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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회 『한국산문』 수필공모당선_김미라 수필가 「구석말 」

김주선 전문기자
  • 입력 2023.10.27 15:28
  • 수정 2023.10.27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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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회 『한국산문』 수필공모전에서 김미라 작가의 「구석말」이 당선되었다.  '아름다움과 그리움 찾기가 모든 예술의 첫 걸음이다. 이 둘은 대개 다정한 연인처럼 함께 붙어다니기 마련이다. 모든 예술 수업은 그래서 그리움과 아름다움을 찾는 데서 출발한다. 그걸 인식하는 주체는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문학예술 수업은 자신의 존재 찾기가 그 첫 작업'이라고 평했다. 
'김미라 작가의 작품 「구석말」은 지금은 사라져버린 도심이 된 송파구의 옛 모습을 복원해 준다. 그러려면 흔히들 자신의 회상에 의존하기 마련인데 김미라 작가는 사진작가가 된 벗의 작품을 통한다는 방법이 미학적인 성숙미를 더해준다.'는 임헌영 문학평론가의 심사평이 적혀있다.
작가는 '뒤늦게 알게 된 문학의 재미를 놓칠 수 없다는 간절함에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착학과에 입학하였고, 임헌영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쉽게 쓰이는 재미없는 글이라는 편견이 깨졌다'고 한다. '첫 합평 시간의 떨림과 설렘이 아직도 생생해 합평작이 늘어가면서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고 , 어느새 인생의 가을 길로 접어드는 나이가 되어 남아있는 시간을 더욱 다채롭게 채워나갈 선물을 받았다.'라며 등단소감을 밝혔다.

구석말 / 김미라

 

 저 멀리 뿌옇게 흐린 안갯길에 한 사람이 걷고 있다. 언덕을 넘어오는 사람인지, 넘어가는 사람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안개는 짙다. 흑백사진의 매력이란 이런 것일까. 그녀가 보낸 초대장에 실린 조그만 사진 한 장이 내 마음을 잡아끌었다.

 이제 막 예술의 길에 접어든 친구의 개인전에 다녀왔다. 4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다가 퇴직한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은행원이었던 그녀는 정년을 맞이하여 자신의 인생과 앞날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진짜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하다가 사진을 선택했단다. 친구가 유독 사진에 주목했던 이유는 찰나의 순간을 담아내는 사진의 매력 때문이라고 했다. 고객을 상대하고 돈을 만지는 직업을 평생 하다 보니 이제는 사람이 아닌 스토리가 있는 피사체를 사진에 담는 일을 해 보고 싶다나.

사진을 시작한 지 이제 겨우 3년 된 신인 작가가 벌써 개인전이라니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다닐 때도 열정이 많았던 친구였는데, 자신의 길을 개척한 친구가 내심 부럽기도 하다.

 송파구 장지동 104번지. 내 친구이자 사진작가인 이부순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마을 끝에 있어서 ‘구석말’이라고도 불렸는데, 지금은 고속도로가 생겨서 마을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갤러리에서 열리는 사진전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구석말」은 곧 작가 아버지의 삶과 인생을 담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난해 열렸던 그녀의 사진작가협회 단체전도 주목할만했지만, 이번 첫 개인전은 가슴속에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멈춘 시간을 기억하게 하는 흔적을 쫓아가게 했다. 차기 작품의 주제는 ‘후회와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아버지’라고 하더니 정말 아버지 관련 사진만 골라 첫 개인전을 열었다. 돌아가셨지만 나에게도 그리운 이름이 아버지이므로 그녀의 전시회가 남달랐다. 사진은 눈으로 보이는 것을 담지만, 그 안에 인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안다.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것도 그리움이란 또 다른 이름으로 어떻게 표현했을지 호기심과 기대를 안은 채 초대장을 들고 찾아갔다. 문학을 하는 나도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어떻게 사진으로 담아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했다.

 계단을 내려가자 커다란 벽면에 사진 한 장이 크게 확대되어 걸려있었다. 초대장에 실린 바로 그 사진이었다. ‘뿌옇게 흐린 안개 속을 걷고 있던 분이 아버지셨구나. 흰 두루마기를 입으셨네. 나는 초대장과 사진을 번갈아 가며 보았다. 안개가 깔린 들길을 걸어가는 친구 아버지의 발걸음이 가볍고 즐거워 보였다. 이른 아침에 어느 잔칫집에 가는 듯싶다. 금방이라도 흰 두루마기 자락이 언덕 너머로 나비처럼 사라질 듯했다.

오래된 사진첩 속에서 추억만큼이나 빛바랜 채 남아있는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친구가 살았던 집이었고 세 채가 나란히 붙어있었다. 친구가 말하길 큰아버지네 집, 자기네 집, 오촌 당숙의 집이라고 했다. 일가가 이룬 정겨운 풍경이었다. 마을에는 공동 우물도 있었다. 저녁밥을 짓기 위해 쌀을 씻고 빨래도 하던 곳에서 아낙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번 개인전은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도 있지만, 사진첩에서 골라 온 것도 많았다. 그리운 아버지에 대한 추억의 사진이 대부분이지만 어릴 적 작가의 모습도 있었다. 배를 쑥 내밀고 있는 사진이나 개구쟁이처럼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친구의 모습은 옛 추억을 소환하기에 충분했다. 마치 추억을 전시하는 사진전 같았다. 전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서 한동안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전시 공간 전체가 작가가 살았던 ‘구석말’이란 마을에 대해 무언가 이야기를 해 줄 것만 같았다.

2부 순서에 작가와의 대화 시간이 있었다. 작가는 오래된 일기장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던 소녀를 마주하게 되었고, 가족들과 기억을 모으면서 각자 기억하는 아버지가 다른 것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하며 도움을 주신 다큐멘터리 작가이신 이재갑 선생이 설명을 덧붙였다. ‘사진은 거짓말이기 쉽다’고.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깜짝 놀랐다. 이제껏 사진은 사실의 기록이라고 생각했다. 이 선생 말에 의하면 거짓이라서 내면을 표현하기가 어렵다는 뜻이었다. 내면의 상처나 마음을 표현해야 하는 것이 사진이라서 찍는 일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풍경 사진만 생각해 오던 나는 사진의 다른 세계를 본 것 같았다. 오랜 시간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며 깊은 성찰을 통해 본질이나 가치, 의미를 생각하고, 행동해서 작품을 만들어 내는 거라고 한다. 이 작가의 첫 번째 전시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은 진행형 작품이며 포장되지 않은 진심 그 자체라고. 이번 전시를 통해 나도 사진의 세계에 첫발을 들여놓은 것 같았다.

그날, 집에 돌아와 친구에게 전화했다. 배춧잎 끝에 달린 물방울들의 영롱함이 아버지의 사라지지 않는 노고인 것 같다고 그녀의 작품 사진 「배추」를 내게 넘기라고 농담인 듯 진담 같은 소리를 했다. 친구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문예 창작을 전공하고 수필을 쓰기 시작한 지 1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글 쓰는 작업이 고되고 힘들다, 그럴 때면 친구의 사진을 들여다본다, 가끔 길을 잃고 헤맬 때 방향을 알려주는 풍향계처럼 친구는 나의 동기부여가 되곤 한다. 카메라를 들고 전국을 아니 세계를 누비고 살고 있을 친구는 내가 걷는 문학의 길을 가끔 ‘구석말’로 안내한다.

김미라 /서울출생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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