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용원 음악통신 427] 리뷰: 팬아시아 필하모니아 제11회 정기연주회 '동행 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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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427] 리뷰: 팬아시아 필하모니아 제11회 정기연주회 '동행 XI'
  • 성용원 작곡가
    성용원 작곡가 klingsol@hanmail.net
  • 승인 2021.04.25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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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4일 토요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한 해에만 배출되는 수백 명의 음악대학 졸업생들, 그중에서 대학원을 진학하거나 유학을 가는 사람들의 비율은 아무리 적게 잡는다 해도 1/3은 될 터고 나머지는 계속 학업을 이어나가지 않고 현장으로 진입, 학원이나 레슨, 또는 연주활동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가거나 다른 직업을 찾는다. 결국 음악이란 하는 사람 즐거우면서 그 가치를 알아줘 자발적으로 지갑을 여는 대중들이 있을 때에야만이 수입이 생긴다. 동서고금에 음악만 해서 벨 에포크가 언제 있었는가? 떴다방 식의 헤쳐모여로만 악단이 운영이 되고 낮에는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밤에는 모여 노래 부르는(또는 거꾸로) 현실이 지금 코로나 때문이고 현재만 처하고 있는 비극이겠는가? 궁정의 악단이나 교회나 재력가, 지방 유지들에 의해 고용되지 않고 프리랜서로만 당당히 영위했던 위인들은 손에 꼽힌다. 클래식이 돈이 되지 않고 표가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각 지방 소도시까지 어찌 되었든 간에 예술단, 합창단, 오케스트라를 유지하면서 문화라는 체면을 지키고 있는 게 우리나라니 복지적인 측면에서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이 적다고 할 수도 없다. 대학에 출강을 하거나 번듯한 무대에 서서 남들 앞에서 연주를 하기 위해서는 최소 10년은 인고의 세월의 보내야 고진감래다. 한석봉만 지천이고 그 글씨를 인정하고 사주는 사람은 없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지출되는 막대한 비용과 노력, 박사 학위도 모자라 포스트 박사 학위를 따와도 설 데 없고 갈 데 없고 학위장사로 돈 벌려고 우후죽순 생기는 학위수여기관. 경제적 잣대만 들이민다면 투자 대비 이윤 창출은 무에 가깝지만 연주활동을 그래도 이어가기 위해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해야 하는 어거지. 평생 해온 업이 음악인 사람들이 독주자로 무대에 서는 건 가뭄에 콩 나듯 드문 일이다.

팬아시아필하모니아의 지휘자 이종진과 베토벤 4번을 협연한 피아니스트 유시연
팬아시아필하모니아의 지휘자 이종진과 베토벤 4번을 협연한 피아니스트 유시연

당신이 만약 연주자요, 음악을 수십 년간 해온 사람이라면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같은 대규모 홀에서 오케스트라 협연을 몇 번이나 해보았는가 자문해보라. 아님 현재 학생이라면 앞으로 얼마나 자주 무대에 서고 실내악을 하고 오케스트라와 협주곡을 연주할 거라 여기는지도. 유튜브와 미디어를 통해 대가들을 통해서만 듣는 차이콥스키의 피아노협주곡이나 바이올린협주곡 또는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이나 멘델스존의 바이올린협주곡을 당신을 실제로 해 보았는가? 했다면 몇 번이나? 음악이 업이요 음악 연주의 이유가 무대에서의 희열이요 연주로서의 성취라면 일생 동안 몇 번이나 협연을 하고 무대에 설 거라고 여기는가? 만약 그 기회가 당신에게 온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쉽게 포기하고 하기 꺼려 할 건지 아님 다음에 더 좋은 기회가 오겠지라는 겸손으로 실력을 더욱 갈고 나중에 하겠다고 물러나겠는가? 당신이 성악가인데 오페라 무대에 주인공 비올레타나 카르멘 또는 피가로로 무대에 설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도 작곡가 입장에서 지금까지 남긴 여섯 개의 오페라와 관현악곡들을 비롯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게 없는 귀하고 귀한 작품들이 정부의 지원금으로 개최되는 일회성 발표 말고 꾸준히 많은 악단에 의해 연주되고 한 사람이라도 더 들어 내 이름은 모르더라도 내 음악이 사람들의 마음에 각인되고 내가 베토벤을 통해 감동을 눈물을 흘린 것처럼 내 음악을 듣고 누군가가 감동의 눈물을 흘리길 원한다. 기존 기라성 같은 고금의 명곡들도 자주 연주되지 않은 마당에 창작곡을 특별한 목적이나 취지 없이 베를린 필하모닉이나 뉴욕 필하모닉, 서울시립교향악단 등의 유수 단체가 연주해 줄리 만무하다. 그럴 바에 불세출의 작품을 남기는데 더 신경 쓰라고? 결국 화제성, 스타성이 예술가의 가치와 직결한다고? 그런 순진한 이상을 쫓기엔 하릴없이 나이만 너무 많이 먹었고 일모도원이다. 결국 자본이 작품을 만드는 세상의 평범하 이치를 깨달은 불혹이 넘은 작곡가가 작품을 연주할 여건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타협을 해야 하는가? 유난히 명분에 집착하고 타인의 평가에 목을 매는 우리 사회 풍토에서 문예위에 선정된 필자의 <전쟁레퀴엠>은 위 조건을 충족했음에도 불구하고 5년 전 초연 이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이걸 다시 올리기 위해선 자본이 필요하다. 대편성 오케스트라에 합창단, 솔리스트만 3명이다. 작곡가로서 이 곡을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베르디 레퀴엠이나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 같이 스펙터클 하게 광화문광장이나 서울시청 광장 앞에서 6.25를 추모하는 날에 거국적으로 올리는 꿈을 꾸지 않은다면 그게 살아 있는 삶인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3번부터 5번과 코리올란 서곡으로 11회 정기연주회를 마친 팬아시아필하모니아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3번부터 5번과 코리올란 서곡으로 11회 정기연주회를 마친 팬아시아필하모니아

무대는 학습의 장이자 성장의 발판이다. 골방에 처박혀 수년간 자기와의 싸움을 한 연주자들은 실력 차이를 떠나서 모두 똑같이 무대에 서고 싶은 꿈을 꾼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래봤자 몇 번이나 일생에 소원성취를 하겠는가! 듣는 사람 없고 찾는 사람 없는 죽어 있는 생물을 그저 전공생들끼리 다루는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으니 음악인이라는 이너서클 안에서만 경제가 돌아갈 수밖에 없다. 무대 없다고 푸념하고 수입이 없다고 한탄하지만 누군가는 하나의 기획연주회를 개최해야지 일자리가 창출되고 악사들은 호출을 받아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다. 자본이 순환되고 그렇게 흐른 자본으로 다음 연주회를 또 준비하면서 한 명이라도 더 자신이 배운 걸 바탕으로 소액이라도 벌어 갈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되는 거다. 클래식 음악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인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아닌 그토록 갈망하고 요구하는 더불어 잘 사는 사회가 된다.

그래서 이번 팬아시아 필하모니아 제11회 정기연주회에 함께 한 3명의 독주자들, 이다진, 김현정, 유시연 모두 챔피언이다. 스스로에 대한 뿌듯함과 여기까지 지탱하고 동행한 부모님과 가족들 역시 같이 브라보를 들을 자격이 있다. 아니 일가친척이나 지인도 아닌데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2시간 30분 동안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5번에 코리올란 서곡까지 들은 오늘의 관객들에게도 브라보를 외쳐주고 싶다. 한동안 난 베토벤 안 들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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