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노강
노강 시인의 본명은 노정남이다. 강원도 원주 출생으로 2021 문학나무로 등단하고 2021년 시집 『나뭇잎 물고기』가 있다. 2022년 제6회 문학나무숲 시상을 '허난설헌' 외 3편으로, 2010년 제2회 여성조선 시 수필 문학상 공모전에서 '허공의 탄생'으로 시부문 수상한다. 현재 울산광역매일신문 필진이다.
고사목
살점 다 파먹어 버린 생선
거꾸로 박혀 있다
바람이 그 사체를
오랫동안 핥고
새 한 마리 깃들이지 않는
저 오래된 뼈다귀
지리산 제석봉에 쓰러진
미라의 몸통을 더듬어 보면
엇갈린 악수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고사목의 손,
가만히 나를 가리키는
저 쓸쓸함의 힘
뿌리와 단절된
나무 덮어주려고
구름이 산을 올라오면
바람이 가져온 수의 한 벌
입혀준다
나뭇잎 물고기
개심사開心寺 연못에서 느릿느릿
내 그물 속으로 흘러 들어온
물고기 한 마리
바싹 마른 몸통,
내장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가지런히 정렬된 가시가 부챗살 같다
피아彼我의 경계를 풀어버린 눈동자
쓸리고 찢긴 꼬리지느러미가
세월을 가르고 있다
부유하는 몸이면 어떠랴
수련의 하얀 속살도 잊은 지 오래
상왕산에서 흘러와 물고기가 된 나뭇잎
외나무다리에서 바라다본, 윤회
서녘으로 기울던 빗살 하나
나뭇잎 물고기 굽은 허리를 관통하고 있다
숯의 시간
사무실 키 작은 책장 머리 위
바구니에 담긴 숯
침묵으로 서로 응시한다
빛과 어둠을 초월하고
검은 수도복 속의 근엄함
침묵하되 세상 이치 꿰뚫고 있는 듯
오염된 공기를 정화하고 있다
세상에서는 죽었으나 살아 있는
살아 있으나 죽어 있는 듯
자신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해방된 듯
그 존재만으로도 평화롭다니
뜨거웠던 날도 있었으리라
물푸레나무의 푸르렀던 날들도 기억한다
사노라면
가슴속 숯 검둥이 몇 덩어리 품고 버티지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오늘, 지금일 뿐
복잡한 나에게 던져주는 의미
깊고 푸르다
표현들이 적확하고 신선하다. 바람이 핥는다 비유도 적절하고 새는 뼈 먹지 않으니 비유도 딱이다. 미라니 엇갈린 악수 표현이 넘 탁월하다. 구름 수의도 참신하다.
윤회를 거친 나뭇잎 물고기도 동감가고 빗살이 허리를 관통한다는 것도 멋지다. 이미지가 생성되서 좋은 시상이다.
검은 수도복으로 은유한 숯이 이치, 정화 등 종교 신념도 잘 드러낸다. 숯이 된 물푸레 나무, 깊고 푸르게 내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