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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획] 이동수 갤러리 탐방 후기!

임만택 전문 기자
  • 입력 2023.09.14 00:39
  • 수정 2023.09.15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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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동수 작가 추모 특별 기획
“아 이 자리, 공간도 영원히 내 것은 아니구나. 죽기 전까지 작업공간을 빌려 쓰다 가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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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0일부터 12일까지 복덩이 서윤이 현장체험학습으로 강원도 양양에 있는 쏠비치에 다녀왔다. 현장학습 2일차인 11일 복덩이는 엄마아빠와 쏠비치 해변에서 모래쌓기 놀이를 했다. 나와 아내는 쏠비치 건너편에 있는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에 갔다. 쏠비치에서 걸어서 10분거리에 있다. 아침부터 햇살이 강하다. 걷기에는 많이 덥다. 천천히 걸어서 도착하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은 휴관이다. 거기까지 간 김에 강원도 양양군 동명천을 따라 들판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석호인 쌍호호소(雙湖湖沼)를 걷기로 했다. 소요시간은 약 20분 정도 걸렸다.

쌍호호소와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전경 / 전문기자 제공
쌍호호소와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전경 / 전문기자 제공

쌍호석호 데크길을 걷는 중에 눈에 들어오는 곳이 있었다. 쌍호호소 좌측편 낮은 산 아래에 있는 <이동수 갤러리>다. "순간 이런 한적한 곳에 갤러리가 있네?" 하는 생각이 스쳤다.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야외에 있는 움집 체험을 마치고 <이동수 갤러리>로 가기로 했다. 가는 길은 왕복1차선의 작은 시골길이였다. 자동차는 다니는 길이다. 박물관에서 걸어서 3분거리이다. 갤러리 가는 길에는 이정표는 없었다. 그 곳에 갤러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가지 않으면 갈 수가 없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갤러리는 야트막한 산 아래 자리잡고 있었다.  90평 규모의 건물 2개동이 ㄱ자 형태로 이어져 있다. 갤러리 앞 마당에는 붉은 계통의 예쁜 원탁과 의자가 놓여 있다. 하얀색 계통의 의자도 있다. 대체적으로 손길이 많이 필요한 상태로 보였다.

갤러리 안으로 들어선 순간 전시 작품들이 보이고 탁자와 의자도 보였다. 작가가 작업한 물감과 팔레트 등 화구들도 보인다. 우측면에는 찻잔, 차사발도 보인다. 나중에 관장님께 들은 이야기지만 작가를 좋아하는 분이 보내온 것이라고 한다.

갤러리는 2개의 전시공간과 카페 공간으로구성되어 있으며 한쪽에서는 다른 작가가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다. 우선 중앙과 우측에 있는 전시공간을 관람하였다. 작가의 작품과 작업실 공간, 미술도구와 관련 책 등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카페공간에서는 약간의 음료를 판매한다. 관람은 유료이며 대신 음료를 제공해 준다. 1 전시관 관람후 김주희 관장으로부터 이동수 갤러리와 이동수 작가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생전의 이동수 작가 / 갤러리 제공
생전의 이동수 작가 / 갤러리 제공

먼저 이동수 작가에 대하여 알아보자.

이동수 작가는 1964년 10월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났다. 양양에서 태어난 작가는 미술공부가 하고 싶어 서울로 상경했으나 제대로 된 화실 한번 다니지 못했다고 한다. 공장생활을 전전하며 혼자 힘으로 어렵게 홍익대에서 미술공부를 마친 작가는 생계를 위해 속초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다 10여년 전 2016년에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학포리 56, 현재의 <이동수 갤러리> 자리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작품활동에 전념해 왔다고 한다.

지난 2019년 54세의 젊은 나이로 갑자기 생을 마감한 故 이동수 작가는한국 화가로서는 드물게 국제 아트페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며 세계적으로 인정받던 유망한 작가였다. 파리, 빈, 싱가포르, 바젤 등 많은 세계 유수의 아트페어에서 작품들을 ‘솔드아웃’ 시키며 유명해진 작가였다. 오히려 고향 땅에서는 그를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작가가 그린 많은 작품 중 에서도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 오산리를 떠올리며 그린 ‘flow bowl’은 선사인(先史人)들이 빚은 토기가 시공간을 초월해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되면서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평론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작가의 작품은 고요함과 풍성함이라는 다소 모순된 이미지와 형상을 표현하기 어려운 회화에서 모두 비움이라는 원초적이고 단순한 미학으로 승화시키고 있으며, 현대 미술계에서는 복잡한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그의 작품세계가 많은 의미를 시사한다며 높게 평가하고 있다.

작가는 시대를 뛰어넘는 상상력을 자신의 작품세계에 담아내면서 현대미술의 선진국인 유럽과 미국 등에서 유명세를 탔고, 지난 2010년부터 해외무대에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당시 아트 파리에서는 VIP 오픈 1시간 만에 작품이 솔드아웃(Sold Out)한데 이어 비엔나와 바젤, 싱가폴 등 에서도 솔드아웃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지난 2018년에는 중국 상하이 현지 갤러리에서도 작품 10여점이 전부 판매되기도 했다.

이어 2019년 3월 홍콩 센트럴파크에서도 오픈 후 첫 작품으로 작가의 그림이 판매됐고, 같은 해 9월에는 영국 회사가 주최하는 홍콩 아시아 컨템퍼러리 아트페어에서 조명받는 아시아 대표 작가로 선정돼 홍보영상 메인 화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미국 아트 마이애미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해외 아트페어를 시작으로 미술계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하던 그는 54세인 2019년 젊은나이에 갑작기 세상을 떠났다. 많은 친구와 지인들은 국내외에서 떠오르던 미술계의 별이졌다며 그를 추모했다.

갤러리 제공
갤러리 제공

어둠에서 찰나의 빛을 구해 선사의 숨결을 담아내다.

한 미술평론가는 심연(深淵), 또는 우주공간처럼 끝이 없는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작가의 작품을 이렇게 표현했다. 작가의 작품에는 토기를 연상케 하는 질감의 ‘그릇’과 ‘책’이 많이 등장한다.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그의 작품을 계속 보고 있으면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의 작품 제목에 ‘플로우(Flow)’가 붙여진 것은 아마도 작가가 사물을 매개로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고자 했던 뜻이리라.라고 평했다.

갤러리 제공
갤러리 제공

홍익대 미술대학 일반대학원 회화과 졸업한 작가는 2007년부터 도자로 된 찻잔을 그린 ‘플로우-보울’(Flow-Bowl)과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제본한 고서적을 그린 ‘플로우-북’(Flow-Book)’ 시리즈를 통해 서양화의 기법으로 동양적인 정신을 담아낸다는 평을 받았다. 덕분에 2011년 스위스의 크콥 바젤과 2012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페어, 2013년 프랑스 그랑팔레의 아트파리페어 등에서 해외 미술품 애호가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갤러리 제공
갤러리 제공

결국 작가가 사물을 통해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사물과 공간의 접점. 영원과 찰나의 접점. 무한과 유한의 접점을 하나의 ‘순간’으로 발현하고자 한 것이다. 작품의 소재로 등장한 사발, 컵, 주전자 같은 사물은 동서양을 통틀어 두루 쓰이는 ‘공산품’이지만 작가에게는 개별의 존재다. 유화에 담긴 동양적 감성도 새롭게 다가온다.

갤러리 제공
갤러리 제공

작가의 “플로우 보울’과 ‘플로우-북’ 연작시리즈는 찻사발이나 빛바랜 고서의 물성을 전면에 배치하고 나머지 여백을 어둡게 처리해 특유의 깊은 공감감을 연출하고 있다. 작품 소재가 대부분 ‘그릇’인데 마치 거친 진흙에 신의 숨결을 불어 넣듯이 심혈을 기울여 캔버스에 밑칠을 한다. 수십차례의 손길을 거쳐 ‘공명’이라는 생명을 얻은 하나의 그릇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작가의 작품은 심연(深淵)의 고요 속에 잠들어 있던 생명을 깨우는 작업이기도 하다.

갤러리 제공
갤러리 제공

바탕색은 흑색(黑色)이다. 혼돈의 우주, 아직 생명이 탄생하기 이전의 어두운 공간을 뜻하는 듯하다. 우주 어딘가 칠흑같이 깊고 깊은 어둠의 공간, 미지의 공간처럼 보인다. 작가에게 여백은 텅 빈 하얀색이 아니다. 언제 생명을 잉태할지 모르는 어머니의 자궁같은, 언제 밝은 빛을 뿜어낼지 모르는 깊은 응달같은, 뒤엉킨 관계의 혼돈 그것이 여백인 것이다. 작가는 그 혼돈 속 어둠에서 하나의 생명을, 빛을, 숨결을 끌어내고 있다. 검은 바탕에 커다랗게 자리한 옛 그릇의 고요함과 동시에 신비로움을 전하는 작품이다.

작가는 자비를 들여서 해외에 본인의 작품을 알리고 싶다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들어가는 비용이 작가의 생활을 위협할 만큼 고된 여정이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새로운 것을 찾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았고, 끝없이 갈망했다. 흙속에서 꺼낸 오래된 그릇처럼 늘 온기가 느껴지던 이동수 작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섬과 같은 존재였다.

2019년 서울 한남동에 있는 갤러리 조은은 질박한 도자 그릇을 회화로 옮겼던 이동수 작가의 첫 회고전을 개최했다.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전경 / 전문기자 제공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전경 / 전문기자 제공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학포길 소재,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Osan-ri Prehistory Museum)은 작가 작업실 바로 앞에 있다. 이동수 작가는 생전(生前)에 “가끔 작업이 안 풀릴 때면 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 외관은 멀뚱하지만, 안은 여러 가지 아기자기하고 볼거리 있고 다양하게 신석기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어떤 날은 책을 들고 가 박물관 안에서 읽고, 쉬곤 했다.”

박물관 앞에는 쌍호(雙湖, Ssangho)와 움직이는 섬이 있는 문화재 보존지역습지다. “움직이는 섬은 호수를 이리저리 부유한다. 그리고 또한 흐른다. 내가 흐름(Flow)이라는 단어에 매료된 이유들이 여기에도 있다. 어느새 나는 이곳에 이미 한참 동화되어 있고, 또한 이곳에 내가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토기(土器). 지구에서 인간 삶이 시작되고 인간이 삶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문명적 도구이다. 신석기빗살무니 토기로 부터 조선의 찻사발까지. 무엇을 담기위해 만든 인간만의 도구. 작가는 “자연에서 얻은 흙으로 만들고 또 불로 구워 내고 바람으로 식히고 그리고 만든 이의 숨결까지 고스란히 담겨있는 토기그릇. 우리 그릇의 시원(始原)을 느낄 수 있는 이곳에서 나는 많은 영감들을 얻는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토기에 대한 감흥을 이렇게 전했다. “물끄러미 한참을 바라보면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인간 삶이 깊게 묻어있는 통시성(diachrony)을 느낀다. 시원으로부터 지금 여기 내가 서 있는 시간의 연속…. 토기들은 그 긴 시간을 몸으로 머금고 나에게 언어화 할 수 없는 어떤 철학적 감성들을 건드린다. 그곳엔 삶과 누군가 영혼의 살점들과 유구하게 이어온 인간 삶의 DNA가 묻어난다. 그래서 더 좋다!”

갤러리 제공
갤러리 제공

사물에 대한 정서적 공허를 유화로 풀어낸 ‘사물의 은유’前을 연다.

누군가에게는 흔히 사물이라고 불릴만한 사발, 주전자 등의 작품을 하나의 존재로 해석하는 작가는 사물이 지닌 본질과 더불어 사물에게서 느껴지는 ‘정서적 공허함’의 간극을 ‘은유’로 풀었다. 사물이 지닌 외형의 단편적인 모습을 지나, 사물의 존재와 그에 관계된 것들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이미지 이면에 감춰진 세계를 담기 위한 것이다.

갤러리 제공
갤러리 제공

공중에 뜬 책이 묵직하다. 밝지 않은 색감은 정적이지만 역동적인 느낌을 더한다. 작가는 이처럼 책과 도자기를 통해 관람객에게 시간과 공간의 틈을 제공한다.  

이동수 갤러리  / 갤러리 제공
이동수 갤러리  / 갤러리 제공

이동수 갤러리 탄생 과정은 이렇다.

이동수 작가는 지난 2019년 54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남편의 부재로 슬픔에 젖어 있던 부인 김주희 관장은 작가를 기억하기 위해 화실을 리모델링해서 <이동수 갤러리>를 만들었다. 심연(深淵) 또는 우주공간처럼 끝 없는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그의 작품을 직접 만나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이동수 작가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운영 하던 갤러리를 2023년 5월에 상시 오픈한 것이다.

<이동수 갤러리>는 작가의 미술에 대한 열정과 그의 수작을 지키기 위해 친구들이 ‘십시일반’ 뜻을 모아 결실을 이뤘다. 작가의 친구들은 작가의 부인이 <이동수 갤러리>를 기념관이자 카페로 운영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모두 한마음으로 나섰다. 작업실만 만들어 두고 주변 정리를 다 못하고 떠난 작가를 생각하며 친구들은 모금과 함께 중장비 등 재능기부 형태로 봉사에 나서 주차장과 정원 등 갤러리 주변을 말끔하게 정리했다.

이렇게 친구들의 도움으로 탄생한 <이동수 갤러리>는 부인이 운영하는 기념관이자 카페이다. 작가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 작가의 남아있는 작품을 지키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관과 카페의 결합을 선택한 것이다.

<이동수 갤러리>는 전체 90평 규모로 조성한 갤러리로 2동의 전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동선을 짰다. 이곳에는 작가의 그림 3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이동수 갤러리>를 운영하는 김주희 관장은 작가의 영원한 첫 번째 팬이자 부인이다. 누구보다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작가가 편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미술학원에서 일을 하며 가정의 재정을 도맡았다. 작가와 그의 작품을 사랑했다.

작가는 평소 그릇과 책을 주로 그렸다. 김주희 관장은 그는 “사물을 매개로 시간의 흐름을 설명하고자 했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고 나면 관객들은 작품의 주요 포인트는 사물이 아닌 배경에 있어서 작품을 계속 보고 있으면,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고 설명했다.

또, 작가는 그림 속 의미를 특정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관객들의 자유로운 생각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품의 해석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관객들과 소통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그의 노력 덕에 작가가 남긴 작품은 아직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갤러리에 있는 작품에는 설명이 없다.

김주희 관장은 <이동수 갤러리>는 이동수 작가 기념관이기도 하다. 주변 분들이 다른 작가의 그림을 전시할 생각이 없냐고 연락이 올 때마다 다 거절했었다”며 “이곳은 그를 추모하고, 기리는 공간으로 남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갤러리 내부 / 전문기자 제공
갤러리 내부 / 전문기자 제공

<이동수 갤러리>에는 작가가 살아있을 당시 그림 작업을 할 때 쓰던 물감과 팔레트가 놓여있다. 김주희 관장은 “남편이 작업실 부지를 찾다 오산리 선사유적박물관을 마주하고 있는 이곳을 우연히 매입했지만, 작품의 주요 모티브로 ‘그릇(Bowl)’을 사용한 작가와의 운명적 만남인 것 같다”고 설명한다. 그의 작품에서 아주 먼 옛날, 태곳적 흔적이 느껴지는 것도 어쩌면 작가의 ‘운명’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라고.......

갤러리 내부 / 전문기자 제공
갤러리 내부 / 전문기자 제공

이동수 갤러리는 원래 故 이동수 작가의 화실이였다.

오랫동안 꿈꾸어 온 공간이 만들어졌다, 작가는 2016년 9월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지척에 작업실을 완공하여 이사했다. “무리를 해서라도 넓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고 여러 좋은 분들의 도움으로 그럭저럭 완공 되었다. 이곳으로 옮겨 온지 1년 채 못 되지만 어느새 10년이 다 된 것처럼 익숙하다. 아마 고향이라서 그런 듯하다”라고 했다고 한다. 

작가는 1998년 홍익대대학원을 졸업하고 작업 공간 없이 1년 정도 지나니 도저히 서울에서는 살기가 힘들어졌었고 여러 경제적 이유로 모든 것을 접고 속초로 이사를 했다. “그때는 그림은 이제 포기해야 하는 거구나. 다시는 붓을 들 수나 있을까하며 괴로웠다”고 한다.

속초에 와서 그래도 어찌 어찌 붓을 놓질 못했고 조금씩 이어가며 희망을 가졌는데 2005년 속초에 조그만 작업실을 마련해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 했다고 한다. 이후 몇 번 이사하면서 언젠가 양양 고향에 나의 공간을 만들 꿈을 꾸었었는데 2016년 비로소 마련하게 된 것이다..

“창고처럼 지어졌지만, 나는 어느 작업실이 부럽지 않다. 내가 마음껏 작업할 수 있는 참으로 오랫동안 꿈꾸어 온 공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완공 후 이사를 하고 작업을 시작할 때 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 자리, 공간도 영원히 내 것은 아니구나. 죽기 전까지 작업공간을 빌려 쓰다 가는 거구나. 그럼 결국 공간이 아니라 작업이 중요하구나!”라고 했던 작가를 회상하며 김주희관장은 오랜 생각에 잠겼다.

갤러리 내부 / 전문기자 제공
갤러리 내부 / 전문기자 제공

나가기 

이번 이동수 갤러리 탐방을 통하여 많은 것을 보고 느꼈고 배웠다. 문화예술분야의 어려움을 다시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에 소재한 <이동수 갤러리>는 도시와는 동떨어진 외딴 곳에 있는 섬처럼 한적하고 외롭기까지 한다. 평소에는 찾은 사람이 많이 없을 듯 하다. 갤러리와 겸하여 카페를 운영하고 있으나 현상 유지하기에도 버거워 보인다. 갤러리 한쪽 구석에 물감과 팔레트 등 화구와 같이 작가가 그리다 만 작품 한점이 아직도 故 이동수 작가를 기다고 있다. 

동해안 최고의 휴양시설인 쏠비치, 동아시아 최고(最高) 선사유적지인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이 지척에 위치해 연계 활성화가 필요해 보이며, 양양군의 문화예술 관광 활성화를 견인할 수 있는 거점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곳곳에 도로표지판과 매끄러운 동선을 위한 이정표 설치 등 지역사회의 끝없는 관심과 양양군 등 관련 기관의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이 절실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자주 찾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빠른시일내 자리매김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끝으로 2016년 이동수 작가가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에 화실을 마련하고 한 이야기가 아련하게 반추된다.

“아 이 자리, 공간도 영원히 내 것은 아니구나. 죽기 전까지 작업공간을 빌려 쓰다 가는 거구나.”

생전의 이동수 작가 / 갤러리 제공
생전의 이동수 작가 / 갤러리 제공

이동수 작가 이력 소개

·홍익대학교 회화과 및 동 대학원 졸업
·강원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 재학 중 사망
·Metaphor of things(인사아트센터) 등 개인전 10회
한불수교 130년 기념전 (2016. 낭시, 프랑스)
·뉴페이스 페인팅전(2007. 세종문화회관)
미술대제전 – 동경전(2003. 동경도미술관, 일본)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선(1997, 1999)
·MBC미술대전 특선(1999)
·아트 마이애미(2017), 아트 파리(2017, 2015, 2013), 아트 뉴욕(2016) 등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부경약품, Kwai Fung Hin 갤러리(홍콩) 등 작품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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