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입을 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돌아온 이유나 아이 아빠의 정체, 그간의 행적, 현재 마음 상태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던 여자는 일주일이 지난 아침, 밥을 먹기 전에 부탁의 말부터 꺼냈다. 목소리도 달라진 듯했다.“영민아, 나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산부인과?”“진통이 시작된 느낌이야. 문도 열린 것 같고….”남자는 여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전에 알아 둔 산부인과에 전화부터 했다. 남자는 여의사가 있을 것, 집에서 가까워야 할 것, 산후조리를 잘할 것을 근거로 여자가 온 다음 날부터 산부인과를 알
부경 말 관리사의 죽음, 그 속사정은?서울마주협회, 변화·혁신 대비 세미나 개최SBS스포츠 스프린트, 한국마의 한일전 압도적 승리제49회 이용문 장군배 승마대회 성료
‘여자가 대통령이다’는 여성을 대표할 수 없는 한 여자의 유령이 한 나라를 집어삼킨 현재, 이 시대를 살아 내는 한 민초 여자와 동갑내기 신부 박용성, 경마 기자 이영민을 주인공으로 하는 새 연재소설입니다. 작가는 “간통죄가 합헌이어도, 여자는 위헌”이라며, “우리를 대표한다는 대통령에게, 우릴 창조한 신에게만 유죄라고 통보한다”고 집필 이유를 밝혔습니다. - 편집자 주.계절이 바뀌었다. 사제관에서 본당까지는 걸어서 1분 거리지만, 새벽미사에 가려면 이제는 사제복 위에 카디건이라도 한 겹 더 껴입어야 했다.그날 이후 두 사람은 2주
귀촌 윤 한 로안양은 다 접고 접자마자, 떴지요우리겐 여기가 딱이구료길쭉하고 비스듬한 가재골 집강아지 두 마리 머루랑 다래랑 이름붙이고읍내 철물점 농약상회 들러 낫 호미 괭이 삽 등속 갖추랴배롱 매실 앵자두 석류 연산홍서껀사다 심으랴, 오명가명봄빛에 원, 쑥스럽구료 하나부터 열까지 이 동릿분들 가르침 되우 좋아 하시니 가지 심다 혼나고 열무 심다 혼나고오죽하면 불 때다 혼나고시골살이 깨치기 어려워 심는 족족 다 죽고 마네에그머니나 또 밤 오줌 누나베? 이웃 두보 할멈까지훌떡 벗공 마당귀 텃밭에 쫄쫄 거름 주늬 올 물외 한 번 달겄고
고무신 윤 한 로둥긋하니 안짱다리 황소고집 아버지 깜냥왼짝 코는 오른짝 코로오른짝 코는 왼짝 코로가생이짝은 안짝 삼아안짝은 가생이짝 삼아닳는 짝일랑 두덕 짝 되게두덕 짝일랑 닳는 짝 되게오래오래 신고자, 길동무나 삼고자그예! 바꿔 신었나보이초생달 걸음걸음 수무 김치 트림돌단풍 잎사귀 즈려밟으사 시작 메모 황순원 소설 ‘주검의 장소’는 아주 짧은 엽편 소설이다. 이백자 원고지 열장쯤 될라나? 마흔 농삿꾼 하나이 나오는데 황소처럼 고집이 세고 우직하기 이를 데 없다. 다리가 우긋한 안짱다리로 고무신을 왼쪽, 오른쪽 바꿔 신었다. 이것이
벌꿀 H는 노란색 하이힐을 신고 내게로 왔다. 교통사고로 다리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당해 나는 정형외과 병실에 입원해 있었다. 죽음의 문 앞까지는 가보지 못했지만 병원 침대에서 오래 살다보면 중환자가 따로 없었다. 떡 진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넘기며 나는 기브스를 한 발목으로 절뚝이며 걸었다. 간간히 찾아오는 지인들은 별 도움이 되질 않았다. 무엇보다 가슴 한구석을 채운 허전함이 발목 통증보다 더 아프고 쑤셨다. 주사바늘도 진저리나게 싫었지만 외로움은 더 견디기 힘들었다. 물론 간절히 원한다고 사랑이 찾아오리라 기대한 건 아니었다.
‘메추라기 사랑 노래’는 198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분교마을의 봄’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윤한로 시인의 첫 시집이다. 스물다섯에 등단하여 한가할 ‘한’ 늙을 ‘로’, 즉 한가하게 늙는다는 자신의 이름을 죄스럽게 여긴 시인은 세상의 가장 낮은 바닥에서 쓴 시들을 34년 만에 세상에 내놓았다. 동국대 교수인 박형준 시인은 “꽃에 비유하자면, 이 시집의 시들은 관상용 꽃이 아니라 하나하나가 땀 냄새 가득 밴 꽃이다”라며 “자신을 씻겨주는 며느리의 손길 앞에서 대야에 둥둥 떠다니는 꽃잎을 건져내며 가지고 노는 늙은 아버
산낙지 먹는 밤 계단에서 굴러떨어질 뻔한 40대의 동영상 제작자, 소위 영화감독은 왕년의 여배우 장화자가 팔을 뻗어 잡아주는 바람에 최소한 뇌진탕은 면하게 되었다. 게다가 술자리까지 동행해주겠다는 미소 띤 대답을 얻어냈으니 발을 한 번 헛디딘 것치곤 그 결과가 크게 만족스런 것이었다. “산 낙지 먹을게요.” 해산물 종합판매 식당에 들어선 그녀는 벽 메뉴판을 길게 볼 것도 없이 바로 산낙지를 택했다. 산낙지로 말하자면 영화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이 워낙 인상깊게 섭취하는 바람에 전세계적으로 충격적인 영상으로 자리잡고 있는 아이템이었다
쟁반 윤 한 로한갓 젖비린내 나는 계집아이 한마디에 목 뎅강 잘려나갔으니가고 말았으니싯누런 얼굴 쥐눈 딱 부릅뜬 채사과처럼 향기롭지도 않고포도처럼 탐스럽지도 않고애오라지 옳을 뿐세상의 면상을 향해피끓는 가슴더 더 대차게 손가락질하고파 목 뎅강 잘렸습니다흰 쟁반 위에 함뿍 담겼습니다여자한테 난 자 중 가장 큰 자더러운 사치와 음욕과 방탕을 광야의 거친 모래처럼 씹던 자시작 메모헤로데 왕의 불의를 손가락질하며 끝까지 싸우다가 소녀의 한마디에 목이 달아난 성인. 여자한테서 난 자 가운데 가장 큰 자, 예언자 가운데 가장 큰 예언자 세례자
토빗 윤 한 로나 토빗은낯설고 먼 아시리아 니네베에 안나와 아들 토비야와 많은 동포들과 함께 포로로 끌려왔다 그러나 나 토빗은 한평생 선을 베풀고 의를 행했다늘 조심하여 이민족의 음식을 먹지 않았고고아와 과부들을 돌보았다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으며헐벗은 사람들에겐 입을 것을 주었다억울하게 죽어 성 밖에 던져진 동포들의 주검을 보면 남몰래 묻어주었다온 마음과 온 힘을 다 해 죽음을 무릅쓰고 진리를 따랐다 애오라지 선만을 바라 뚜욱 하니, 올곧던 토빗높은 자리에서 떨려나 쫓기는 몸이 되었건만비록 가난에 지치고 늙어 힘마저 빠졌
한겨울, 생극에 가다 윤 한 로갑작스런 강추위에 귀싸대기가 얼얼하다 골짜기 야산 억새더미 눈부스러기에 뒤덮혀 반짝이고 새로 생긴 생극 추모공원저마다 숨소리 죽인 납골실 마치 대학교 도서관 같다 망자들 칸칸이 빼곡하다 꽃무더기 속에, 묵주알 속에 파묻힌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 이름과 그 길고 짧은 생몰 연대와 한창 때 스냅 사진들 읽는다, 짧을수록 천천히(다들 책 놓은 지 오래 된 우리들인데 보아하니 먼지나 털어주는 겔게다)어렸을 적, 늙었을 적, 처녀 적 살았을 때 가장 좋던 시절 택해 누구랄 것 없이 활짝 웃고 있으니! 오히려 가
유세련의 나긋한 손길에, 명품 악기라고 할 수 있는 마돈걸의 육체가 일일이 반응하며 그 표시로 고귀한 신음을 가늘게 내질렀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여성의 육체는 마음이 완전히 열려 있지 않아도 그날 밤의 기분에 따라 때론 날씨에 따라 뜨거워지기도 하고, 특히 특이체질의 경우는 마음과 상관없이 몸만 따로 놀기도 한다는 것이다. 마돈걸은, 머리에 든 거라곤 돈과 섹스와 온갖 감각적인 쾌락 외엔 없는 유세련과 한 침대에 누워 있게 된 이 밤, 머리는 하얗게 비우고 오로지 몸의 욕구에만 따르기로 한 것인데 이 경우 그 몸을 어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