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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은 시』 ‘미카엘라’ (2)

윤한로 시인
  • 입력 2023.08.10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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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시로 엮은, 내 시를 삶으로 엮은

5부, 미카엘라 (2)

 

땀 뻘뻘 흘리며 일만 알 뿐

기계처럼 돈이나 벌 뿐

입때껏 눈물 콧물도 모르고

막살았구나, 헛살았구나, 그대 아버지들 

 

우리 셋 

 

동네 싸구려 호프집에

우리 셋

나와 마누라와 작은눔

귀때기가 떨어져 나갈 듯 추운 밤

나도 한 잔

고생이 많구먼 당신도 한 잔

자, 대학도 떨어졌으니

니놈도 한 잔

오리털 파카 속 자꾸만 삐져나오는

깃털 풀풀 날리며

옛날 얘기, 군대 얘기, 학교 때 얘기,

식구꺼정 술 마시면 미주알고주알 맛있구나

트집 잡힐 일 없고, 도망갈 사람 없고

술값 때문에 머리 안 쓰고 좀 좋으냐

대학이 다가 아녀라 공부가 최고 아녀라

착하게만 살면 되지라

그 구라 어디 가면 누가 들어주냐

연신 풀며 쨍그랑쨍그랑

우스꽝스런 우리 셋 발동 걸렸다

코맹맹이 되고 혀 꼬부라지고

코가 비뚤어질 때까지

드디어 필름이 끊길 때까지

얀마, 맥주에 소주 말아

세게 한 잔 쨍그랑

 

자식은 모자라서 대학도 떨어지고

우린 다니는 직장에, 살림에 갈수록 쪼들리고

그래 우리 셋, 호프가 떠나가라

코가 삐뚤어지도록

혀가 꼬부라지도록 마신 게다

얀마, 장허다

그러구러 나도 모르게 뒤로 까지니

필름 끊기니

새끼 등에 업혀 오는 저번 밤은

얼마나 행복했던가

낡은 파카에 오리털 풀풀 날리는 추운 겨울 

 

우리 둘 

 

흰 눈이 나린다

수암봉 날망

성당 일 자식새끼 일

다 잊고

옥수수 막걸리 걸친다

우리 둘 망년회 한다

나는 딱 한 잔

마누라쟁이는 두 잔

그러나 바로 하산이다

서로 누구랄 것 없이 팔짱을 끼고

짧은 걸음걸음

등산화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깊은 눈

내려올수록 온통 불콰하다

가파른 겨울 수리산

민머리

  

잡덤불 속에 욱대기며 메추라기 뗨뗨

난 수놈 같고

시뿌듬, 멱을 틀고

그대는 암놈 같고

춥진 않을까

우리 둘

꼬락서니 하며!

저기 무주구천동

최北이 최七七님께 그려 달래라

지게작대기 잡은 참

찍찍 

 

기암도(奇巖圖) 

 

순 쌍놈 이름 갖고 싶소

北자 이름 찢어발겨 七七이가 된

최칠칠 최북

꽃과 짐승과 새와 산과 물을 잘 그렸네

비리비리한 덤불 메추라기들 꼬락서니

그저 좋아

더더욱 잘 그렸네

최산수 최메추라기 최북

언젠간 불쑥

멀쩡한 두 눈이 오히려 죄가 된다오

한 짝 눈 푹 찔러 멀게 하곤

개눈 박은 최북

미천하고 깨끗하기 이를 데 없어라

그 개눈, 마침내

바다속에서 막 뛰쳐나온

괴상망칙한 바위 하나

지게작대기로 그린 듯

굵게 굵게 그렸소 

 

까짓거 팔아봐야

저녁 한 끼 밥거리도 안 될 틴데

오, 아무도 이길 수 없고

아무나 다 이길 수 있는

최북, 최칠칠이 

 

소만(小滿) 

 

봄 끝물

베란다 볕 좋다 미카엘라

빨강 고무대야에 따슨 물 가득

아버지 발딱 앉혀 닦아 드린다

손 씻고 발 씻고 코도 팽 풀리고

가슴도 닦아 드리고

이윽고 거기까지 닦아 드리니

헤, 좋아라 애기처럼

보리 이삭처럼

뉘렇게 웃으시네

뉘렇게 패이시네

그새 울긋불긋 꽃 이파리 몇 장 날아들어

둥둥 대야 속 떠다니니

아버지 그걸로 또 노시니

미카엘라 건지지 않고 놔 두네

오늘만큼은 땡깡도 부리지 않으시네

윤 교장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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