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나뭇잎 물고기

김정은 전문 기자
  • 입력 2024.01.25 20:21
  • 수정 2024.02.05 14:3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인 노강

 

노강 시인의 본명은 노정남이다. 강원도 원주 출생으로 2021 문학나무로 등단하고 2021년 시집 『나뭇잎 물고기』가 있다.  2022년 제6회 문학나무숲 시상을 '허난설헌' 외 3편으로, 2010년 제2회 여성조선 시 수필 문학상 공모전에서 '허공의 탄생'으로 시부문 수상한다. 현재 울산광역매일신문 필진이다.

 

고사목

 

살점 다 파먹어 버린 생선

거꾸로 박혀 있다

 

바람이 그 사체를

오랫동안 핥고

 

새 한 마리 깃들이지 않는

저 오래된 뼈다귀

 

지리산 제석봉에 쓰러진

미라의 몸통을 더듬어 보면

 

엇갈린 악수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고사목의 손,

 

가만히 나를 가리키는

저 쓸쓸함의 힘

 

뿌리와 단절된

나무 덮어주려고

구름이 산을 올라오면

 

바람이 가져온 수의 한 벌

입혀준다

 

나뭇잎 물고기

 

개심사開心寺 연못에서 느릿느릿

내 그물 속으로 흘러 들어온

물고기 한 마리

 

바싹 마른 몸통,

내장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가지런히 정렬된 가시가 부챗살 같다

피아彼我의 경계를 풀어버린 눈동자

쓸리고 찢긴 꼬리지느러미가

세월을 가르고 있다

 

부유하는 몸이면 어떠랴

수련의 하얀 속살도 잊은 지 오래

상왕산에서 흘러와 물고기가 된 나뭇잎

외나무다리에서 바라다본, 윤회

 

서녘으로 기울던 빗살 하나

나뭇잎 물고기 굽은 허리를 관통하고 있다

 

숯의 시간

 

사무실 키 작은 책장 머리 위

바구니에 담긴 숯

침묵으로 서로 응시한다

빛과 어둠을 초월하고

검은 수도복 속의 근엄함

침묵하되 세상 이치 꿰뚫고 있는 듯

오염된 공기를 정화하고 있다

 

세상에서는 죽었으나 살아 있는

살아 있으나 죽어 있는 듯

자신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해방된 듯

그 존재만으로도 평화롭다니

 

뜨거웠던 날도 있었으리라

물푸레나무의 푸르렀던 날들도 기억한다

사노라면

가슴속 숯 검둥이 몇 덩어리 품고 버티지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오늘, 지금일 뿐

복잡한 나에게 던져주는 의미

깊고 푸르다

 

표현들이 적확하고 신선하다. 바람이 핥는다 비유도 적절하고 새는 뼈 먹지 않으니 비유도 딱이다. 미라니 엇갈린 악수 표현이 넘 탁월하다. 구름 수의도 참신하다. 

윤회를 거친 나뭇잎 물고기도 동감가고 빗살이 허리를 관통한다는 것도 멋지다. 이미지가 생성되서 좋은 시상이다. 

검은 수도복으로 은유한 숯이 이치, 정화 등 종교 신념도 잘 드러낸다. 숯이 된 물푸레 나무, 깊고 푸르게 내 안에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