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백제의 수도가 한반도에만 있었다는 고정 관념을 떨쳐버리지 않는 이상 차이나의 25개 정사(正史) 와 차이나 대륙에서 발견된 백제의 유물, 무덤 (의자왕의 무덤, 흑치상지의 무덤, 예식진의 무덤 등)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좀 더 공부해야 하겠지만, 최소한 한반도와 차이나 두 곳에서 전투가 있었거나 아니면 전투는 차이나에서만 있었다.삼국사기 기록은 무대가 한반도임을 명시한 기록은 없다. 기록의 대상 지역이 한반도인지 차이나인지 후손들이 알아내어야 한다. 660년 한반도에서 전투하기 위하여 소정방이 13만
역사 해석은 일관성이 제일 중요하다. 물론 설명할 수 없는 기록이나 유물과 마주칠 때도 있지만 큰 줄거리를 유지하여야 한다. 한국 고대사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다. 한반도와 주변지역의 고대사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서구에서는 19세기에 민족국가 개념이 들어서고, 우리는 정확히 19세기 말에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건국하면서 대한제국 혹은 대한민국의 준말인 한국이라는 말을 지식인들과 민중들이 쓰기 시작했다고 본다. 한국 즉 대한제국의 고대사는 영토개념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민족 혹은 백성의 개념으로 할 것인가? 당시에 지금 같은 경
요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다. 전염병이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것을 한자어로 창궐(猖獗)이라고 한다. 오늘은 ‘猖獗’을 파자로 알아보고 『명심보감』 의 한 구절을 살펴보기로 한다. 미쳐 날뛸 창(猖)은 개사슴록변(犭), 창성할 창(昌)으로 나뉜다. ‘犭’은 개 견(犬), 또는 돼지 시(豕)가 글자 왼쪽에 자리 잡을 때의 변형된 자형(字形)이다. ‘昌’은 해 일(日)과 가로 왈(曰)로 이뤄졌다. ‘曰’에는 ‘말하다’는 뜻이 있다. 항상 말을 할 때는 상대를 배려하는 따뜻한 말을 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