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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전 200년 경 ‘위만’이 ‘원래 조선’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조선왕이 되고, ‘원래 조선왕 준’은 ‘코리아 韓(한)’ 지역으로 가 馬韓(마한)= 삼한 = 코리아辰(진) 나라의 왕이 되었다. ] 차이나 대륙에서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를 지워라. 거대한 음모 (13) 부일사학 국사편찬위원회 (83)

이원환 전문 기자
  • 입력 2023.08.1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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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후 440년 경 편찬된 후한서는 [기원전 200년 경 ‘위만’이 ‘원래 조선’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조선왕이 되고, ‘원래 조선왕 준’은 ‘코리아 韓(한)’ 지역으로 가 馬韓(마한)= 삼한 = 코리아辰(진) 나라의 왕이 되었다. ‘원래 조선왕 준’의 후손이 끊기어 원래 馬韓(마한) 종족 사람이 ‘코리아 韓(한)’의 왕이 되었다. 수도는 목지국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馬韓在西, 辰韓在東, 弁辰在辰韓之南, (중략) 皆 古之 辰國也.

 

약 3천년 전인 기원전 1,050년 경 殷(은)나라 왕족 ‘기자’가 ‘조선’으로 간 것으로 사마천 ‘사기’는 기록했다. ‘조선’은 그 이전부터 존재해 왔음이 증명된다.

 

기원전 100년 경 차이나 漢(한)나라가 ‘조선’을 침공하여 ‘조선’은 5 제후국으로 분열되었다. 차이나 漢(한)나라는 ‘조선’에 4개 군을 두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정작 ‘漢書(한서) 지리지’에는 낙랑군과 현도군만 있다. 현도군은 차이나 漢(한)나라와 고구려의 분쟁 지역으로, 낙랑군은 차이나 漢(한)나라와 코리아 韓(한)나라의 분쟁 지역으로 기록되어 있다.

 

자! 코리아辰(진)=馬韓(마한)=코리아 韓(한)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바뀌었는가? [조선=코리아辰(진)] 아닌가? 辰國(진국) 은 ‘天子(천자)의 나라’이며 ‘고향인 북극성인 나라’라는 의미이다.

 

1) 차이나 정사(정부가 발행한 역사책) 25사중 첫 번째가 사마천의 ‘사기’인데 기원전 100년경에 편찬되었다. ‘사기’에는 ‘조선열전’이 있으나 ‘조선열전’에는 ‘조선’의 시작, 기원은 없다. 차이나는 ‘조선’의 역사를 자세히 쓸 이유가 없다. 왜곡·날조할 정도만 기록하면 된다.

 

2) 유일하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사기 송미자세가’에 나오는 ‘기자’ 이야기다. “기원전 1,050년 경 은나라를 멸한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왕족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 그런데 ‘조선’(혹은 ‘기자’)는 주나라의 신하가 아니다. ” [봉기자어조선(於是武王乃封箕子於朝鮮) 이불신야(而不臣也)]

 

3) ‘조선’이 ‘주나라’의 신하 나라가 아닌데 어떻게 ‘은나라’ 왕족 ‘기자’를 ‘조선왕’에 임명할 수 있나? 이는 망한 ‘은나라’가 ‘조선’과 같은 핏줄 나라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주나라가 은나라 서울을 접수하고 은나라 마지막 주왕을 목을 베었으나 ( 목 베기 전에 은나라 주왕은 옥으로 된 옷을 입고 불에 떨어져 죽었다) 은나라를 따르는 동맹국가이든, 같은 형제국가 이든 (조선이 오래되었는지 은나라가 오래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조선’은 정복하지 못했음을 반증하고 있다.

 

4) ‘사기 조선열전’은 기원전 200년경 지금의 섬서성 (황하가 북남으로 흐르는 지역의 동쪽이 아니라 서쪽)에서 (위) 만이 (‘위만’은 후대에 붙인 이름이고 ‘사기 조선열전’에서는 한 글자 ‘만’이다. ‘滿(만)’ 부족도 있는 것으로 보아 소위 ‘위만조선’은 ‘만’족이 세운 ‘조선’일 수 있다.)들어와 ‘조선’의 왕이 되었다. ‘조선’에 원래 왕이 있었는지 등은 기록이 없다.

 

5) ‘사기 조선열전’ 나온지 200년이 지난 기원후 100년에 편찬된 ‘漢書(한서)’도 ‘사기’ 기록과 같이 [‘만’이 ‘조선’의 왕이 되었다.]고 기록했다. ‘조선’에 원래 왕이 있었는지 등은 기록이 없다.

 

6) ‘한서’가 나온지 약 180년, ‘사기’가 나온지 약 380년후인 기원후 285년경에 편찬된 삼국지(위·촉·오) 동이전 코리아 韓(한) 조에는 [ ‘위만’이 조선왕에게 빌붙어 ‘조선’의 서쪽 변방을 지키다가 쿠데타를 일으켜 조선왕이 되었고, ‘위만’에게 진 조선왕 준은 海(해) 지역에 있던 코리아 韓(한) 지역의 馬韓(마한)의 왕= 진왕辰王이 되었다.] 고 기록하고 있다. 삼한을 대표하는 이름은 천자(북극성) 진辰이다. [初, 朝鮮王 準 爲 衛滿 所破, 乃 將 其餘衆 數千人 走入 海, 攻 馬韓, 破之, 自立 爲 韓王. 準後 滅絶, 馬韓人 復 自立 爲 辰王.

 

7) ‘사기’가 나오고 약 540년 후, ‘삼국지’가 편찬되고 약 160년이 지난 기원후 440년 경에 만들어진 ‘후한서’는 ‘삼국지’보다 더 구체적으로 ‘조선왕 준’이 ‘위만’과 싸움에서 져서 ‘조선’을 빼앗기고, ‘마한’의 왕이 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8) ‘사기’, ‘한서’, ‘삼국지’, ‘후한서’ 공히 한문제에 의해 ‘위만’의 손자가 왕인 시절인 기원전108년 경에 ‘조선’이 차이나 漢(한) 나라에 의해 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9) ‘사기’에는 차이나 漢(한)4군의 이름이 없다. 망한 ‘조선’지역에 5명의 제후가 자리를 잡았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5제후 어디에도 ‘낙랑’이라는 지역이 기록되지 않았다.

 

10) ‘한서’에 ‘낙랑’이라는 지역이 처음 나오고 ‘한서 한무제 본기’와 ‘한서 조선전’에는 진번·임둔·낙랑·현도의 4군을 설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처음 漢(한)4군의 이름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서 지리지’에는 ‘낙랑군’, ‘현도군’만 있지, 정작 ‘진번군’, ‘임둔군’은 없다.

 

11) ‘삼국지’, ‘후한서’에도 낙랑군 과 현도군이 나오지 차이나 漢(한) 나라가 만든 진번군·임둔군은 기록에 나오지 않는다. 현도군은 항상 고구려와 같이 나오며, 낙랑군은 요동군과 같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차이나 漢(한)나라는 낙랑, 현도 지역을 지배하지 못하면서 이름만 낙랑태수, 현도태수를 기록할 뿐이었다. 낙랑태수와 낙랑에 거주하는 백성과의 전쟁기록이 많은 것이 이를 증명해 준다.

 

12) 차이나 왕조는 漢(한) 나라에서 ‘삼국지 조조’의 魏(위) 나라에서 계속 ‘조선’ 지우기를 했다. ‘후한서’와 ‘삼국지’는 위만에게 망한 조선왕 ‘준’이 마한의 왕이 되어, ‘위만’이 아닌 ‘조선’의 정통세력이(누구인지 모른다) 코리아 韓(한)으로 넘어갔음을 암시하고 있을 뿐이다.

 

13) ‘위만조선’의 최후는 ‘조선이 5 제후 나라로 분열된 것’이며, ‘위만’에게 뺏긴 ‘원래 조선’의 왕 ‘준’은 코리아 韓(한) 중 가장 오래 되었고 가장 큰 우두머리 나라 馬韓(마한)의 왕이 되었으나, ‘준’이 절손이 되고 (남자 자손이 없어서) ‘원래 마한’ 사람이 왕을 이어 받아 ‘원래 조선’의 정통은 ‘마한’으로 넘어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4) ‘후한서’는 [코리아 韓(한) = 삼한 =馬韓(마한)] 은 원래 [코리아 천자 辰(진)나라] 이고 삼한의 선조는 모두 마한 종족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馬韓在西, 辰韓在東, 弁辰在辰韓之南, (중략) 皆 古之 辰國也. 馬韓最大, (중략) 其 諸國 王先 皆是 馬韓種人焉.

 

15) 자! ‘馬韓(마한)’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리고 ‘馬韓(마한)’ 의 선조 국가 코리아辰(진)에 대한 기록은 없는가? ‘발해’가 ‘大辰國(대진국)’이다. 辰 은 ‘진’ 혹은 ‘신’ 으로 읽는다. 지금 쓰지 않는 [반치음(半齒音, 반잇소리) ㅿ] 까지 발음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천자’, ‘북극성’의 뜻이 있다는 것이다.

 

辰國(진국) 은 ‘천자의 나라’이며 ‘고향이 북극성인 나라’라는 의미이다.

 

부록 1

辰 별 진, 때 신. 부수 辰 (별진, 7획)

모양자 厂(기슭 엄) + 一(한 일) + (옷의변 의)

1. (별 진) : 별의 이름, 수성(水星). 별의 총칭(總稱).다섯째 지지(地支). 별진(-辰: 부수(部首)의 하나)

2. (때 신) : 때, 시각(時刻). 시대(時代), 기회(機會). 아침, 새벽. 날, 하루. 택일(擇日). 해, 달, 별의 총칭(總稱), 일월성(日月星). 북극성(北極星). 임금, 천자(天子). 택일하다(擇日--). 아름답고 착하다. 흔들리다

 

宿(잘 숙, 별자리 수, 고을 이름 척) 庚(별 경)

. 본자 . 고자 . 고자 . 동자 . 동자

상형문자

 

辰자는 ‘별’이나 ‘새벽’, ‘아침’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辰자의 기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부에서는 조개를 본뜬 것으로 보기도 하고 또는 농기구의 일종을 그린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옛사람들도 辰자의 기원에 대해 명확하지 않았는지 갑골문과 금문 사이의 변화도 매우 크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갑골문에 나온 辰자만을 놓고 본다면 이것은 농기구의 일종을 그린 것이다. ‘농사’를 뜻하는 農(농사 농)자에 辰자가 쓰인 것도 이것이 밭을 갈던 농기구를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상형문자

조개가 껍떼기에서 발을 내밀고 있는 모양을 본뜸. 음(音)을 가차(假借)하여 십이지(十二支)의 다섯째 글자로 용을 뜻함.

 

사성음 chén (chén)

 

영문 early morning. 5th terrestrial branch.

 

부록 2

 

후한서 後漢書 와 육조시대

 

흠정 24사 중 세 번째 역사서. 후한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며 기전체로 쓰여졌다. 유송(劉宋)의 범엽(范曄: 398~446)이 편찬했다. 본기(本紀) 10권, 열전(列傳) 80권, 지(志) 30권으로 되어 있다. 이 중 본기와 열전은 범엽의 저작이고, 지(志)는 사마표가 쓴 『속한서(續漢書)』의 것이다. (나무위키 ‘후한서’)

 

후한서는 남북조 시기 남조 (송·제·양·진)의 송=유송(劉宋)의 ‘범엽’이 440년 경 지은 역사책이다. 유송(劉宋)의 수도는 건강인데 지금의 강소성 남경(난징)시 이다. 남경시는 차이나 남북조 시대 남조의 수도였다.

 

삼국시대의 오(吳 손권 229-280년) – 북조 오호십육국 중 하나인 동진(東晉)(317-420년) - 송 (유송(劉宋),420~479년) - 제(齊)(479-502년) - 양(梁)(502-557년) - 진(陳)(557-589년) 여섯 개 왕조를 육조 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와 ‘동진’ 사이 37년 (280년~317년)의 기록이 궁금하다.

 

이 여섯 왕조의 특징은 기본적으로 장강(長江)을 중심으로 강남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 가운데서도 장강 하류인 양주(揚州)는 정치와 경제의 중심을 담당했으며, 중류인 형주(荊州)는 국방의 중심을 담당했다. 상류인 익주(益州)는 263년 촉한 멸망 이후 독립 정권이 들어섰다가 유송 이후로 남조가 장악하고 있었는데, 역시 생산과 방위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결국 554년 서위가 차지하면서[1] 북조정권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존재감은 낮았지만 교주(交州) 역시 종종 베트남인 독립운동이 일어났지만 대체로 남조의 영향권에 속했다. 그리고 이들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왜국하고도 교류했다. (나무위키 ‘육조시대’)

 

남조 송(420-479)는 중국 남북조 시기 남조의 왕조로 정통왕조이며, 남조에서 존속기간이 가장 길고, 강역이 가장 넓었던 왕조이다.

모두 사세(四世)에 걸쳐 10명의 황제가 있었으며, 59년간 존속했다.

국군의 성이 유(劉)이므로, 조광윤(趙匡胤)이 건립한 조송(趙宋)과 구분하기 위하여, 유송(劉宋)이라고 부른다.

유송의 10명 황제중에서 7명이 피살당하고 겨우 3명만 선종(善終)했다.

https://shanghaicrab.tistory.com/16158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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