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랑랑이 새 앨범 을 이번 달 4일 발매하고 같은 날 11시에 음반출시 기념 쇼케이스 영상을 랑랑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했다. 아리아와 서른 개의 변주곡으로 이루어진 바흐의 은 '음악적 에베레스트'라는 별칭 답게 장대하고 심오한 클래식 건반음악의 집약체인 대곡이다.1742년에 출판된 ≪클라비어 연습곡집≫ 4부에 수록된 의 원제는 "2단의 손건반을 가진 쳄발로를 위한 아리아와 여러 종류의 변주곡(Clavier Uebung bestehend in einer
강동원, 이정현 주연의 재난 액션 블록버스터 ‘반도’가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2위를 차지한 유아인, 박신혜 주연의 ‘#살아있다’는 누적 관객 180만을 기록했다. 이번 주는 재난 스릴러 ‘팬데믹’과 심은경 주연의 ‘블루 아워’가 개봉했다.국내 최대 영화 예매 사이트 예스24 영화 예매 순위에서도 ‘반도’가 예매율 74.2%로 2주 연속 예매 순위 1위에 올랐다. 지난해 1,200만 관객을 동원했던 디즈니의 ‘알라딘’이 재개봉하면서 예매율 3.6%로 예매 순위 2위를 차지했고, 심은경 주연
아침 6시. 바람은 여전히 사납게 불었다. 체왕 롯지 앞의 룽따는 곧 찢어질듯이 펄럭였다. 바람 때문에 고원은 더욱 황량하게 느껴졌다. 언덕 위에서 히말라야가 펼쳐져 있을법한 북쪽을 바라봤지만 히말라야 쪽에는 두꺼운 구름이 장막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구름 위로 해가 솟고 금빛 햇살이 마을 골목을 비출 때 쯤 멀리서 뎅그렁 뎅그렁 쇠방울 소리가 들리더니 검은 소들이 허연 입김을 뿜으며 올라왔다. 이 소들은 고산의 소 야크와 저지대의 물소의 교배종인 ‘조’인데 등에 땔감을 잔뜩 짊어졌다. 체왕 호텔 부엌에서는 벌써 아침 준비하는 연기가
그 날 오후, 유스호스텔의 임시 종업원 락바 라마는 다르질링을 떠났다. 그는 시킴의 수도 갱톡으로 가서 칸첸중가 트레킹 팀의 쿡으로 합류한다고 했다. 그가 손을 흔들고 사라진 언덕에서 사람들이 나타났다. 머리부터 쑥쑥 차례로 올라와 내 앞으로 걸어오는 그들은 몹시 지쳐 보이는 배낭여행자들이었다. "택시 탈 걸 그랬나 봐.""슬슬 나올 때가 됐어.""지도 다시 볼게."그들 중 하나가 걸음을 멈추고 손에 든 지도를 펼쳐보며 말했다."유스호스텔 ...... 이쯤 어디에 있을 텐데...." 그들 넷은 물어보지 않아도 동포였다. 오랜만에 듣
[말산업저널] 황인성 기자= 조이뉴스24가 내달 28일 산을 안전하고 즐겁게 타는 법을 배울 수 있는 ‘트레킹 교실’을 개최한다. 연예 스포츠 전문미디어 조이뉴스24는 오는 3월 28일 국내 최고의 등산전문지 '사람과 산', 박영석탐험문화재단, 아이뉴스24와 함께 하는 ‘희망찾기 등산·트레킹 교실’을 개최한다고 밝혔다.히말라야 로체 남벽(8,516m)에 6번이나 도전한 홍성택 등산아카데미 원장이 교장을 맡아 이론과 실습 형식으로 하루 동안 진행된다.홍 원장은 “최근 급증하는 등산인구 이상으로 산에서의 안전사고가 빈발하고 있는 점을
1977년 9월 15일 오후 12시 50분, 대한산악연맹이 파견한 77한국에베레스트 등반대가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당시 정상에 발을 내딛은 고상돈 대원, 펨바 노르부셰르파는 한국 산악사의 전설로 자리잡았다.이 책은 우리나라 등산의 역사를 정리한 것으로 에베레스트 등반대 당시 한 사람인 저자가 산에 대한 인생철학을 담은 산행 에세이다. 저자는 에베레스트, 마나슬루, 안나푸르나, 낭가파르바트, K2 등 8천 급 세계 최고 봉우리 원정대에 참여하며 겪었던 일화 등을 이야기한다.또한 회갑을 넘어 트래킹 중 잊을 수 없는
[미디어피아] 황인성 기자= 산악인 엄홍길(60) 대장이 네팔 명예 시민권을 받았다. 엄홍길휴먼재단은 15일 네팔 정부가 지역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엄홍길 대장에게 명예 시민권을 수여했다고 16일 밝혔다.엄 대장은 1988년 히말라야 에베레스트를 등정했으며, 2000년에는 히말라야 8천m급 14좌를 등정을 시작으로 2004년 얄룽캉봉, 2007년 로체샤르에 올라 세계 최초로 16좌에 모두 올랐다.등반뿐 아니라 엄 대장은 산악 등반 지원 중 숨진 네팔 셰르파들의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건립하는 등 네팔 지역에서 35년 동안 봉사
그때 나는 다만 푹 쉬고 싶어서 히말라야 산길을 걸었다. 히말라야 산길이라면 전문산악인들이 거창한 장비를 두르고 숨을 몰아쉬며 오르는 위험한 길을 연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50m)도 그 밑동에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고 경작지가 있으며 사원이 있다. 울창한 숲이 있고 시냇물도 흐른다. 그리고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산길이 있다. 그때 내가 걸었던 피케(Pike;해발 4010m) 기슭의 길도 그런 산길이었다. 길의 형태는 우리나라 국립공원의 등산로와 비슷하다. 그러나 피케 언저리의 산길은 관광객
저녁을 먹고 무료히 앉아 꺼져가는 아궁이 불을 쬐고 있는 중에 한 떼거리의 심상치 않은 나그네들이 들어왔다. 몸집이 좋은 중년 여성 한 명을 포함한 남자 7-8 명인데, 그 중 두 남자는 커다란 쿠쿠리를 배에 차고 있었다. 쿠쿠리를 찬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청년인데 가슴에 붉은 별 마크를 달고 있었다. 일행 중 셰르파로 보이는 젊은 남자는 무전기와 휴대폰을 갖고 있었는데 앙 다와 씨의 동네 사람인 듯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들은 라면 세 개를 끓여서 나누어 먹고는 회의를 벌였다. 밤이 깊었으니 주막집에서 자고 다음날 새벽에 내려가
피케 마네의 옛 치즈 공장에 돌아오니 잠시 구름이 걷히는 듯했다. 그래서 일찍 내려와 버린 것을 후회했다. 피케 정상에서 네팔 히말라야를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즉 동쪽의 칸첸중가에서 서쪽의 다울라기리 산군까지 파노라마로 조망해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아무리 춥고 바람이 심하게 불고 기침이 심했어도 좀 더 기다렸어야 마땅했다는 자책마저 들었다. 그러나 후회는 잠시에 그쳤다. 다시 검은 구름이 사방에서 모여 들어 앞을 분간하기조차 어려웠다. 김 선생은 변함없이 서 있는 설산보다도 설산을 감싸고도는 변화무쌍한 구름의 조화가
피케 마네로 가는 능선에는 이런 마네들이 서너개 쯤 있다. ⓒ김홍성 앙 다와 씨는 이곳의 마네를 벽으로 쓰는 창고 같은 움막을 특별한 날에 스님들이 올라와 거주하면서 기도 하는 장소라고 했다. 현지의 셰르파들은 '피케 마네'라고 부르는 이 마네는 지도에 피케 베이스캠프(해발 3840 미터)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우리는 마침내 그곳에 도착한 것이었다. 피케 마네에는 오래 전에 문 닫은 치즈 공장이 있었다. 피케 마네의 치즈 공장은 사람들이 모두 철수하고 아무도 없다고 들었는데, 늙수그레한 사내 둘이 공장 부속 건물의 지붕에서 널판자를
버스가 지리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2시. 지난번과는 달리 타이어 펑크 한 번 안 나고 지체 없이 달렸는데도 8시간이 걸렸다. 버스 승객 중에 외국인은 김 선생과 나 둘 뿐이었다. 우리의 추석과 비슷한 네팔 명절인 '더싸인'을 맞아 외지에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네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 앞의 엔진 덮개 위에는 자매로 보이는 아가씨 둘이 앉아서 갔는데, 어느새 그 자리에는 어린이들이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지리의 사가르마타 롯지는 심하게 우는 어린아이를 둔 따망 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다. 사가르마타 롯지는 지난봄 순례를 마치
새벽 4시에 배낭을 꾸렸다. 우리가 꾸린 배낭은 모두 세 개. 두 개는 김 선생과 내가 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길동무 앙 다와 셰르파가 멜 것이다. 오리털 파카, 오리털 침낭 등 '새털같이 가벼운 것들'만 들어있는 우리의 배낭은 부피만 컸지 무게는 별 것 아닌데 비해 앙 다와에게 맡길 배낭의 부피는 우리와 같을지언정 무게는 두 배가 넘었다. 앙 다와의 배낭에는 김 선생과 내가 함께 쓸 꽤 많은 배터리들과 비상식량 등 무거운 것만 골라 담았을 뿐만 아니라 타멜에서 구입한 2인용 텐트까지 매달려 있었다. 내가 메 보니 어깨를
총누리는 건너편 가게에 전화가 있다며 카트만두로 전화를 시도하러 가더니 전화가 된다고 알려 줬다. 나도 소풍에 전화를 걸어 내가 이틀 후에 카트만두에 도착한다는 것을 알려 주고 별 일 없는지를 물었다. 앙 뿌루바에 의하면 며칠 전에 나를 찾는 한국인 세 명이 와서 맥주를 마시고 가며 메모를 남겼다고 했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마친 P 와 그의 일행이었다. 롯지의 부엌에서 아궁이에 타는 장작불을 보며 락시를 마셨다. 안주는 낭아꼬스쿠티(화덕 위에다 훈제한 물소 고기)를 기름에 볶아 고추를 곁들인 것이었다. 그런데 밖에 바람
아침 7시 조금 넘어서 준베시를 떠났는데 람주라라(해발 3530 미터) 마루턱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30분이었다. 자주 쉬었으며, 눈길이 미끄러워 조심조심 걷느라고 4시간이나 걸렸다. 바람이 세차서 미칠듯 펄럭이던 타르초가 찢어지기도 했다. 그런 바람 속에 길게 늘어선 마네탑들은 이 고개가 라메찹 지역과 솔루 쿰부 지역의 경계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고개 마루 주막은 눈 속에 파묻힌 형국이었는데, 안에 들어서서 보니 8 명이나 되는 짐꾼들이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주막집의 부뚜막 벽에는 커다란 사발에 밥이 가득 담긴 그림이 흰
마룻장을 울리는 힘찬 맷돌 소리에 잠 깨어 눈을 떠보니 아직 여명이었다. 건너편 침상의 쿨리들과 내 옆 침상의 총누리는 아직 잠에 취해있었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쌀 씻는 소리에 잠이 깼던 때가 엊그제처럼 떠올랐다. 소변이 마려웠지만 침낭에서 빠져나오기 싫어서 다시 눈을 감았다. 맷돌 소리는 여전히 힘차게 들렸다. 규칙적인 호흡과 일정한 박자를 정확하게 따르고 있는 것으로 봐서 멧돌을 돌리는 사람은 부인이다. 부인은 불교의 진언을 마음속으로 뇌이며 맷돌을 돌리는 듯 했다. 나도 맷돌 도는 박자에 맞추어 옴마니밧메훔을 뇌이다가 어느새
나에게는 점심 먹을 시간이지만 총누리에게는 아침 먹을 시간이었다. 걸음을 재게 놀려 앞서간 총누리가 어느 농가 앞에 서서 싱긋이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집에서 밥을 먹자는 신호였다. 마을의 다른 농가들처럼 그 집도 3층집이었다. 짐을 멘 채 오르기에는 비좁고 컴컴한 계단을 밟고 3층으로 올랐다. 1층은 축사 겸 창고, 2층은 기도실 겸 침실이었으며 3층은 부엌 겸 거실이었다. 앉은뱅이 식탁이 길게 마련된 거실에는 앞서갔던 나왕 초상 셰르파 일행이 앉아 해장술로 창(막걸리)을 마시고 있었다. 물어보지 않아도 총누리와 나왕은
타파팅의 음식은 내 입맛에도 맞았다. 쌀밥과 녹두죽, 싹(갓 비슷한 토종 푸성귀)과 감자를 함께 볶은 떨꺼리(반찬의 총칭)는 정성이 깃든 것이어서 그만하면 흡족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집 여자들이 빚은 술(창과 락시)에 토속적인 향취가 진하게 배어있어 좋았다. 주막집 타파팅에서 하룻밤 묵어가는 청년들 가운데 서넛은 네팔 제헌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총선거의 투표권을 얻기 위해 고향으로 주민등록을 내러 가는 길이었다. 앙 도로지의 고향 친구라는 중년 사내 나왕 초상 셰르파도 타파팅에서 만났다. 그는 우리와 같은 버스로 여러 가지 물건
앙 도로지 씨가 소개한 총누리 셰르파는 스물세 살 먹은 건장한 청년이었다. 고향 파부르(빠뿌레)에서 초등학교 4학년까지 다닌 후 농사를 거들다가 승려였던 동생과 함께 카트만두로 나와서 트레킹 포터(짐꾼)로 일한지 4년이 되었다고 했다. 4년 동안 그가 경험한 산은 칸첸중가, 마나슬루, 르왈링,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랑탕 등이었다.형제는 트레킹 시즌이 아닌 여름이나 겨울에는 고향에 돌아갔다가 봄 가을에 다시 카트만두로 나와서 트레킹 일거리를 찾는다고 했다. 아직 겨울인 한 달 전부터 카트만두에 나와 있었다는 총누리는 나와 함께 다
2007년 2월 14일 정오 무렵, 카트만두 시내에 하얀 꽃잎 같은 눈이 펄펄 날렸다. 네팔 현지인들은 난생처음 눈을 본 것처럼 호들갑스럽게 반겼다. 카트만두에 눈이 내리기는 실로 62년 만의 일이다. 나도 덩달아 들떠서 펄펄 날리는 눈을 맞으며 앙 도로지 셰르파를 찾아갔다. 그는 내가 가서 걷게 될 피케 기슭이 고향이어서 피케에 관한 풍부하고 생생한 정보를 주고 있었다.또한 그의 고향 사람들을 트레킹 가이드나 포터로 소개해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앙 도로지는 엄연한 네팔 사람이지만, 우리 한국인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