부르기 전에는 다만 몸집에 불과했다.

내가 이름을 불러줬을 때, 너는 비로소 꽃으로 피어났다.”

 

사람들이 통일 마라토너로 불러주기 시작하면서 난 통일 마라토너가 되기 시작하는 거네요.

 

기자: . 이번에 이제 오시다 보니까 허리가 조금씩 아프신 것 같은데 치료는 받고 계신가요? 이렇게 허리가 조금씩 전에도 아프셨을 텐데...

 

강명구: 허리는 안 아팠는데

며칠 전부터 청주 오기 전날인가 청주에서 한번 치료를 받았어요.

통증 병원에 (가서)

 

기자: 엊그제 사진이 올라왔던데 치료받으시는 거.

2~3, 오늘이 수요일 목, , , 4일 남았네요.

4일만 잘 달려주시면 이제 마치게됩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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