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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번역 문학의 문제점

김정은 전문 기자
  • 입력 2023.10.23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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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평론상

출처(네이버 이미지)
출처(네이버 이미지)

 

한국 번역 문학은 문제가 많다. 번역을 잘못하면 문학과 멀어진다. 독일 작품이면 독일어 전공자가 바로 한국어로 해야 하는데 미국에서 번역한 걸 영어 전공자가 한글로 이중 번역을 하는 경우가 있다.

원작과 멀어지고 작품성도 떨어진다. 전집을 내는 곳은 하나만 망해도 다 망하니 단행본보다는 잘한 번역이 많다.

몽테뉴 수상록도 버전마다 감동이 다르고 개선문도 시처럼 느껴질 정도로 유려한 번역본이 있는가 하면 읽기도 싫은 번역도 있다. 외국 시 번역도 전혀 문학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딱딱한 영어책에 불과하다. 좋은 번역은 좋은 작품과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애벌 번역자나 여러 손을 거쳐 간 하청 번역도 문제다. 건설사들의 사다리식 하청이 부실 건물을 만들 듯 번역의 하청들이 부실 번역을 만든다. 제자들에게 시키고 감수만 하는 경우도 있다.

감수도 철저하게 해야 오류를 막는다. 국립 박물관에서도 번역을 일반 영문과 학생에게 시켜 엉망인 표기가 들어간 적도 있다.

대학원 다닐 때 타학교인 서울대 대학원에서 청강을 했다. 독일어 번역서를 많이 내신 분인데 수업이 그냥 책 번역이다. 학생들에게 일정 분량을 나눠줘서 해석시키는 게 수업이라 놀랐다. 그걸로 자기 이름으로 책을 낸다. 무료 애벌 번역을 한 거지 수업을 받은 게 아니다.

요새는 저런 식은 아니겠지만 번역자가 책임감 없이 대충 책을 내는 게 문제다. 영문과를 나오고 외국 명문대에서 박사를 하고 교수를 해도 주어, 서술어, 동사, 명사 구분도 틀린 책도 많이 봤다.

물론 내용에 따라 형용사, 부사, 명사, 동사를 다른 품사로 해석할 수는 있지만 동사, 명사를 혼동하는 건 잘못이다. 유추하건대 그런 실수는 애벌 번역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경우이다. 진행형이 한국어엔 없기에 현재로 번역하고 되다체는 영어식이니 하다체로 옮김이 옳다.

문법만 배운 예전 시대처럼 시를 시처럼 번역하지 않고 논문이나 수필처럼 번역하기도 한다. 시는 시인이 번역해야 한다. 영시가 한국시로 됐을 때도 시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시는 각운 두운 등 라임과 비슷한 단어를 쓰는 슬랜트 라임을 많이 사용하는데 번역할 때 한글로도 라임을 잘 살려주는 것도 좋다.

하지만 라임을 살릴 것인지 의미를 살릴 것인지 갈등이 오면 의미를 살려야 한다. 라임은 부차적이다. 우리나라 시는 라임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으니 굳이 다른 단어를 쓰면서 라임을 맞추지 않아도 된다.

단어 선택을 맘대로 하기도 한다. 시인이 쓴 단어는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 단어를 쓴 이유가 있어 쓴 거다. 언어가 다르니 똑같은 단어가 없을 수 있지만 전혀 다른 단어로 원작자의 의도를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이 글에선 2000년도에 발간된 민음사의 『소네트』 정종화 번역에서 소네트 15, 20, 19를 중심으로 셰익스피어 번역의 문제점을 논하고자 한다.

 

출생지를 따라 ‘Bard of Avon(에이번의 시인)’라는 별칭이 있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국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 shake 흔들다 이름처럼 펜을 흔들어 세계를 흔들었다.

동료 극작가 벤 존슨은 셰익스피어를 일컬어 한 시대가 아닌 만세를 위한 작가라고 칭하지만, 한 나라가 아닌 세계를 위한 작가이기도 하다. 보통 그의 희곡만 떠올리는데 희곡 자체도 시적인 글들이고 실제 시인이기도 하다.

소네트는 14줄로 이루어진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시며 기승전결이 있다. 이탈리아 시인 페트라르카에 따라 각운이 abba/ abba/ cde/ cde(페트라르카식 소네트)이며 영국에 와서 abab/ cdcd/ efef/ gg(셰익스피어식 소네트)가 되었다.

마지막 음운이 저런 형식을 가지는데 그걸 염두하고 한글로 번역할 때도 가능하면 라임을 살리는 단어를 찾는 게 중요하다.

소네트 15의 마지막 부분 you, new, 소네트 33 첫 부분에서

Full many a glorious morning have I seen

Flatter the mountain-tops with sovereign eye,

Kissing with golden face the meadows green,

Gilding pale streams with heavenly alchemy;

eye, alchemy 마지막 철자가 다르나 발음 일치도 라임이다. 셰익스피어는 각운을 맞추느라 문장 순서를 바꾼 게 많아 다양한 해석을 낳기도 한다.

셰익스피어는 여성이란 얘기도 있고, 엘리자베스 여왕이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썼다고도 하고, 여러 작가가 썼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역사상 실존 인물이다. 극장을 운영하기도 하고 활발한 활동을 한 걸 보면 사회상으로 볼 때 여성도 아니다.

극적 전개와 유머러스한 필체, 연금술에 심취해서 시에서 금빛, 금색, 도금, 연금술 단어 중복만 보더라도 일관성 있기에 한 작가다.

유산에 그의 작품이 상속되지 않아 여러 작가 설이 있으나,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엔 저작권이 없어 공동재산이다.

그 많은 희곡을 어떻게 다 썼나하지만 햄릿, 리어왕이니 지금 잣대로 보면 표절이고 베니스의 상인이나 대부분 희곡도 설화가 근간이라 가능하다. 하지만 이것이 구성이나 대사와 문체에 나타나는 그의 작품의 천재성을 훼손하지는 않는다.

당시 시대상에 비해 십이야, 베니스의 상인,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 여성이 주역을 담당하고 오셀로에서는 가정 내 여성의 억압적 삶을 조명하는 등 여권주의 작품도 많다.

셰익스피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어도 셰익스피어의 시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다. 셰익스피어 번역은 천 명이 하면 천 명이 다 다르다는 말이 있다. 칸트 해석도 칸티안(칸트 연구자)마다 다른 것과 같다.

소네트 15, 19, 20 원문은 필자가 영국 시인에게 직접 구한 정통 영국 본이다. 영시와 이어지는 번역은 필자의 번역이고 두 번째가 정종화 님의 번역이다. 필자의 번역에선 쉼표와 마침표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시상이 이어지길 바라서다.

 

SONNET 15

 

When I consider every thing that grows

Holds in perfection but a little moment,

That this huge stage presenteth nought but shows

Whereon the stars in secret influence comment;

When I perceive that men as plants increase,

Cheered and chequered even by the self-same sky,

Vaunt in their youthful sap, at height decrease,

And wear their brave state out of memory;

Then the conceit of this inconstant stay

Sets you most rich in youth before my sight,

Where wasteful Time debateth with Decay,

To change your day of youth to sullied night;

And all in war with Time for love of you,

As he takes from you, I engraft you new.

 

소네트 15

 

모든 성장하는 것을 생각하면

완벽함은 순간이고

위대한 시기는 허무하나

별들이 비밀스러운 조언을 준다

식물이 자라는 것처럼 사람도

하늘의 갈채와 변화를 겪고

젊은 수액을 자랑하고 절정에서 시들어

멋진 시기는 잊혀진다는

짧게 머물기에

너의 젊음을 가장 아름답게 만들고

파괴적인 시간이 너의 젊은 낮을

나이 든 밤으로 바꾸려 쇠퇴와 다툰다

너에 대한 사랑을 위해 시간과의 모든 전쟁에서

시간이 너를 데려가면 나는 너를 새롭게 탄생시키리

 

아래는 정종화 님의 번역이다.

 

소네트 15

 

만물을 생각하면 성장하고

완성을 유지하는 것도 잠시일 뿐,

이 거대한 무대는 별들이 신비롭게

움직이는 쇼에 불과하다.

식물처럼 인간도, 같은 하늘 아래서

번식하고, 갈채 받고 비난당하고,

젊은 혈기를 뽐내다가 절정에선 시들고

화려한 젊음을 소모하곤 잊혀지게 마련.

불확실하게 머문다는 생각이

젊음을 향유케 하지 내 앞에서.

여기서 파멸의 시간은 쇠퇴와 겨룬다.

젊음의 낮을 얼룩진 밤으로 바꾸기 위해

모두들 그대 사랑을 위해 시간과 전쟁을 벌인다.

시간이 그대를 지치게 하면, 내 그대를 새롭게 하리.

 

전체적으로 시어가 시적이지 않다. 만물, 번식, 마련, 향유 등이 구투다. that grows가 성장하는으로 앞 every thing을 꾸며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동사 shows를 명사, 쇼라 했는데 그러려면 단수가 되야 한다. 앞의 stage가 단수니. 게다가 무대는 쇼가 아니다. 무대는 쇼를 하는 장소이지 무대=쇼라는 해석은 잘못이다.

이 시에선 식물에 사람을 비유하는 말을 하는데 뜬금없는 별 쇼가 전체 주제와 어울리지도 않는다. 별들은 순간이 아니라 몇억 만 년 장수하기에 이미지에도 맞지 않다. 번식과 비난당하다는 원문에 없다.

스테이지는 무대가 아니라 성장에 대한 말을 하니 단계, 시기로 해석해야 맞다. grow도 나왔으니 생장기, 성장기를 연상하면 된다. 식물에 빗댄 수액을 혈기로 하면 시적 은유가 사라진다. 직유를 하는 건 그 대상자의 행동이나 용어를 쓰자는 거다.

예를 들어 그가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었다, 그는 새처럼 파닥거렸다, 꽃처럼 향기 났다 해야 한다. 비유되는 대상에 어울리는 단어 선택을 해야지 그가 토끼처럼 뛰어갔다. 그는 새처럼 움직였다. 꽃처럼 냄새났다 하면 안 된다. 비유를 잘 살려야 좋은 번역이다.

chequer는 checker로 변화를 주다 고어다. 어느 번역자는 확인하다라고 하는데 check를 착각한 거 같다.

~라고 생각하다는 일본어 투다. 그래서 되도록 생각하다를 쓰지 않았고 필요 없는 부분의 생략이 시를 더 간결하게 시적으로 보이게 한다.

시간이 흐르면 나이 드니 sully는 가치를 훼손하고 떨어뜨리는 거다. 나이 들어 젊은 날보다 기력이나 가치가 떨어져 보이는 나이 들면 다 늙는다 의미다.

그러니 sullied night을 방탕, 쾌락, 난잡하다로 이해하면 안 된다. 시간과 어울리는 단어가 쾌락이 아니라 쇠퇴, 나이듬인데 그걸 다들 방탕, 난삽하다, 얼룩진 의미로 번역한다.

셰익스피어는 대구를 잘 쓰는데 젊은 낮과 늙은 밤, 대구로 봐야 옳다. 원문에 시간과 쇠퇴가 대문자로 고유명사처럼 처리해서 시간의 신, 쇠퇴의 신을 의미하고 둘이 서로 너를 가지려 싸우는 내용이다. 고어 debateth는 battle 다투다 뜻이다.

시간과 쇠퇴는 같은 개념이 아니다. 시간은 화살처럼 쏘는 방향, 속도에 따라 갑자기 늙을 수도, 젊을 수도 있지만 쇠퇴는 생로병사를 거쳐 서서히 진행한다. 인간이 천천히 노화하는 걸 시간이 갑자기 늙게 만들어 시간과 쇠퇴가 싸우는 걸 말한다.

‘슬픔은 시간의 걸음걸이를 헝클어 놓고 고요한 잠을 깨뜨려 버린다. 밤을 아침으로 만들고 대낮을 밤으로 만들고 만다.’ 그의 다른 글에서 보듯 시간은 뒤죽박죽될 수 있지만 쇠퇴는 순서가 있다.

그러므로 여기 나오는 전쟁은 두 신의 전쟁이지 인간과 시간의 전쟁이 아니다. 마지막에 ‘시 안에서 너를 새롭게 한다’는 다른 사람의 오역도 있는데 없는 걸 덧붙이면 안 된다.

engraft는 나뭇가지 접붙이는 거다. engrave로 착각해서 새기다란 번역들도 많다. 나뭇가지 접붙이는 건데 시적이지 않아 탄생으로 하였다.

한글 시에서도 시적인 느낌이 있어야 해서 불필요한 문구는 생략할 수 있다. 들어가면 너무 시어가 아니라 딱딱한 어감이 있다면 그것도 부드러운 시를 위해 빼도 된다.

하지만 시를 위해서가 아니라 번역이 복잡해서 안 한다면 안 된다.

 

SONNET 20

 

A woman’s face with Nature’s own hand painted

Hast thou, the master-mistress of my passion;

A woman’s gentle heart, but not acquainted

With shifting change, as is false women’s fashion;

An eye more bright than theirs, less false in rolling,

Gilding the object whereupon it gazeth;

A man in hue, all ‘hues’ in his controlling,

Much steals men’s eyes and women’s souls amazeth.

And for a woman wert thou first created;

Till Nature, as she wrought thee, fell a-doting,

And by addition me of thee defeated,

By adding one thing to my purpose nothing.

But since she prick’d thee out for women’s pleasure,

Mine be thy love and thy love’s use their treasure.

 

소네트 20

 

내 열정의 주인이여

그대는 자연이 그린 여성의 얼굴이나

경박한 여인네처럼 변덕스럽지 않은

관대한 여인의 마음을 지녀

눈은 더 빛나지만 한눈팔지 않습니다

눈빛이 닿는 곳은 금빛으로 빛나기에

그중에 그대가 있고 추종자들을 거느려

남자들의 눈을 훔치고 여자들의 영혼을 깨웁니다

그대는 여자를 위해 먼저 창조되었으나

자연의 여신이 그대를 매혹적일 정도로 만들었기에

그대로 인해 나마저 굴복했습니다.

나의 연인에게 무의미한 하나를 붙여

그녀가 여성들의 즐거움을 위해 당신을 선택했기에

나의 것은 그대의 사랑이 되고

그대 사랑의 쓰임은 그들의 보물이 되었습니다

 

아래는 정종화 님의 번역이다.

 

소네트 20

 

내 정열의 주인공 그대는

자연이 스스로 그린 여자의 고운 얼굴을 가졌노니,

여성의 부드러운 마음을 가졌으되

거짓된 여자 같은 변덕에 물들지 않고

여성의 눈보다 더욱 빛나되 거짓되게 눈을 돌리지 않으니.

보는 것마다 아름답게 되고

건장한 모습으로 모든 색을 통괄하고

남성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여성들의 영혼을 황홀케 한다.

그대는 먼저 여자로 창조되었으되

자연의 여신이 스스로 만든 그대에게 매혹되어

부가물을 달아 그대를 나에게 빼앗았으니,

하나를 더 부가하는 것은 나에게 의미 없는 짓.

그러나 자연은 여성의 기쁨을 위해 그대에게 남근을 달았노니,

나의 기쁨은 그대의 사랑, 그대의 기교는 여성의 보물.

 

길고 산문적이다. 시가 길면 늘어져서 시의 특징인 간결성이 배제되 시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시는 디자인도 예뻐야 한다. 전체적으로 들쑥날쑥해서 형태도 와닿지 않는다.

색을 통괄하고, 남근 등 시어로 적당하지 않고 정열, 주인공, 가졌노니, 되었으되, 달았노니도 구투고 주인이지 주인공 의미도 아니다.

처음에는 여성으로 만들었다가 남자로 했다는 기존 번역은 다 오류다. 셰익스피어는 분명 for woman을 써서 여성을 위해 남성을 만들었다고 명확히 밝힌다. 자연이 여신이기에 본능적으로 처음부터 남자를 만든 거다.

use가 동사가 되려면 3인칭 단수니 s가 나와야 한다. 여기서는 명사고 뒤에 be가 앞 문장에서 나오니 생략되었다.

till, as를 오역하면 안 된다. 여기선 till이 ~때까지, ~할 정도고 as는 때문에다. till 주어 fall a-dotiong은 매력에 빠질 정도로인 정도를 나타내는 거고 till, as가 시간이 아니다. 그러니 너를 만들 때 자연이 스스로 너에게 빠졌다는 바르지 않다. 원인인 거다.

Till Nature fell a-doting as she worked you, defeated me of you by addition. 이게 원 문장이다.

자연이 자기도 매력적인 너에 빠졌을 정도로 만들었기 때문에 너로 인해 나마저 굴복되었다 즉 나를 추가로 패배시켰다가 옳은 번역이다. 여자로 만들어 놓고 사랑에 빠져 남자로 생식기를 붙였다는 건 신에 대한 모독이다.

defeat는 빼앗다가 아니라 굴복시키다이다. 빼앗기다가 아니다. 밑에 나의 것이 그대의 사랑이 되었다고 그와 사랑하고 있으니 뺏긴 게 없다.

my purpose nothing을 ‘내게는 의미없는’ 으로 해석하지만 purpose는 연인이다. 나의 삶의 동기, 목적은 연인인 거다. 내 목적으로 생각하니 내게는 필요없는, 의미없는으로 이어지는 거다.

기존 번역자들은 소네트 20에서 addition, adding 두 단어를 같은 뜻으로 반복적으로 쓴 것이라 하지만 단지 형태상 비슷한 단어를 쓴 슬랜트다. 라임의 천재라 추임새 있게 넣었을 뿐이고 언어 마술이다.

셰익스피어는 한 시에서 같은 단어를 극도로 배제한다. 물론 각 사물마다 적합한 단어는 하나다라는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은 글 쓰는 사람들에겐 기본이다.

한 작품에서 같은 단어가 두 번 나오지 않는 것. 실제로는 불가능하지만 최대한 자제한다는 의미다.

가사에서도 그렇고 모든 문학 작품에서도 되도록 지나친 반복은 피한다. 시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충돌을 피한다.

셰익스피어도 소네트 33에서 같은 구름도 cloud와 rack으로 여러 이름으로 쓸 정도로 잘 지킨다. 그러니 같은 의미의 단어가 아니라 형태만 맞춘 거다.

또한 사랑 묘사에 과감하지만 시인은 누구나 직접 묘사를 하지 않는데 찌르다 심다 따다 그리다 하늘이 점지하다 동사 prick을 마치 3류 치정 잡지처럼 남근을 달았다로 적나라하게 번역했다.

부사나 접속사를 해석하지 않거나 다른 의미로 해석하면서 말이다. 어느 번역가는 구멍으로 한 것도 있다. 원 시인이 간접적으로 말했으면 번역도 그에 따라야 한다.

시어는 아름답고 순수하고 감동적이어야 한다. 의도적으로 파괴 시를 쓰지 않는 이상 선택하다처럼 그 단어가 주는 해석 안에서 가장 시적인 걸 골라야 한다. 부가물이니도 시적이지도 않다.

여자 여성 여인은 다르다. 여자는 남자의 생물학적 상대 의미고 여성은 성인 여자를 말하므로 약간의 존중의 뉘앙스가 있다. 여인은 문학에선 성적인 의미도 가진다. 일물일어설에 맞춰 시에서 다양하게 써야 지루하지 않다.

정종화 님의 번역에서는 여자 여성 두 가지로만 번역해서 식상하다. 기쁨도 두 번 나와 임팩트가 사라진다.

-네는 그러한 부류 또는 그러한 부류에 속하는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여인네는 속어는 아니지만 노친네가 노인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라 어감이 경박한에 어울리는 단어다.

저런 연상되는 적확한 단어로 번역하면서 다양하고 폭넓은 단어 선택으로 변화를 주는 게 중요하다.

이 소네트 번역의 핵심은 hue 번역이다. 형상, 미모, 용모로 한 번역도 있고 정종화 님은 색으로 번역하지만, 셰익스피어는 미다스의 신화를 차용했고 당시 유행하던 연금술을 인용해서 미다스의 손처럼 다 금이나 금빛으로 물들이는 걸 말한다.

시인은 연금술에 빠져서 소네트 33에서 alchemy 연금술, golden 단어나 다른 시에서 gilding 등 많이 쓴다. 그에게서 연금술은 물질적 금이 아니라 빛남으로 사용한다.

눈이 응시하는 대상이 다 금박이 되는 거니 hue, 색조는 그 금색을 말하는 거고 구체적으로는 금색으로 빛나는 빛 금빛을 말하며 그가 응시하는 그의 추종자들을 상징한다. 그래서 hues, 복수로 해 구체적 사람들을 지칭한다.

금빛과 금색은 같은 말이나 의미가 다르다. 색과 빛은 어감이 같지 않다. 색은 고정이고 빛은 번진다. 필자의 번역에선 눈빛과 금빛 슬랜트 라임도 맞췄다.

use를 정종화 님은 기교로 해석했고 필자는 쓰임, 사용으로 성적 행동을 상징했다. 지나치게 직접적인 말은 시 장르에 안 어울린다.

셰익스피어가 저런 내용의 시 때문에 동성애자란 말도 있는데 그 당시 상황을 지금의 잣대로 보면 안 된다.

여성의 사회 활동이 거의 없는 시대에 자주 보게 되는 동성끼리 호감 가질 수 있다. 현대 기준으로 판단하면 안 되고 고대로부터 성장하지 못한 관습, 문화라고 생각해야 한다.

 

SONNET 19

 

Devouring Time, blunt thou the lion’s paws,

And make the earth devour her own sweet brood;

Pluck the keen teeth from the fierce tiger’s jaws,

And burn the long-lived phoenix in her blood;

Make glad and sorry seasons as thou fleet’st,

And do whate’er thou wilt, swift-footed time,

To the wide world and all her fading sweets;

But I forbid thee one most heinous crime:

O carve not with thy hours my love’s fair brow,

Nor draw no lines there with thine antique pen.

Him in thy course untainted do allow

For beauty’s pattern to succeeding men.

Yet do thy worst, old Time; despite thy wrong,

My love shall in my verse ever live young.

 

소네트 19

 

게걸스러운 시간이여! 사자의 발톱을 무디게 하고

대지가 그 사랑스런 자식들을 삼키게 하라

맹렬한 호랑이의 턱에서 날카로운 이빨을 뽑고

불멸의 불사조를 그녀의 핏속에서 불태우라

즐겁고 슬픈 시절을 너처럼 지나게 하고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하라 발빠른 시간아!

광활한 세상과 그녀의 퇴색하는 향내에게

그러나 금하노니 단 한가지 악독한 죄

오, 내 사랑의 이마에 너의 낡은 펜으로

시간을 새기거나 선을 그리지 말라

너의 행로에서 놓아주어라

후대의 미의 표본을 위해

하지만 최악을 다하라 늙은 시간아, 너의 악행에도

내 사랑은 젊으리니 나의 시 속에서 언제나

 

아래는 정종화 님의 번역이다.

 

소네트 19

 

게걸스러운 시간아, 사자의 발톱을 무디게 갈고

대지가 그 귀여운 후손을 삼키게 하고

사나운 호랑이의 턱에서 날카로운 이빨을 뽑아라.

오래 산 피닉스를 불태우고

급히 가면서 기쁘고 슬픈 계절도 만들라.

넓은 세상과 퇴화하는 모든 감미로운 것에

걸음이 잽싼 시간은 무엇이든지 다하라.

그러나 꼭 하나 흉악무도한 범죄를 금하노니

아, 내 사람의 아름다운 이마에 너의 시간을 새기지 말며,

너의 기괴한 펜으로 줄을 긋지 마라. (생략)

 

일단 귀여운 후손, 피닉스, 흉악무도, 범죄 등이 시에 어울리지 않는다. 귀여운 후손보다 사랑스런 자식이 어울리고 외국어 번역 시 한글 불사조로 해야 한다. 흉악무도, 범죄는 시에 맞지 않다. fierce tiger는 맹호이니 사나운보다 맹렬한이 어울린다.

 

'불멸의 불사조를 그녀의 핏속에서 불태우라

즐겁고 슬픈 시절을 너처럼 지나게 하고

네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하라 발빠른 시간아!

광활한 세상과 그녀의 퇴색하는 향내에게’

 

‘오래 산 피닉스를 불태우고

급히 가면서 기쁘고 슬픈 계절도 만들라.

넓은 세상과 퇴화하는 모든 감미로운 것에

걸음이 잽싼 시간은 무엇이든지 다하라.’

 

위만 비교해도 어느 게 시적인지 알 수 있다. 시 번역할 때 원문의 행을 바꾸면 안 된다. 부득이하거나 전혀 이해가 안 가는 경우를 제외하고 행의 순서를 지켜야 한다.

 

이상으로 셰익스피어의 세 시를 타 번역자와 비교하며 한국 번역 문학의 구체적인 문제점들을 지적하였다. 오역이 많아 시가 와 닿지 않는다. 편하게 다가와야 하고 상상력이 그림처럼 펼쳐져야 하는 게 시인데 비유와 시어를 살리지 못해서 전혀 시적이지 않고 어렵고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셰익스피어가 은유적으로 숨겨놓은 단어들을 다 거의 야하고 방탕하게 번역들 해놓거나 직접 성적 단어를 늘어놓는 번역들이 많다. 시는 시성을 가져야 한다. 오역으로 오염시키면 안 된다.

이래서 시가 독자와 멀어지게 되고 시를 읽지 않는 시대가 된다. 문학의 부재는 인간성의 상실이다. 외국 좋은 작가들의 많은 시들의 어감을 잘 살리려면 바른 번역이 선행해야 한다. 시는 간결할수록 좋으니 되도록 조사는 넣지 않아야 하고 어려운 말로 번역하지 말아야 한다.

셰익스피어 번역은 영문학 전공자들도 어렵다. 고어도 많고 본인이 만든 말도 많고 각운의 천재다. 현대 영어는 두운, 각운이 중요치 않지만 시의 맛을 살리기엔 여전히 칭송받는다.

그의 각운은 고심해서 맞춘 게 아니라 일단 문장을 다 써놓고 위치를 바꿈으로 쉽게 맞춘 각운이다. 하지만 해석할 때 제대로 순서를 생각하고 하지 않으면 오역이 많다. 셰익스피어를 공부하면 음률 있는 시를 잘 짓게 된다.

고전 해외 시는 감동적인 문장이 많지만 현대 서양 시는 이불보 시다. 조각으로 덧대 내용은 사라지고 무늬만 남는다.

현대 영시는 정서, 서정은 사라지고 은유만 남았다. 전 세계 가장 유명한 시상을 주최하는 곳도 심지어 10단어를 주고 조합해서 시 쓰는 대회도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광물, 탄생, 우주, 미생물, 붉은 가리비 등등을 넣어 시를 지어라. 은유만 연결한 게 어떤 아름다움이 있는가. 한국 시도 마찬가지다. 은유를 잘 갖다 붙여 조각보를 만들면 최고라 생각한다.

그들도 시를 읽지 않고 팔리지 않아 고민이다. 쉽고 서정적인 시를 써야 한다. 글로벌한 시대에서 우리만 아는 한국적 은유를 쓴다면 세계인은 이해할 수 없다.

감동도 없고 껍데기 무늬만 있다. 어느 서울 명문 여자대학에서는 어렵게 쓰는 것만 가르치기도 한다. 그런 은유는 시인 본인만 아는 거지 독자를 공감시키기 어렵다.

적당한 직유 은유는 시의 기본이지만 직유 은유로만 이어지는 시는 시가 아니다. 감성 없는 번역과 마찬가지다.

좋은 번역을 원한다면 일단 좋은 시를 써야 한다. 번역은 다른 문화권의 시를 읽는 거니 어렵거나 까다로운 단어보다 누구나 알 수 있는 단어로 쓰는 것이 좋다.

보통 시를 쓸 때 주어 동사를 모호하게 쓰고 한 문장도 도대체 어디가 주어고 어디가 동사이고 끝인지 모를 정도로 길게 쓰는 게 많은데 그런 시는 번역하기 힘들다.

영어는 주어와 동사가 명확하게 일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어로 번역할 땐 주어를 생략해도 되지만 한국 시를 영어로 번역할 땐 주어가 꼭 필요하다.

영어를 잘 아는 한국어 전공자가 시를 번역함도 낫다. 영어만 안다고 좋은 번역자가 되는 게 아니다. 대부분 영문학도가 많이 번역하는데 문법도 틀리고 뜻도 다른 것도 많다. 어감을 모르기 때문이다.

시인의 감성으로 비슷한 여러 단어들도 알고 뜻도 정확히 아는 바탕에서 세심히 원작자의 의도를 잘 파악하고 번역한다면 한국 번역 문학의 길은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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