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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세금이 아깝다.” ‘국사편찬위원회 성명미상 기록자’는 부일=친일=매국 역사학자임이 분명하다. 차이나 대륙에서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를 지워라. 거대한 음모 (14) 부일사학 국사편찬위원회 (84)

이원환 전문 기자
  • 입력 2023.08.11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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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漢書(한서) 한무제본기]에 의하면 기원전 128년에 [동이 예군 남여東夷 薉君 南閭]가 28만호 (1호가 6명이면 168만명, 엄청난 인구다!)를 데리고 차이나 漢(한)나라에 항복하여 스스로 창해군 소속이 되었다.

 

[삼국지 韓(한)조] [위략]에 의하면 조선의 승상朝鮮相 이 예(濊=谿)의 최고위 관리 경卿을 통하여歷谿卿 우거왕에게 간언을 했다. 이 때 예(濊=谿)의 왕이 예군 남여 薉君 南閭와 동일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조선의 승상朝鮮相 은 2천여호를 데리고 [동쪽의 辰國]註 164으로 갔다. 동쪽의 辰國 은 ‘코리아 韓(한)’ 나라이다.

 

후한서 韓(한)조에 의하면, [원래 조선]의 왕 ‘준’이 ‘위만’에게 [원래 조선]을 빼앗기고, 마한으로 들어가 마한의 왕이 되었는데, 마한이 ‘코리아 韓(한)’이고 옛날 ‘코리아 辰(진)’나라이다.

 

(위)만이 ‘원래 조선’을 찬탈하고 난 뒤, ‘원래 조선’ 연방의 나라들이 ‘원래 조선’의 왕 ‘준’이 왕이 되어 있는 ‘코리아 韓(한)’으로 가기 위해 서로 협의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당시 차이나 漢(한) 나라는 차이나 역사책 사기, 한서, 후한서 등의 과장된 표현에도 불구하고 황하 서남쪽 지금의 서안시 부근에 조그마한 영토를 가진 나라였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2.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중국정사조선전 > 삼국지(三國志) > 위서(魏書) 30 동이전(東夷傳) > 한(韓) > [韓은] 漢나라 때에는 樂浪郡에 소속되어 ] 문단의 註 164 는 “부일= 친일= 매국 역사학”의 정수를 보여 준다. 기록자는 누구일까?

 

1) 중국정사조선전 > 삼국지(三國志) > 위서(魏書) 30 동이전(東夷傳) > 한(韓) > [韓은] 漢나라 때에는 樂浪郡에 소속되어

 

漢時屬樂浪郡, 四時朝謁.

[韓은] 漢나라 때에는 樂浪郡에 소속되어 철마다 朝謁하였다.

 

2) 魏略曰: 初, 右渠未破時, 朝鮮相歷谿卿以諫右渠不用, 東之辰國,

魏略: 일찍이 右渠가 격파되기 전에, 朝鮮相 歷谿卿이 右渠에게 諫하였으나

 

[ 이원환 註(주) : 조선의 승상이 예(濊=谿)의 최고위 관리 경卿을 통하여 우거(왕)에게 간하였으나 ]

 

[그의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동쪽의 辰國註 164으로 갔다.

 

3) 時 民 隨出居者 二千餘戶,註 165 亦 與朝鮮 貢校勘 126蕃 不相往來.

그 때 백성으로서 그를 따라가 그 곳에 산 사람이 2천여戶註 165나 되었는데, 그들도 역시 朝鮮에 조공하는 藩國과는 서로 왕래하지 않았다.

 

[ 이원환 註(주) ‘조선’은 물론이고 ‘조선’의 제후국인 번국藩國과도 교섭하지 않았다. 辰國 은 조선의 제후국·번국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4) 註 164 辰國 : 여기 『魏略』의 ‘東之辰國’은 歷谿卿이 그의 백성과 함께 간 곳으로 되어 있으므로 여러 나라 가운데 하나인 辰國으로 해석되어진다. 여기에서의 辰國도 三韓 全體의 나라로서의 辰國은 아니다.

 

註 164기록자는 무엇을 근거로 “여기에서의 辰國도 三韓 全體의 나라로서의 辰國은 아니다.” 라고 기록했는가? 아무런 근거가 없다. 기록자는 누구인가, 실명을 밝혀야 한다. 도리어 [ 후한서 韓(한)전을 보면 여기에서의 辰國은 三韓 全體의 나라로서의 辰國임이 명확하다!]

 

5) 註 164 계속

<참조>『三國志』 韓傳 註 6 “古之辰國也”

[ 이원환 註(주) 註 6 은 註 155를 잘못 쓴 것이다. 이런 것도 틀리게 기록하는 ‘국사편찬위원회’는 참으로 믿을 수가 없다.

 

중국정사조선전 > 三國志 > 魏書 30 東夷傳 > 韓 > 韓在帶方之南, 東西以海爲限, 南與倭接,

 

韓 在 帶方之南, 東西以海 爲限, 南與倭接, 方可四千里.

有三種, 一曰 馬韓, 二曰 辰韓, 三曰 弁韓. 辰韓者, 古之辰國也. 註 155 辰韓은 옛 辰國이다.

 

6) 『三國志』 韓傳 은 진한이 옛날 코리아 辰(진) 이다 辰韓者, 古之辰國也. 註 155고 기록하고 있으나 ‘후한서’는 마한·진한·변한 모두 옛날 코리아 辰(진) 이라皆 古之辰國註 118也.고 기록하고 있다.

 

‘후한서’는 [코리아 韓(한) = 삼한 =馬韓(마한)] 은 원래 [코리아 천자 辰(진)나라] 이고 삼한의 선조는 모두 마한 종족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馬韓在西, 辰韓在東, 弁辰在辰韓之南, (중략) 皆 古之 辰國 註 118 也. 馬韓最大, (중략) 其 諸國 王先 皆是 馬韓種人焉.

 

7) 註 118

辰國 : 『後漢書』에는 모두 三韓의 옛땅이 辰國으로 表現되어 있어『三國志』의 記事와 큰 대조를 보인다.『三國志』에서는 辰韓의 前身으로 辰國이 나타난다.

 

[ 이원환 註(주) : 이 부분을 제외하고 註 118 과 註 155는 글자 한자 틀리지 않는다. 복사하여 붙여 넣기 한 것이다.]

 

8) <참조>

『三國志』韓傳 註 6) 古之辰國也

 

『史記』「朝鮮列傳」에는 ‘眞番旁辰國(혹은 衆國)’이라고 하여 辰國이 보이지만, 版本에 따라, 그리고 學者들의 의견에 따라 辰國, 衆國說로 갈라지고 있다.

 

[ 이원환 註(주) 아래 부록1 참조]

 

9) 또 하나의 辰國기사로는 『三國志』「東夷傳」韓條 所引의 『魏略』에 ‘初 古渠未破時 朝鮮相歷谿卿以諫 右渠不用 東之辰國 時民隨出居者 二千餘戶’라는 기록이 있다.

 

이로 미루어 본다면 衛滿朝鮮 당시에 辰國이 南쪽에 存在하였음은 틀림이 없다.

 

[이원환 註(주) : 문장에 [東之辰國] 이 있다. 南쪽이 아니라 東(동)쪽에 존재하는데 왜 남쪽이라고 기록했나. 이는 역사왜곡 날조의 완벽한 증거이다.]

 

10) 辰國을 기술하고 있는 『三國志』「東夷傳」韓條의 기록과 『後漢書』「東夷列傳」에 수록된 辰國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三國志』에서는 辰韓의 古之辰國으로 파악되는 반면에,

 

『後漢書』에서는 三韓이전의 全地域을 다스린 存在로 辰國을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古代의 政治發展 段階로 보아도 辰韓의 古之辰國으로 보는 『三國志』의 기술이 올바른 견해라고 생각된다.

 

[이원환 註(주) 古代의 政治發展 段階를 누가 제멋대로 정의하였나? “ 古代의 政治發展 段階로 보아도 辰韓의 古之辰國으로 보는 『三國志』의 기술이 올바른 견해라고 생각” 하는 것은 아무런 논리적 과학적 근거가 없다. 더구나 후한서에서 논리적으로 서술하면서 삼한의 古之辰國 이라고 명확히 기술한 것을 보면 ‘국사편찬위원회 성명미상 기록자’는 부일=친일= 매국 사학자임이 분명하다.

 

11) 한가지 공통적인 사실은 辰國은 과거적인 存在라는 점이다.

 

이것은 辰王이 존재한 당시에는 이미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실체이기 때문에 辰國과 辰王은 쉽게 결부될 수 없는 사실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辰國의 領域을 一部에서 생각하듯이 韓半島 남부 전체로 인식하는 것은 큰 오류를 범하게 된다.

 

北의 衛滿朝鮮과 南의 辰國만이 있는 듯이 이해하거나 그렇게 파악하는 것은 잘못이다.

 

辰國은 어디까지나 여러 國가운데 하나이며 著名한 실체일 뿐이다.

 

지난 날 어떤 學者는 辰國의 存在를 의심하거나 심지어 假名인듯이 간주하였지만, 이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이원환 註(주). 이것은 반박할 가치 조차 없다.

 

“ 한가지 공통적인 사실은 辰國은 과거적인 存在라는 점이다. 이것은 辰王이 존재한 당시에는 이미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실체이기 때문에 辰國과 辰王은 쉽게 결부될 수 없는 사실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

 

이 문장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辰王이 존재한 당시에는 이미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실체”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왜 “辰國과 辰王은 쉽게 결부될 수 없는 사실”인가? 코리아 辰(진)나라 辰國의 왕이 辰王 이다!

 

[ 北의 衛滿朝鮮과 南의 辰國만이 있는 듯이 이해하거나 그렇게 파악하는 것은 잘못이다. 辰國은 어디까지나 여러 國가운데 하나이며]에서

 

‘부일=친일= 매국 사학자’ 인 ‘국사편찬위원회 성명미상 기록자’ 는 “ 한반도 북쪽은 차이나 漢(한)나라의 사군이 설치된 식민지, 한반도 남부는 임나일본부가 설치된 일본의 식민지‘ 라는 궤변을 계속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 세금이 아깝다. ”

 

 

부록 1

○ 三國志註 001卷三十 魏書 三十 烏丸鮮卑東夷傳 第三十

東夷傳 校勘 001註 002

書稱 「東漸于海, 西被于流沙註 003」, 其九服之制,註 004 可得而言也. 然荒域之外, 重譯而至, 非足跡車軌所及, 未有知其國俗殊方者也. 自虞曁周, 西戎有白環之獻,註 005 東夷有肅愼之貢,註 006

 

註 006

東夷有肅愼之貢 : 肅愼은 中國 古文獻에 보이는 塞外民族名이다. B.C. 6~5世紀 以來 中國의 東北境外에 거주하는 民族名으로『國語』·『史記』·『山海經』등에 기록되어 있지만 그 실체는 분명치 않다. 楛矢와 石砮가 그 특산물로 유명하며 中國에 貢物로 바치곤 하였다.

 

『國語』「魯語」를 보면 옛날 周 武王이 殷나라를 정복하고 九夷에 길이 통하자 百蠻으로 하여금 각각 그 禮物을 貢納케 하였는데, 이 때에 肅愼이 楛矢·石砮를 貢納하여 왔다고 한다.

 

이와 같은 내용은『史記』「孔子世家」에도 나타나고 있어 肅愼이 일찍부터 중국과 교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先秦時代의 肅愼을 만주 동북부에 거주한 후대의 挹婁·肅愼 등과는 구별하여 朝鮮의 별칭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참조>

1.『史記』朝鮮列傳 註 3)

 

朝鮮

 

朝鮮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음의 여러 견해가 있어 왔다.

 

『史記集解』에 인용된 3세기경 魏의 張晏은

 

‘朝鮮에는 濕水·洌水·汕水 3개의 江이 있는데 이들이 합쳐 洌水가 되었으며 樂浪과 朝鮮이라는 명칭은 이 강들의 이름에서 따온것 같다’고 하였다.

 

또『山海經』의 註釋者인 4세기 초의 郭璞은

 

‘朝鮮은 遼東에 있던 樂浪과 동의어’라고 하였다.

 

『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동쪽 끝에 있어 해가 뜨는 지역이므로 朝鮮이라 불렀다’고 하였으며,

 

『東史綱目』에서는 ‘鮮卑의 동쪽에 있으므로 朝鮮이라 칭하였다’고 하였다.

 

申采浩와 鄭寅普는 朝鮮을 같은 음을 지닌 滿洲語의 珠申에서 온 것으로 해석하였다.

(申采浩,『朝鮮上古文化史』pp.351∼369; 鄭寅普,『朝鮮史硏究』pp.51~52)

 

『滿洲源流考』에는 원래 滿洲語로 ‘所屬’을 珠申이라고 하였는데 肅愼은 珠申이 轉音된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근거하여 ‘所屬’을 ‘管境’과 뜻이 통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珠申은 국호의 의미를 지녔을 것으로 인식하였고, 옛 문헌에 보이는 朝鮮과 肅愼은 동일한 뜻을 지닌 다른 호칭이었으므로 결국 朝鮮의 명칭은 珠申에서 유래하였을 것이라고 하였다.

 

梁柱東은 고대 朝鮮族은 태양숭배 신앙을 가지고 이동하면서 도처에 ‘밝’이나 ‘새’라는 지명을 남겼을 것으로 보고, 朝를 ‘밝’으로 鮮을 ‘새’로 해석하여 朝鮮을 ‘밝새’로 보았다. (『古歌硏究』pp.380~391)

 

李丙燾는『三國遺事』古朝鮮條에 나오는 ‘朝鮮’은 국가 이름이고 ‘阿斯達’은 그 首都라는 대목에 주목하여 이 단어들이 同意語일 것으로 보아, 朝鮮은 곧 고대조선의 단어 ‘아사달’의 中國式 모사라 하였다. (「檀君說話의 解釋과 阿斯達問題」 pp.27~43)

 

한편 리지린은 기본적으로 張晏의 설을 받아들였으나 약간의 이견을 보이고 있다.

그는 濕水·洌水·汕水 등의 명칭으로부터 肅愼·息愼·稷愼 등의 肅愼族 諸名稱이 배태되었다고 보면서, 朝鮮은 결국 위의 水名으로부터 온 것이지만 직접 온 것이 아니고, 肅愼이라는종족명칭을 통하여 온 것이라고 하였다. (『고조선연구』pp.11∼20)

부록2

 

이제 합리적인 해석이 가능해진다. 위만이 쿠데타를 일으켜 ‘원래 조선‘의 정권을 잡은 후,

 

조선의 최고위직 중 하나인 승상이 일족을 데리고 ‘코리아 辰(진) = 코리아 韓(한)’ 으로 간 것이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위만’ 일파와 대립관계에 있어서, 우거왕 등 ‘위만’ 가문에는 직접 말하지 않고, ‘조선’의 제후국·번국인 ‘예(濊=谿)’의 최고위 관리 경卿’을 통하여 안전 보장등을 교섭하다가 실패하자

 

‘원래 조선‘의 왕 ’준‘의 후손이 계속 왕을 하고 있는 ’코리아 辰(진) = 코리아 韓(한)‘으로 망명한 것이다. 이는 당연히 ’위만조선‘의 권력과 군사력에 타격을 준 것이며, 이를 기화로 차이나 漢(한) 이 ’위만조선‘을 공격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한무제 본기’에서 ‘예濊’의 왕 ‘예군 남여濊君 南閭’가 반란후 기원전 128년에 잠시 존재했던 창해군滄海郡 기록과 같은 사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서 권육漢書 卷六 무제기 제육武帝紀 第六] 元朔元年 기원전128년 秋 가을,(중략) 東夷 薉君 南閭等〔一〕口 二十八萬人 降,為 蒼海郡。〔一〕 服虔曰:「穢貊在辰韓之北,高句麗沃沮之南,東窮于大海。」晉灼曰:「薉,古穢字。」師古曰:「南閭者,薉君之名。」

 

‘삼국지 韓(한)조’에서 ‘조선상’이 ‘원래 조선’의 왕 ‘준’ 일족에게 귀의하도록 주선한 것으로 추정되는 ‘예濊’의 ‘경卿’은 歷 谿 卿

 

‘조선’의 승상이 한무제가 침공했을 때 처음에는 ‘조선’을 도우다가 나중에는 도리어 ‘우거’를 죽이고 항복한 ‘예 (니계)’의 승상 ‘삼’ 이거나 ‘삼’의 선조일 가능성이 높다.

 

‘사기 조선열전’에서 한무제가 임명한 ‘위만조선’의 5제후 중에서 니계상尼谿相 삼參 의 이름이 제일 먼저 나온다.

以故 遂定朝鮮, 爲四郡. 封參 爲 澅淸侯,註 040

 

‘니계상尼谿相 삼參’ 은 차이나 漢(한)나라에 제일 먼저 협조한 사람이다.

 

[ 元封 3년(B.C.108) 여름, 니계상尼谿相 삼參이 사람을 시켜 조선왕 右渠를 죽이고 항복하여 왔다.]

 

니계상尼谿相 은 ‘니계尼谿’의 승상이다. ‘니계尼谿’= ‘예(濊=谿)’ 이다.

 

‘니계상尼谿相 삼參’ 이 획청후 澅淸侯가 되었는데, ‘澅’의 읽기는 ‘획’과 ‘홰’이다. ‘사고’가 말하기를 [‘澅’획의 음은 ‘획’이다 혹은 음을 ‘호’와 ‘괘’의 반절로 ‘홰’로 읽는다. 師古曰, 澅音獲, 又 音胡卦反.]

 

국사편찬위원회 ‘국편위’는 획(홰)청후의 지역이 지금의 산동성인 ‘제齊’라고 설명한다.

 

註 040 澅淸侯 : 『史記集解』에는 지금의 山東省인 齊에 속한다고 하였고『史記索隱』에는 澅淸은 齊에 속한 縣名이라 하였다.

『漢書』「景武昭宣元成功臣表」를 보면 다음과 같다.

 

[補注] 先謙曰, 此縣名 澅淸, 而屬 齊郡. 澅, 詳 淄水 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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