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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54 ] 해골

김홍성
  • 입력 2020.08.16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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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한쪽 바닥에 해골만 남은 시체들이 한 줄로 주르르 누워 있었던 겁니다. 금방 벌떡 일어설 것처럼 팔 다리 뼈가 멀쩡한 해골들이 흐흐흐 웃는 표정을 짓고 누워 있었던 겁니다.

ⓒ김홍성

 

 

다시 학교에 갔죠. 과외도 다니고요. 과외 선생이 그 때 지방에서 올라온 s 대학교 외교학과 1학년인데 우리와 같이 놀았어요. 과외 수업을 하는 집은 돈암동 천중이네 집이었는데 천중이 아버지는 전방 사단의 연대장이었고, 천중이 어머니는 자주 관사에 가서 여러 날 머물다가 돌아오곤 했죠. 그래서 그 집에는 어른이 없는 날이 많았어요.

 

말이 과외지 실제로는 공부를 안 했습니다. 천중이 어머니가 집에 있는 날에만 대충 공부하는 흉내를 냈을 뿐입니다. 천중이 어머니가 전방에 가고 집에 없는 날에는 그 방이 과외 공부 방이 아니고 그냥 만남의 광장이었죠. 큼직한 재떨이도 구비해 놓고 담배도 엄청 피워댔습니다.

 

우리 그룹이 거기서 만나면 그 때 그 때 다르게 둘씩 셋씩 작당을 해서 놀았습니다. 과외 선생 이 친구도 가끔 같이 당구 치러도 가고 작부가 있는 대폿집에도 가고 그랬습니다. 대신 과외비는 부모가 알고 있는 액수의 반만 내면 됐어요. 어떤 때는 안 내고 버티기도 했죠. 엉터리 과외 교사 주제에 지가 무슨 할 말이 있었겠습니까?

 

천중이는 그럴듯한 가발이 있었어요. 어디서 동그란 색안경도 장만했어요. 비틀즈의 존레논을 방불케 하는 변장을 하고 밤이면 명동 어느 다방에서 DJ를 봤었죠. 고삼인 주제에 대학생 애인도 수두룩했죠. 물론 대학생 애인은 천중이도 대학생인 줄만 알았죠. 그것도 s 대 외교학과 학생 말입니다. 천중이는 그걸 증명하려고 과외 선생을 자기가 DJ하는 다방으로 불러내어 친구라고 소개했을 뿐만 아니라 그 친구에게 여자 친구의 친구도 소개해 줬어요.

 

믿어집니까? 100 퍼센트 사실입니다. 우리의 과외 선생이었던, 영어와 수학을 책임지기로 했던 외교학과 1학년 그 친구 이름은 지금도 기억하지만 공개할 수는 없습니다. 일종의 의리 같은 게 아직도 작용하네요. 그 친구가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한두 살 어린 고등학생들, 공부하기는 아예 틀려먹은 꼴통들 대여섯 명을 그 친구 혼자 감당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했었죠. 차라리 같이 놀아 주는 게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죠. 천중이네 집에서 과외 하는 애들 중에 셋이서 학교 담을 넘어서 거리에 나오기는 했는데 냄비라면 하나씩 사먹고 나니 뭐 할게 없더라고요. 그날 문리대에서 데모를 시작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최루탄 개스로 눈이 매웠던 것 같기도 하구요. 우리는 데모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어쨌든 개천을 끼고 걷다가 길을 건너서 서울대학교 병원 정문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디 으슥한 데를 찾아서 담배나 한 대 씩 필까 했던 건데 가다보니 정말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로 으슥한 데가 나왔어요.

 

보통 건물은 지붕이 있잖아요? 양철이든 슬레이트든 기와든 그런 걸로 지붕을 씌웠잖아요? 그런데 그 건물은 교실만한 창고인데 지붕 한쪽은 철망이었어요. 일부러 비나 눈이 들어오게 만든 것이죠. 안에 뭐가 있을지 궁금해서 턱걸이를 해서 철망 밑으로 얼굴을 디밀고 내려다 본 친구가 으아악 소리 지르며 땅에 털썩 떨어졌어요.

 

으아악! 소리 지르고 땅에 털썩 떨어진 친구 - 이 친구 이름도 기억하지만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 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대답을 못해요. 성질 급한 천중이가 벽 끝을 잡고 턱걸이를 해서 지붕에 씌운 철망과 벽 사이의 공간으로 머리를 디밀었는데 역시 으아악! 하면서 땅에 털썩 떨어졌습니다.

 

왜 그래?”

해해해 해골이야.”

해골?”

그래 해골, 해골이 많아.”

 

이것들이 미리 짜고 놀리나 싶어서 저도 턱걸이를 해서 그 공간에 머리를 디밀었죠. 우와, 뭔가 특별한 게 있기는 있는 겁니다. 아버지의 병원에서 자라면서 시체도 볼만큼 본 저로서는 크게 놀랄 일이 아니지만 시체조차 본 적이 없는 두 녀석은 놀랄 만도 했습니다. 건물 한쪽 바닥에 해골만 남은 시체들이 한 줄로 주르르 누워 있었던 겁니다. 금방 벌떡 일어설 것처럼 팔 다리 뼈가 멀쩡한 해골들이 흐흐흐 웃는 표정을 짓고 누워 있었던 겁니다.

 

그 창고 건물의 문은 철판으로 만든 문인데 굳건한 자물쇠로 잠겨 있었습니다. 그 안에 누워 있는 해골들은 의대생들의 실습용으로 일부러 모셔둔 해골들이지 싶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빙빙 돌았던 그 건물 외벽 밑에서 발길에 차이던 것들을 자세히 보니 사람의 뼈였습니다. 피막과 근육과 힘줄이 붙어 있어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의 손뼈, 사람의 발뼈, 그리고 사람의 머리뼈였습니다. 머리뼈는 해골의 윗부분을 톱으로 잘라낸 것인데 넓적한 표주박 같았습니다.

 

손뼈와 발뼈는 각각 친구들의 책가방에 들어갔다가 과외 수업하는 방 벽의 못에 걸렸습니다. 바가지처럼 생긴 머리뼈는 제 가방에 넣고 다녔는데, 훗날 그것이 문제가 되어 저만 휴학을 하게 됐습니다. 저는 그 바가지에 물을 담아 머리맡에 놓고 자리끼로 사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 딴에는 원효 대사 흉내를 냈던 것인데 외갓집 어른들은 제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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