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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냄새

이진성
  • 입력 2023.12.18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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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7.23:29

자취하는 곳과 내가 운영하는 연습실이 혹시 추위에 동파될까 봐 본가에서 부리나케 왔다. 본가에서 손이 노랗게 황금향을 까서 편하게 휴식을 취할 때쯤에 뉴스에서 한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덜컥 겁이 났다. 본가에서 가족과 황금향보다 달달한 아늑함을 뒤로하고 기억 저편에서 수도를 열어두지 않은 것 같은 불안감을 앞세워 차를 몰았다. 춥기도 너무 추웠다.

그렇게 내가 할 일들을 황급히 마치고 자취방 물도 살짝 틀고 잠을 청했다. 일요일 아침을 혼자 보내는 일은 어딘지 모르게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날은 오지게 추워도 하늘은 맑았기에 잠시 차에 시동을 걸기 위해 6층의 계단을 내려간다.

5층은 주인 할머니 내외가 산다. 구수한 냄새가 난다. 아마도 국이나 찌개를 하시는 것 같다. 연세가 있는 분들이 사시는 곳에는 빠질 수 없는 메뉴다. 우리 집에도 식탁에 국은 꼭 있으니까.

4층으로 계단을 옮겨 간다. 4층에는 깔끔한 신혼부부나 내 나이보다 대여섯 살 많은 부부가 살았던 기억이 난다. 내가 새로 이사 오고 주차로 깐깐하게 답했던 적이 있었다. 구수한 5층의 냄새와 대비되게 빵냄새, 단 냄새가 난다. 나와 비슷한 연배니까 뭘 먹는지 짐작이 간다. 주차할 때에 그... 날이 선 듯한 첫마디와 다르게, 이후로 나에게 호의적이었고 왜 초면에 기세를 부리는 지도 서울 살이를 해보니 이해되고 짐작도 되더라.

그 새침한 빵내음이 가시고, 3층에 왔더니 딱 우리 본가의 음식냄새, 주말에 나는 집밥냄새가 난다. 각종 튀김과 나물 볶은 냄새. 엄마가 가족 취향에 맞게 음식 하나씩은 상위에 올려놓은 냄새. 가장 다채롭고 풍부한 냄새. 3층에 내 또래의 자녀를 둔 부부가 살기 때문일까? 곧 문을 나와 교회를 가시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 1층과 반지하에 다다른다. 무슨 냄새가 나는지 코를 킁킁대지만 정겹지 않다. 그런 냄새가 있다. 사느라 바빠서 아무거나 먹거나 먹지 않거나 혹은 이미 밖에 나가 있거나 곯아떨어져 아직 누워 있거나. 말끔하지만 식은 냄새, 내 6층 옥탑에도 나는 냄새. 옥탑과 반지하는 비슷해서 참 싫다. 냄새가. 가정의 냄새가 나는 위층으로 다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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