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동산’···소프라노 로테 레만과 슈만의 연가곡
김종삼 시인의 생애와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서양음악’입니다. 서양 고전음악을 자신의 작품에 도입하여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독특한 개성을 지닌 시인입니다.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의 시에 등장하는 이 음악의 편린들은 결코 친절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체적 설명이 없는 음악적 요소들은 거부감 없이 묘한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몇 번 읽다보면 내용과 의미는 잘 파악되지 않아도 음악과 관련된 시어들은 화학반응을 일으켜 정서적 영역을 확장시키기 때문입니다.
김종삼은 그 경계를 잘 알고 있는 시인입니다. 낯선 단어 몇 개로 분위기를 주도하고 크로키 같은 시를 툭 던집니다. 어떻게 보면 아주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시작법이기도 하죠. 당시 일부 지식인의 전유물이었던 서양음악을 자신만의 시세계를 구축하는데 중요한 장치로 사용했습니다.
그의 작품 가운데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동산'에 나오는 로테 레만(1888~1976)은 독일 출신의 소프라노로 보기 드문 미성을 갖춘 가수입니다. 1942년 명지휘자 브루노 발터의 반주로 슈만의 연가곡 ‘여자의 사랑과 생애’, ‘시인의 사랑’을 녹음했습니다. 슈만의 생애 중 아주 짧았던 행복한 시기에 작곡된 작품들입니다. 김종삼은 아마 이 가곡을 듣고 이 시를 쓴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동산
아름다운 여인
롯테 레만의 노래 자리 잡힌 곳
아희들과
즐거운 강아지와
어여쁜 집들과
만발한 꽃들과
얕은 푸른 산
초록빛 산이
항상 보이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