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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오디션

이진성
  • 입력 2024.02.02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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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2.02. 00:27

저번주 오디션 두 개를 대차게 말아먹었다. 하나는 OTT. 하나는 독립영화 단편이다. 두 작품은 다른 작품이지만 망한 내용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나의 눈떨림 때문이다. 내 기준 왼쪽 눈 밑 두덩이가 가끔 어떤 전조 증상도 없이 떨리곤 한다. 대략 6~7개월 정도 된 것 같다. 수업을 할 때나, 운동을 할 때에 특히 멈출 수 없게 떨리는 것이다. 마그네슘을 아무리 먹어도 나아지지 않는다.

그럴 때면 나는 앞으로 있을 촬영에 눈 떨림이 심해서 혹시나 NG가 나지 않을까 하는 망상도 한다. 카메라 앞에서는 사소한 오점도 크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술도 줄이고 커피도 입에 잘 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연기 시작하겠습니다. 하는 말을 떼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연기다. 눈떨림이 심한 배우를 어떤 관객이 좋아할까. 이런 의식의 흐름이 쉬는 날에도 잠 못 들게 한다.

 

분명 오디션 전에 특별한 긴장도 없었다. 아주 온전하다 못해서 나른한 상태로 오디션 장에 들어갔다. 전날 잠을 이루지 못한 피로감이 하품으로 쏟아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대사를 시작하고 내 연기가 내용의 중반부를 달리고 있을 때부터, 내 왼쪽 눈밑이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응. 나 떨게, '라고 하며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죄송한 마음으로 오디션장을 나오며 오디션을 소개해주신 대표님께 성의 있게 보았다고 카톡을 남긴다. 성의. 잘 못 본 오디션이라는 나만의 표현을 에둘러 말한 단어다. 숨을 쉬는 것도 연기다. 숨을 쉬지 않는 것도 연기다. 연기하면서 내 맘대로 표현되지 않는 게 있을 때 그 고통은 차마 처참해서 말할 수가 없다. 수업할 때에, 아주 작은 움직임도 찾아내어 더 좋은 움직임으로 만들고자 하는 마음에 까칠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운동으로 그 두 오디션에서 생긴 스트레스를 태워보려고 바벨을 잡는다. 때마침 그 대표님이 전화를 주셨다. 나는 핸드폰에 대고 "대표님 오디션을 제가.." 하며 말을 잇지 못하던 그 일조 정도의 사이를 뚫고 상대편의 음성이 들려온다. "축하해요. 펄스 났어요 진성 씨로."

....... 알다가도 모르는 게 오디션이다. 그럼에도 꼭 알아야 하는 건, 숨을 쉬는 것도 참는 것도 연기라는 것. 눈 밑이 떨리는 것도 내 의지로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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