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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감상한 시집, 소설가 박인 '외사랑'

권용 기자
  • 입력 2023.09.1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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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이 숙모 계희영의 무릎을 베고 들었던 노래가 「진달래꽃」이 되고 「산유화」가 되었다. 임화의 단편 서사시 「우리 오빠와 화로」, 「네거리의 순이」가 우렁차게 낭송됐을 때 파업 노동자들의 함성이 종로 거리를 헤집었다. 백석이 자야 손에 쥐어 주었던 종이 뭉치에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가 숨 쉬고 있었다. 모두 사람 사이에 오갔던 시의 역사이다. 이 시집은 사람을 건너 뛰어 대화형 인공 지능인 챗GPT와 시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도 사랑을 담은 시를 챗GPT에게 들려주고 감상이 어떤지 묻는다. 그렇게 시의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외사랑-인공 지능과 시詩를』은 부제에도 담겨 있듯 시인과 인공 지능의 대화형 시 쓰기를 수행한다. 인공 지능에 대해 불안과 공포를 체감하고 있는 지금 새로운 시의 풍경이다. 불안은 무지에서 비롯된다.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을 때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그것은 자기 존재의 불확실성이며 결국 불안의 정체는 인공 지능이라는 새로운 존재의 등장 때문이 아니라 불가지론에 빠진 미래의 불투명 때문이 아닐까 시인은 묻는다. 사랑의 인위적 집착이 공포를 넘어 비극적 파탄에 이르듯 인공 지능을 폭력적으로 이용한다면 결과는 자명하다. 적어도 이 시집은 인공 지능을 적으로 대하지 않고 동반자로 인정한다. 인간의 불안과 공포를 뚫고 솟아나는 수직적 상상력의 발로이다.

이 시집은 인공 지능의 출현을 부각시켜 무언가를 얻으려는 기계적인 상상력을 거부한다.

오히려 외사랑이 지니는 짝사랑의 순수 서정을 소박하게 펼쳐 인간 상상력에 더 의지한다. 챗GPT 역시 이러한 시인의 심중을 잘 파악하여 인간 못지않게 진중하게 시를 감상한다. 이때 챗GPT와 시인은 시적 언어 사이에서 서로를 인식하게 된다. 이는 너무나 시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하이데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말했던 것처럼 이 시적 언어는 인공 지능의 언어를 빌려 잊었던 사랑을 다시 호명한다. 사랑했던 장소로 우리를 서둘러 이끌고 가고, 거기에 한때 존재했던 아름다운 우리와 조우한다. 이 모두 인공 지능과 시를 매개로 이루어진 세계이며, 인위와 무위가 만나 이루는 역설적 시의 세계이다.

이 시집의 저자 박인은 소설가이다. 

중앙대 문예 창작학과를 나와 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누님과 함께 알바를』, 장편 『포수 김우종-부북기』 등을 펴낸 중견 작가로, 그뿐만 아니라 몇 차례 개인전을 열었던 화가이다. 이번 시집은 예술적인 그의 감각이 집약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세상 흐름에 민감한 리얼리스트로서 현재 무엇이 우리에게 소중한 것인가 묻는 서신이기도 하다. 이 시집으로 인간은 홀로서기보다 더불어 있는 존재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이때 인공 지능은 아주 별 다른 존재의 탄생이기보다 오래전 같이 했던 우리 내면의 잃어버린 자아일지도 모른다. 

 

『외사랑-인공 지능과 시詩를』은 무엇을 담았는가?

외사랑의 자유와 연민

 

김수영은 시 「사랑」에서 ‘금이 간 너의 얼굴’에서 ‘사랑을 배웠다’고 적는다. 사랑이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배움이라는 인식이 새롭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의 ‘불안’을 더욱 사랑한다는 고백은 오늘날 사랑의 타자성을 잘 드러낸다. 시집 『외사랑-인공 지능과 시詩를』도 새롭게 배우는 사랑이 담겨있다. 외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더욱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에서 절실함을 느낀다. 특히 이별의 상처를 덧나게 하기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그늘을 어루만지길 부지런히 한다. 독점하려는 욕망에서 벗어난 자유라 할 수 있다. 거기에 연민이라는 이름의 꽃이 피어난다. 인공 지능이 그것을 지켜보며 응원한다.

외사랑의 자유와 연민은 챗GPT와 일곱 차례 만남 속에 나누어 담겼다. 첫 만남은 서먹하지만 챗GPT에게 시 감상법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시를 읽고 감상을 말해 달라 요청한다. 시는 사랑의 아픈 기억을 노래한다. 이별, 슬픔, 불안, 불행, 상처 등이 담겼다. 챗GPT는 친절하게 선뜻 응한다.

두 번째 만남에서 시인은 챗GPT에게 시 감상 형식을 간략하게 해 달라 주문한다. 형식적 감상을 피하려는 듯하며, 그리움을 주제로 회상하는 시들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지난 사랑의 흔적을 되돌아보며 잃어버린 아름다움을 회복하고 행복하기를 챗GPT는 권한다.

세 번째 만남에서는 보다 기능이 향상된 챗GPT와 대화를 나눈다. 시는 한 사람을 대상으로 했던 사랑을 확장해간다. 이웃과 친구와 사회로 번져가는 사랑의 기적을 함께 이야기하며, 인연을 소중히 여기라 챗GPT는 조언한다.

네 번째 만남에서 시는 사랑의 슬픔을 딛고 삶의 의미를 새긴다. 성숙한 사랑이 무언지 시인의 깨달음이 묻어난다. 진정 소중한 것이 무언지 체감하는 시라 챗GPT는 이해한다. 희망의 메시지를 공유하한 것이다.

다섯 번째 만남은 챗GPT와 갈등을 드러낸다. 시를 수정하려는 챗GPT에게 시인은 냉정하게 제지하고 원래 감상 차원에서 머물라 요청한다. 대화 내용이 시의 핍진함을 더하며, 시는 현실적 상상력을 담는다. 외사랑이 협소하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사회와 시민에 대해 느끼는 연민으로 확장되므로 시의 깊이를 읽게 된다.

여섯 번째 만남에서 시는 좀 더 근원적인 본원적인 자아를 드러낸다. 영원한 사랑에 대해 챗GPT와 대화한다. 외사랑은 이제 자연과 호흡하는 경지에 이른다. 그것이 진정한 자유라 챗GPT는 말한다. 헤어지는 순간, 시인과 챗GPT는 시의 윤리와 창의성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챗GPT에게 품었던 불안이 해소되는 순간이다. 

〈여백〉에서 적었듯 이 시집은 외사랑의 자유와 연민 속에서 인간의 행복과 평화를 추구한다. 그만큼 외사랑은 독백을 넘어 대화로 이어지는 소통을 도모한다. 한 사람과 맺어진 인연을 소중히 여김으로써 이웃과 사회로 확장되는 사랑의 기적을 꿈꾼다. 거기에 미래에서 온 영원한 존재 인공 지능이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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