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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281] Critique: 말러리안 시리즈 5, 말러 교향곡 9번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7.25 10:10
  • 수정 2020.07.25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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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24일 금요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해머를 통해 '운명의 타격'이 관통된지 벌써 1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어떤 이도 예견치 못한 정국의 변화와 인간사 소용돌이가 요동쳤다. 일명 조국 사태로 국론이 분열되었으며 이념, 노소, 젠더 갈등은 더욱 극심해졌다. 이런 모든 걸 부지불식간에 삼켜버린 건 인류 공동의 위협이라는 역병의 창궐이었다. 온 인류의 생명과 안전이 코로나19라는 전염병으로 풍전등화의 상태에 놓이고 우리는 감염의 공포에 여전히 떨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문화예술계는 초토화 되어 3-6월까지 거의 수입이 없다시피 올 스톱 상황이었다. 이제야 서서히 기지개를 켜려고 하는 이때, 말러리안들이 분연히 일어났다. 구스타프 말러를 사랑하는 연주자들이 전공, 비전공 여부를 개의치 않고 모여 말러의 곡을 직접 연주하면서 감동을 맛보는 그 확실한 명제 하에 말러리안은 세상의 어떤 평지풍파에도 흔들리지 않을 단체다. 정작 전공자들이, 기성인들이 몸을 사리고 움츠러들 때 세상에 대한 도전과 열망으로 가득 찬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젊은이들이 모여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자체가 현재의 상황에 큰 용기와 힘을 선사한다.

지휘자 진솔과 무대를 가득 채운 말러리안
지휘자 진솔과 무대를 가득 채운 말러리안

1년 사이에 필자 개인적으로도 일신의 변화가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음악대학이 아닌 인문, 언어, 경영 등이 특화된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교양수업으로 클래식을 가르치게 되면서 비 전공자지만 학교 동아리 오케스트라, 대학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면서 악기를 연주하는 학생들을 많이 만나게 되어 그들의 사정을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다. 현재는 다른 전공을 택했지만 개중에는 고등학교 때까지 음악 전공의 길을 걸은 학생도 많았고 그래서 그런지 기량 연마에만 몰두하는 음대생들보다 비록 테크닉에서 밀릴지는 모르겠지만 음악에 더욱 애착을 가지고 삶의 스트레스를 음악으로 해소하는 경우를 왕왕 접했다. 무대를 가득 매운 대편성의 오케스트라는 보고만 있어도 압도적이고 군중심리를 자극한다. 민간에서는 예산 등의 이유로 쉬 모을 수 없는 인원들이다. 말러를 하고 싶어 모였기 때문에 가능한 군집이다. 그 인원에서 뿜어져 나오는 특히나 현악기들의 소리는 그 숫자나 되나 가능한 밀도 깊은 사운드요, 안 그래도 요 근래 오케스트라 공연의 취소와 연기 등으로 굶주려 있는 음악 감상의 허기를 포만감이 가득하게 만들어주었다. 3명을 제외하고는 마스크 착용자가 없었다. 연습과 리허설 때는 물론 마스크를 착용하고 단원들끼리도 띄어 앉으면서 방역에 최선을 다했을 테다. 숨을 집어넣어 소리를 내야 하는 목금관악기가 아니라면 연주 중에 입을 닫고 하니 비말이 튈 리 만무하다. 기성 연주자들이 감염의 공포에 더욱 지레 겁먹고 마스크를 쓰고 연주하고 목금관악기는 반사판을 부착해서 차단하는 등 경계 한다. 물론 음악이 업인 사람들이라 더욱 조심할 테지만 지나친 경계와 눈치 보기, 몸 사리기가 아닌 자신감과 당당함으로 무대에 오른 단원들을 보니 괜한 필자의 예술가적 호기를 건드려 시원스러웠다. 

말러리안의 다섯번째 연주회, 교향곡 9번 포스터
말러리안의 다섯번째 연주회, 교향곡 9번 포스터

1년 사이 말러리안은 또 다른 모습이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활동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새로 영입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작년에 비해 더욱 성숙해진 자세로 기량도 일취월장했다는 점이다. 작년이 풋풋했다면 올해는 구스타프 말러 유스 오케스트라를 보는 듯했다. 도저히 아마추어라고는 믿어지지 않은 합주였다. 디테일이 살아 있었고 눈감아주고 넘어갈 수 있는 작은 실수도 거의 없었고 그 흔한 잔향의 파편들도 거의 없었다. 특히나 1악장의 집중력은 팽팽했다. 적절한 긴장이 유지되면서 마치 오랫동안 같이 호흡을 맞춘 사이처럼 응집력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도 각 파트의 수석들은 정체가 궁금하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길래 기성 오케스트라의 단원 같은 놀라운 솜씨를 보이는가! 어느 누구의 우열을 가릴 수 없이 플루트부터 바순까지, 그 어려운 호른부터 3악장 중간부의 알프스 호수의 청량함을 맛볼 수 있는 트럼펫 솔로까지 지휘자 진솔이 1년 사이에 마법을 부린 건가?

지휘자 진솔, 사진 출처: 말러리안 SNS
지휘자 진솔, 사진 출처: 말러리안 SNS

지휘자 진솔은 특이하게도 짝수 악장에서는 마치 이종진처럼 맨손으로 지휘했다. 지휘봉을 내려놓고 맨손으로 어루만져진 2악장은 처음의 비올라 도입부부터 싱그러웠다. 말러 특유의 광기 어리지만 소박한 민속 무곡이 우아하게 펼쳐진다. 춤곡이란 핵심을 정확히 짚어내면서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말러 풍의 스케르초 악장(춤곡)을 숨 가쁘게 진행시킨다. 고통스럽지만 우리 모두 이 미친, 아니 미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역설하면서 같이 춤을 추자고 손을 내민다. 거칠고 과장되며 비웃는 조롱과 냉소가 3악장에서 사정없이 할퀴고 지나간다. 말러 내면에서 꿈틀대는 불안과 고통의 몸부림이다. 광인이다. 그렇게 광란의 밤은 지나가고 맨손의 위로는 우리를 이제 영원한 안식으로 인도한다. 4악장은 해탈과 용서 그리고 초월의 악장이다. 천국이 펼쳐진다. 악장 말미의 첼로 솔로는 한 줄기 거룩한 음성으로서 경이로웠다. 거기엔 코로나 따위의 바이러스도 없고 인간사 해묵은 시비와 오해도 없다. 사상검증도 없고 남녀노소 갈등과 대립도 없다. 그저 평화만 있을 뿐. 그래서 말러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말러의 세계에 빠지면 오만하고 같잖은 인간들의 아귀다툼이 얼마나 가소로운지 알게 된다. 

90분의 대장정이 끝나고 지휘자 진솔은 시종일관 등을 보이며 단원들을 일으켜 세워 인사시키고 박수 받게 하느라 바빴다. 섬김의 리더십, 동행의 모습을 몸소 실천하면서 말러리안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
90분의 대장정이 끝나고 지휘자 진솔은 시종일관 등을 보이며 단원들을 일으켜 세워 인사시키고 박수 받게 하느라 바빴다. 섬김의 리더십, 동행의 모습을 몸소 실천하면서 말러리안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

아르티제 딜라이트 프로젝트(Artisee "D" Project)의 일환으로 2016년에 시작한 말러리안이 이번으로서 5회다. 작년의 6번에 이어 올해 9번을 했으니 아직 2,3,4번 등이 남아 있다. 말러리안은 타성에 젖지 않은 열정으로 똘똘 뭉친 단원과 지휘자 그리고 신선한 기획 능력을 맘껏 활용하는 프론티어 기획팀이 있어 가능하다. "하나의 세계'에 도달하길 바란다. 인간을 초월하라! 절대로 가지 못하는 다른 차원의 공간이 아닌 존재하지만 찾기 어려운 우리 마음 속의 무릉도원을 찾아 떠나는 여정, 그게 말러가 그리고 꿈꾸며 평생 요원했던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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