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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은 시』 ‘한 스텝에 한 장발 휘날리며’ (4)

윤한로 시인
  • 입력 2023.02.1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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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시로 엮은, 내 시를 삶으로 엮은

3부, 한 스텝에 한 장발 휘날리며(4)

 

우리 보고

걔네들이라고

그럼 느네들은

 

김석태 형

 

그렇다, 역부러 떨어뜨린 게다

심혈을 기울여 쓴 우리 개미집 명작

김석태 형의 ‘병영일기’가

유명 문예지 최종심에서 나갔다

하필,

형을 엄청 아끼던 스승 유주현 선생께서

거기 심사위원일 줄이야

 

문학에 발목이 잡혀

부모고 집이고 좋은 의과대학이고

다 때려친 70 편입생 석태 형

술에 꼴아 엉망진창이 되어서도

밥 먹듯 날마다 소설 너댓 권은 뗐다

런던포그 바바리 깃을 세우고 나타나서는

황혼이면 여지없이 개미집 중앙 기둥 앞에

허물어지던 곱슬머리 미남자

하여간 조그만 놈들, 가소로운 것들

몇 놈들은 꼭꼭 보냈지

끝없이 실패하며 증오하며

끝없는 실패와 증오를 즐기며

인간을 너무도 샅샅이 훑고자? 욕심부렸구나

해맑은 듯, 게게 풀린 듯

그러나 어느새 아프게 찌르는 눈

고치고 또 고치고, 만지고 또 만지던

결벽 문장 같던 눈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교수실파 조그만 놈들이 까분다기에

술 몇 잔 얼큰하게 걸치고

나 학교로 올라갔네 견딜 수 없었네

올라가던 길에 그만 존경하는 유 교수님 만났네

안보이더니 왠일인가

너무나 유심히 건너다 보시기

얼떨결에 자퇴하러 왔다고 했지, 아뿔싸,

느닷없이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 나올 줄이야

한참을 숙고하시더니

그러게나, 내 손을 꽉 쥐셨네

어쩔 수 없었네

나 그렇게 문창과 떠났지

그때처럼

오랜

시간

없더군

 

이제 책도 싫고 인간도 싫어졌나, 석태 형

지리산 자락 어디메 바람을 읽고 있다고 들었네

오히려 스스로 조그만 놈이 되려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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