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혼을 연기하는 것

이진성
  • 입력 2023.09.05 02:4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23.09.05.01:47.

이혼을 연기하는 것. 또는 이혼한 뒤에 살아가는 삶을 연기하는 것. 나라는 사람은 멜로나 로맨스 장르의 역할이 잘 들어오지 않는 편이다. 비슷한 인물을 연기하게 되었는데 이혼한 뒤에 전 부인을 괴롭히는 역할이다. 대본을 연신 읽으며 인물의 심정이 어떨지 계속 상상한다.

거슬러 올라가 본다. 이혼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머리로만 아는 느낌. 하기사 결혼 생활도 안 해본 내가 이혼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얼마나 가늠하겠어. 쉬운 작업은 아니다. 결혼도 결혼 준비도 연애도 깊게 생각해 본 적 없으니 말이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맛이 있다. 그러나 이미 이혼한 전 부인을 애타게도 미워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갈라선 마당에 남자가 있는지 뭐가 그렇게 궁금해서 집착하고 상대방을 아프게 하는 걸까. 그 동기가 대체 얼마나 강하길래. 이렇게 까지 행동을 하는 걸까.

거슬러 올라가며 장면을 그려본다. 집안에 함께 있는 부부와 아이. 울고 웃던 날을 기억해 낸다. 결혼하던 날로 가본다. 둘은 싸웠을까? 그렇게 싸울 거면 왜 결혼을 한 걸까. 싸울 줄은 몰랐을까? 몰랐겠지. 그걸 알면 결혼을 안 했을 테니까. 싸우려고 사귀는 사람이 어딨겠어. 좋았으니까 사귀었을 거고 사랑했으니 결혼을 했겠지. 그래 행복했던 날도 있었네. 처음엔 정말 좋아했었네. 서로 웃고 아껴주려 하던 때도 있었네. 같이 걸으며 밤공기가 좋네 하며 상대방을 기쁘게 해 주려던 순간도 있었겠지. 결과를 안 좋게 하려는 사람은 없으니까.

슬픔을 참는 연기를 할 땐 충분히 슬퍼해보고, 슬픔이란 감정은 행복함을 먼저 생각하라고 수업하면서, 정작 이혼은 너무 일차원적으로 생각했나 보다. 좋아해서 괴롭혔구나. 내 기준의 사랑이 누군가에게 괴로움인 줄 모르고 좋아했구나.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