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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은 시』 ‘언눔이’ (2)

윤한로 시인
  • 입력 2023.10.1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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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시로 엮은, 내 시를 삶으로 엮은

6부 언눔이 (2)

  

얀마, 하고 언눔이가 왔다, 늦은 갈

가랑잎에 발목 푹푹 빠지며

굵은 박달나무 지팡이 짚고

신발엔 방울 달고 뱀 쪼치느냐

방울소리 딸랑거리며 왔는데

들마루에 앉아 소주 한 병 까더니

뭐, 또 약초 얘기부텀 매실, 버섯, 개,

벌통은 도둑맞네 산불감시원 떼이네

거지반 말아먹었단 거인즉슨, 은행구린낸

풀풀 풍기며, 잘난 척은 푸지게 하드람, 언눔이

이제 자식들 따위, 시 얘기 따윈 아예 입 밖

궁굴리지도 못하게설라컨

이스토록, 밤이슬 젖는 터

얀마, 아까 소장수 님께 잘해 드려 담장은 헐코

성당엔 또 잘 나간나, 요란터니 제풀에

애달픈 듯 초승달 보고 누님, 누님 하더니

금굴산껜 즈이 성, 성 하더니

곧 이빨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댄다 

 

가재골 시인

 

쀼루퉁,

몹시 화가 난 얼굴

똥 씹은

표정

오늘은 삼류 시인 하나

신변잡기

시 쓰는 날

죄짓는 날이다

  

자꾸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내가 시를 쓰지 않았으면

훌륭한 농사꾼이나 목수나 뱃사람 되어

무지막지 머슴처럼 일했으리

철공소 검정 기름때 투성이 되어

뼈빠지게 쇠를 뚫고 잘랐으리

두어 마디 뒤틀리고 뭉개진 손가락

기쁘게, 코 쉰내 풍기며

개미 컨테이너 구두도 고치고

도장도 파고 열쇠도 깎았으리

나라는 인간, 애당초

시 따위 알지 않았으면

사람들한테는 훨씬 사람다웠으리

저 별 저 구석쟁이 곡괭이한테도

진정 시인다웠으리

 

그렇습니다 

 

내가 시를 쓰지 않았으면

나무는 나무답고 하늘은 하늘답고

흘러가는 구름은 흘러가는 구름답고

별을 노래하고

새와 바람과 돌멩이와

속삭일 수 있었을 텐데

사랑을 나눌 수 있었을 텐데

사람들한테 사람다웠을 뿐

아니라 하느님께는 더욱 신자답고

진심으로 기도할 수 있었을 텐데

고해할 수 있었을 텐데

맑고 선량하고 영혼 꿈으로 가득 차고

싱싱하고 자유로왔을 텐데

온갖 걱정, 슬픔, 고통까지도

말라비틀어지잖고 활활 불타올랐을 텐데

애당초 그 잘난 시 따위 알지 않았으면

  

접때는 이우지 여든 살 할머니 한 분

애걔걔, 내 시집 좀 달란다

일주일에 둬 번 읍내 나가 시를 밴다는데

좋잖은 내 시들 어쩐댜

전혀 볼거리란 없단 데두

대이구 달라는 데야 

 

청람(淸覽) 

 

떨립디다 낯 뜨겁습디다

뻣뻣하고 질긴 말도 아니요

풀잎에 슬리고

나뭇가지에 긁히고

새들한테 파먹힌 말도 아니요

바람에 트고

볕에 탄 말도 아니요

덧정 없이, 맛대가리 하나 없이, 뚱하니

속 터지는 말도 아니요

그저 메스껍고 야들야들한

저 대처것들 말뽄새뿐

그러나 어쩔 수 없어 시집을 드릴라커니

나 이렇게 써 줬습죠

‘여기 할매요,

부디 좋게도 맑게도

보아 주지 마소 그러구러

돼도 안한 내 시집일랑

장독이나 덮으시구래’

하고

  

‘메추라기 사랑노래’

‘그대 나에게 가고 나 그대에게 오고’

여즉

골방에 처박아 놓은

저 케케묵은 내 1,2시집들

뿔뿔이 굵은 바퀴벌레들만 들고나고

낯 뜨겁구나

먹히지도 않는 잔해들

한 권 한 권이

쌀 한 섬보다 무겁더라 무섭더라

오늘은 다 불 때야지 내일은 꼭 때야지

그러나 차마 때지 못하고

까옥 까옥 까옥

까마귀처럼 하냥,

우짖더라

  

가재골 시인 2

  

시를 쓰는 것은

어렵다

쀼루퉁,

똥 씹은 표정

안 쓴다는 건

놓지 못한다는 건

더 어렵다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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