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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장관이 쏘아올린 가짜인생 백선엽 교통부장관

이원환 전문 기자
  • 입력 2023.08.31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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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설 예비역 육군 준장

 

8월 25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육군사관학교가 홍범도 독립투사 등 독립전쟁 영웅 5인의 흉상 철거를 추진하는 것]과 관련,

 

"북한을 대상으로 전쟁 억제를 하고 전시에 이기기 위해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곳에서 공산주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느냐는 문제가 제기됐다"고 밝힌지 1주일이 되지 않았다.

 

논란은 홍범도 독립투사의 흉상만 제거하고 백선엽 장군의 흉상을 세운다는 논란으로 번져갔다.

 

한때는 독립군을 잡아 죽이던 일제의 만주특설대 소속 백선엽이 광복후 이승만과 미국에 잘 보여 장군이 되고, 낙동강 전선에서 전과를 올렸다는 명분으로 현충원에 잠들고 잊혀질 즈음

[ 백선엽은 6.25 전쟁 당시 제일 먼저 도망친 사단장이었고, 그가 공을 세웠다는 낙동강 다부동 전투는 백선엽의 역할이 과대 포장되었다.] 라는 주장이 나오고, 백선엽의 시신을 현충원에서 끌어내야 한다는 여론이 나오도록 이종섭 국방부장관이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 결과가 되었다.

 

육군사관학교에서 홍범도 독립투사의 흉상을 제거하고 독립군 잡던 일제 만주특설대 출신 백선엽 장군 흉상을 세우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보도되자 8월 30일 예비역 육군준장 출신 한설 (육사 40기. 1980년 입학)이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이 큰 반향을 얻고 있다.

 

한설 전 육군준장은 2020년 7월 백선엽이 나이 100세로 죽자 자신이 컬럼을 써 오던 경향신문에 ‘백선엽의 육군장 (육군 명의 장례식) 을 취소하라’는 제목의 칼럼 초안을 보냈으나 경향신문이 반대하여 결국 싣지 못 했다. 한설 전 육군준장은 이후부터 경향신문에 글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한설 전 육군 준장이 2023년 8월 30일 블로그에 올린 글 일부를 옮긴다. 독자의 편의를 위해 글의 순서를 바꾼다.

 

원문은 [한설의 안보칼럼 [ 23-8-30 한국전쟁을 알기나 하고서 백선엽 운운하는가? https://muzika37.tistory.com/363] 에 있다.

 

백선엽은 한국전쟁 초기 제1사단의 붕괴에 직접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사단장이었다.

 

부대를 버려두고 농부 옷으로 갈아입고 사라졌다 3일만에 나타난 사람이다.

 

한국전쟁 초기 단계에서 부대가 철수하고 무너지는 상황에서 자기 부대를 버리고 혼자 도망친 사단장은 백선엽 밖에 없었다.

 

(백선엽은) 다부동 전투로 낙동강 방어선을 지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원래 다부동 전투는 실패한 전투다.

 

백선엽의 제1사단이 방어를 잘못해서 북한군이 낙동강 전선 종심깊게 들어와서 위기가 발생했다. 결국 그 해결은 미군이 했다. 그런데 실패한 전투가 한국을 위기에서 구한 전투로 탈바꿈을 했다.

 

한국 전쟁에 대해 백선엽이 분탕질 한 것을 지우고 나름대로 다시 개념을 정리하는데 퇴직이후 약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글쓴이 한설 전 육군 준장이) 초급장교 당시 “백선엽이 죽어야 한국전쟁을 다시 쓸 수 있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이제 백선엽이 죽었는데 한국전쟁을 다시쓰기도 어려운 것 같다.

 

그런 백선엽이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승만의 친일파 비호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니고 있다.

 

이승만은 한국전쟁 당시 정말로 전쟁을 잘하고 나라를 지켰던 진짜 장군들을 모두 숙청했다.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국전쟁 이후 왜 군출신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을까를 생각해 볼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나면 예외 없이 군출신이 정치지도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남북전쟁이후의 그랜드, 제2차대전이후의 아이젠하워, 프랑스의 드골 등등이다.

 

이승만은 한국전쟁을 하면서도 대중의 인기를 끌 수 있는 사람들을 싸그리 숙청했다. 김홍일, 김석원, 김종오, 이성가 등의 장군은 모두 이름도 없이 사라졌다. 이승만은 전쟁 중에도 진짜 전쟁을 잘했던 명장을 모두 퇴역시키고 일본군, 그중에서도 만주군 출신을 앉혔다. 특히 인천상륙작전 이후에는 만주군과 일본군 장교출신으로 군수뇌부를 메꾸었다.

 

백선엽은 일본에 충성했고 미국인 고문관에게 충성했던 종자에 불과했다. 그는 전쟁사를 왜곡했다.

 

춘천 전투에서 북한군 자주포를 맨손으로 파괴했다고 역사를 왜곡한 사람도 백선엽이다. 왜곡한 역사가 정사로 둔갑했다.

 

백선엽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나서 한참 이후에 전쟁영웅이 되었다.

 

한국전쟁 당시에 백선엽은 조소의 대상이었지 영웅이 아니었다. 그는 군단장과 군사령관을 하면서 미군 고문관을 짚차의 상석에 앉히고 자신은 뒷자리에 앉았던 사람이다. ]

 

2. 정부주도로 치러진 백선엽 장군 3주기 추모식

 

8월 25일 이종섭 국방부장관의 “전혀 역사공부가 되지 않은” 답변이 나오기 50일 전에

 

백선엽 장군 3주기 추모식이 2023년 7월 5일 경북 칠곡의 다부동 전적기념관 앞마당에서 열렸다.

 

1, 2기 추모식은 민간단체인 한미동맹재단이 주관했지만 올해에는 육군본부가 준비를 맡아 정부의 공식 행사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번 추모식에는 이종섭 국방부 장관, 박민식 보훈부 장관, 이철우 경북지사 등 관계 인사와 함께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윤재옥 원내대표, (중략) 행사 주최측인 박정환 육군참모총장과 폴 러캐머라 한미연합사령관, 역대 육군참모총장 (중략) 등 1,000여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한미동맹재단 홈페이지

https://kusaf.org/?tpf=board/view&board_code=4&code=1253 )

 

2023년 행사 1년 전에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고(故) 백선엽 장군 서거 2주기(7월10일)를 이틀 앞둔 2022년 7월 8일 "장군님은 피로 맺어진 한미동맹의 정신적 뿌리이자 상징과도 같은 분"이라며 백 장군을 추모했다.( 이종섭 국방장관 "백선엽 장군, 한미동맹 정신적 뿌리·상징" 뉴스1 2022년7월8일 보도)

 

 

3. “경향신문 고정필진 백선엽 비판 칼럼 실리지 않은 이유는”

 

“백(선엽) 장군이 예편 뒤 자청해 30여년 동안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자신과 채병덕 총참모장 등 일본군 출신 군인들 중심으로 한국전쟁사를 미화했다” (중략)

 

“낙동강 전선은 월턴 워커 중장이 한국군 5개 사단과 미군 3개 사단 등 8개 사단을 지휘해 워커 라인으로 불렸다. 백선엽의 제1사단은 8개 사단 가운데 하나였는데 공적이 부풀려졌다”

 

“백선엽은 다음날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임진강 남쪽에서 후퇴하던 사단에 합류했다. 그도 사단장으로서 당연히 이 파티에 참석했을 것”이라며 “부대를 비운 이유로 든 교육은 의무가 아니라 출석을 임의로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전쟁이 벌어지는 순간, 술판을 벌이고 있어 남침에 곧바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개전 과정에서 북한군의 전차를 몸으로 막고 산화한 것으로 알려진 ‘제1사단 육탄 10용사’는 뒷날 10용사 가운데 몇몇이 북한방송에 출연해 ‘조작’임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 사건 외에 제6사단의 ‘심일 소령과 육탄 5용사’도 조작 무용담이죠. 모두 일제 강점기에 조작된 ‘일본군 육탄 3용사’를 베끼기 해 지휘관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수단이었어요.”

 

“사단장과 군단장으로 근무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공로가 다른 장군들보다 뛰어났다고 하기는 어렵다”며 “그가 지휘했던 제1사단은 전쟁초기에 무력하게 괴멸 당했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낙동강 방어선의 다부동 전투를 대표적 전공이라고 하지만 당시의 전황에서 볼 때 특별했다고 하기 어렵다”며 “지금은 많이들 잊어버렸지만 안강·기계와 영천 전투가 더 치열했고 심각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일반의 뇌리에 다부동 전투가 깊게 각인된 것은 그가 국방부전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을 평생 맡으면서 전사기록에 관여했기 때문인 듯하다”며 “백선엽 혼자서 한국전쟁의 공을 독차지하고 가로챘다는 참전군인들의 볼멘소리는 그런 연유”라고 비판했다.

 

한 교수는 “전사를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전공이라는 것이 그리 대단치 않은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며

 

“백선엽이 죽어야 제대로 된 한국전쟁 전사가 쓰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군인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던 것도 다 이유가 있다”

 

[ “경향신문 고정필진 백선엽 비판 칼럼 실리지 않은 이유는” 미디어오늘 2020년 7월 15일 ]

이승만-백선엽-박정희의 감출 수 없는 과거[정운현의 역사 에세이⑧ 오마이뉴스 2011.06.30 기사에서 사진 캡쳐 편집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86065
이승만-백선엽-박정희의 감출 수 없는 과거[정운현의 역사 에세이⑧ 오마이뉴스 2011.06.30 기사에서 사진 캡쳐 편집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86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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