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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신간] 스카이캐슬 버닝썬 자본, 욕망 속 ‘보이지 않는 설계자’ 찾다

이용준
  • 입력 2019.02.2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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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례문학상 수상 주원규 작가, 장편 소설 『메이드 인 강남』 발표

[미디어피아] 이용준 기자= 2009년 『열외인종 잔혹사』로 제14회 한겨례 문학상을 수상한 주원규 작가가 장편 소설 『메이드 인 강남』을 발표했다.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삶의 표면 위로 끌어 올리는 작업을 꾸준히 해온 주원규 작가의 이번 작품은 우리 사회의 모든 자본과 욕망이 몰리는 강남을 배경으로 헤어날 수 없는 욕망의 덫에 빠져 좀비처럼 도시를 떠도는 사람들을 통해 ‘대한민국의 오늘’을 이야기한다.

“철옹성처럼 보이는 그들만의 리그가 견고하게 자리 잡은 곳도 강남이며, 배금주의가 낳은 자본의 노예들이 괴이한 동경과 애증을 갖고 모여드는 곳도 강남”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욕망과 천민자본주의로 점철된 강남의 모습을 화려하지만 어두운 색채로 그려낸다.

강남 중심에 있는 초고층 호텔의 펜트하우스에서 자행된 살인 사건. 점묘화를 그린 것처럼 핏방울이 산발적으로 흩뿌려져 있는 대리석 바닥에 속옷 하나 걸치지 않는 전라의 남녀가 뒤엉켜 있는 채로 발견된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상위 0.1퍼센트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비밀리에 조직한 멤버십 회원들이다.

참혹한 살인 사건 현장을 가장 먼저 찾은 것은 경찰이 아닌 국내 1위 로펌의 ‘김민규 변호사’다. 그가 하는 일은 법의 맹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상위 0.1퍼센트 로열패밀리들과 관련된 사건들을 그들이 원하는 대로 디자인하는 일이다. 어떤 의견이나 판단도 내놓지 않는 무색무취한 성향에, 어떤 비윤리성에 대해서도 무감각을 유지하는 김민규 변호사는 대한민국의 실질적 주인으로 군림하고 있는 이들에게 최고의 설계자인데….

책 속으로
재명은 잠시, 찰나적 순간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의 끝에서 언제나 한 장의 불평등 각서가 낙인처럼 그의 생각을 지배한다. 2억 원이 넘는 도박 빚과 관련된 채무이행 각서. 물론 도박 빚 따위는 갚지 않아도 된다는 걸 모르는 재명이 아니다. 문제는 경찰이 거액 도박판에서 편취를 했든 갈취를 당했든 참여했다는 것과 거기에 액땜 삼아 상습적으로 미성년 여자들과 성매매를 했다는 문제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민경식이든 누구든 강남 하우스를 장악한 이들이 자신의 목줄을 쥐고 있는 셈이다. p.145

김 대표의 표정과 눈빛은 그 혼자만의 특징이 아니다. 열 명이 넘는 다른 변호사도 일제히 민규를 알 수 없는 무표정과 영혼을 멈춰 세운 듯한 무정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덤덤하게 있다가 갑자기 상대를 할퀼 것 같은 전의를 품은 눈빛을 가진 변호사들, 일한 만큼의 대가를 지급받는 강남 구성원들을 바라본 민규는 우진을 비롯해 모여 있는 그들, 전체에게 묻는다. “그 친구들은 왜 설계해야 하죠?” p.177

민규는 순간 참을 수 없는 수치심이 자신의 몸속 깊이 파고드는 걸 외면하지 못한다. 검은빛의 아늑함, 그 베일을 찢고 가장 노골적인 망설임이 마성의 착란을 일으킨 탓이다. 극도로 세련되거나 지독히 위선적인, 서글프기까지 한 ‘풀밭 위의 식사’처럼 로펌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아내가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p.185

저자: 주원규
서울에서 태어나 2009년 목사가 됐고 소설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제14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열외인종 잔혹사』를 비롯해 장편소설 『반인간선언』, 『크리스마스 캐럴』, 『망루』, 『너머의 세상』, 『광신자들』, 청소년 소설 『아지트』, 『주유천하 탐정기』, 에세이 『황홀하거나 불량하거나』, 평론집 『성역과 바벨』, 번역서 『원전으로 읽는 탈무드』 등이 있으며, 2017년 TVN 드라마 ‘아르곤’을 집필했다.

이용준 기자 cromlee21@horse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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