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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에 닿는 촉감

이진성
  • 입력 2024.02.15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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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5.01:01.

살에 닿는 촉감 오감에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 있다. 감각에 관한 이야기를 수업할 때에 자주 하곤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 믿어, 느껴! 봐!! 들으라고!!!'라고 소리친다. 단어만 놓고 따져보면 추상적이고 구태의연한 연기수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의 재미는, 때로 내가 몸에서 상상력으로 어떤 감정까지 만들어지는지 지켜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기에 자주 감각에 대한 집중력을 동생들에게 요구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상당히 시각적인 감각을 주로 이용하는 배우에 속한다. 없는 상대방을 내 눈앞에 그리고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 없는 상대방의 동그란 얼굴과 잘 정돈된 머릿결을 만든다. 눈썹이 분명한 여인, 곡선을 타고 동해바다처럼 일렁이는 동공, 잘 뻗은 코와 모여져서 반듯한 입술까지. 화룡점정이 눈을 그리는 말이라는 구절을 떠올리며 상상을 환상으로 만들어 낸다. 불콰하게 달아오른 얼굴색 하나 없이도 나는 즐거운 연기로 머리통 어딘가가 취한 사람 마냥 믿고 연기를 한다.

내가 '믿어'라고 하는 디렉팅은, 그러니까, 앞에 목적어가 빠진 셈이다. 네가 보는 것을, 믿어. 이 말이 더 상황에 타당하다. 그러고 보면 목적어로 '봐, 들어!'라는 말은 많이 했어도 촉각에 관한 말은 기억을 뒤져봐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런 장면이 별로 없기도 하거니와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일까.

그렇지만 가장 강렬한 감각은 나에게 촉감이다. 눈이 오던 날 머리에 살짝 앉은 눈송이를 민망하지 않으려 애써 무뚝뚝하게 손가락으로 튕겨서 떨어뜨리고 가볍게 앞 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던 내 손끝. 그곳에 닿는 머리칼.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에, 젖어가던 내 어깨에 느껴지는 꿉꿉함이 미안해서 들쳐주던 부여 쥠과 맞닿은 손등. 아파서 하는 쿨럭임인가, 열이 있나 확인하고 싶어서 알아본 이마의 맨들 거림. 붉게 타는 내 뺨에 올라온 그 사람의 손바닥, 그런 것들. 그런 애매하지 않은 강렬함.

연기할 때에 이런 생각을 한다면 생각해 보니 집중이 안될 것 같다. 인물이 아닌,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르는 거니까. 그래서일까. 촉각을 상상하기 꺼려한 것은 쓸쓸함이라는 정서가 나옴을 짐짓 알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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