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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에 눌렸다

이진성
  • 입력 2024.02.27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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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2. 27.00:46

가위에 눌렸다. 그러나 나는 화염의 호흡으로 자아를 찾을 수 있었다. 전집중으로 손가락 끝까지 마음을 모아서 악귀를 불태웠다. 조금 과장해서 나를 치장했지만 실상은 괴성을 지르면서 꿈에서 깨듯이 눈을 떴다.

이사를 하면 꼭 한 번은 가위에 눌린다. 어떤 친구는 액땜이라 하고 어떤 이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보다 하면서 나를 위로 하지만 제일 좋은 말은 '잘 되려고 하나보다.'였다. 잘되고 싶은 마음이야 어떤 말과 글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간절하다. 허나 한 켠에는 가위눌림에 대한 내 마음 어딘가에 알 수 없는 미심쩍음이 있다.

생생하게 느껴지는 촉감을 되짚어 본다. 이불을 덮은 다리 위로 한 발씩 다가와서 이불이 더욱 다리를 감싼다. 그리고 다음 발걸음은 정강이 사이에 이불을 밟는다. 다음엔 오른 다리를 살살 눌러 간다. 알지 못할 그 존재는 이제 걸음을 옮겨 허벅지 사이에 몸의 중심을 넣고 내 위로 올라온다. 나는 허공을 바라보면서 눈을 감지 않으려고, 눈을 감으면 악몽을 꿀 것만 같아서, 파르르 눈두덩이를 떨며 안간힘을 쓴다. 존재는 배 위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가벼웠다. 그리고 그 무게가 익숙했다.

그건, 웅이였다. 작년 초에 무지개다리를 건넌 웅이의 무게였다. 웅이는 생전에 내가 잘 때에 줄 곧 내 다리 근처에서 내 이불을 누르고 자고 배 위로 올라와서 자기도 했다. 무게가 큰 시츄였기에 제법 무거운 녀석이었는데 그 감각과 너무 비슷했다. 가위를 눌리는 순간에 그렇게 생각했다. 가위라는 게 영적인 것이든 무엇이든 나는 나를 누르는 존재를 웅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귀신이 나타나는 현상이라면 웅이가 나를 지켜주려고 왔다고 믿을 것이고, 스트레스로 인한 뇌의 오작동이라면, 내가 그만큼 우리 강아지 보고 싶어서 그런 것이라고 여기면 된다.

다만, 내가 마음이 더 모질고 강한 사람이 되어서 덜 마음 아프고 덜 그리워하고 싶다. 전집중 호흡을 많이 해서 그런지 오늘따라 눈이 좀 시리웁다. 코 끝도 찡하고. 가위가 아니라 웅이가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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