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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정전협정70주년 특집기사 `왜 평택인가` (5)

문정기
  • 입력 2023.07.25 22:58
  • 수정 2023.07.26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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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를 가다

              평택 팽성읍 소재 평화마을, 이제는 없어진 마을 대추리, 간판으로만 존재한다.
              평택 팽성읍 소재 평화마을, 이제는 없어진 마을 대추리, 간판으로만 존재한다.

 

7.27정전협정70주년 특집기사 `왜 평택인가` (5)

시리즈 총6편 중 5번째

            대추리를 가다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상상만으로 추억만으로, 잊혀지고 있는 그 이름, 이 이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은 평택시 팽성읍 대추안길 5(노와리 455-12)

대추리의 첫 인상은 마치 파주의 민통선 내의 통일촌과도 비슷. 집집마다 태극기가 꽂혀 있고 사람이 산 듯, 안 산 듯 듬성하다. 깨끗하고 약간 연출된 느낌도 없지 않으며 가볍지 않은 침묵이 어색하다. 입구의 장승 또한 묘한 감을 풍긴다. 장승이라는 게 원래 홀로 서 있으면 무섭게 느끼기도 하는데 오늘 이 동네 입구에는 나와 장승만이 따뜻한 햇볕을 맞고 있는 의아한 느낌이다.

여기에는 현재 44세대의 대추리 원주민이 산다.

원래는 200호 정도였다고 한다. 나머지는 뿔뿔이 흩어져서 산다. 평택미군기지에서 밀려난 쫓겨난 주민이다. 더 얘기하면 외부힘에 의해 두 번 쫓겨난 대한국민이다. 일제 강점하에 한 번, 일본에 쫓겨나고 이후 또 한 번 미국에 쫓겨난 신세이다. 1950년과 2000년 미국에 의해 두 번 이니 합이 세 번이다. 가까이 도두리도 할 말이 있다. 대전 대청댐 수몰로 인하여 주민들이 성남과 도두리로 이사를 왔는데 또 다시 쫓겨나니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국내에도 얼마든지 존재한다는 것을 실증해 준 이웃이다.

여기에서 미군과 싸운 문정현 신부가 떠오른다.

마침 오늘 평화어머니회의 대표가 서울에서 그 신부하고 인터뷰를 한다든가,

몇 번 가본 것 같기도 한 익숙한 동네처럼. 다시 한 번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처음 시작의 네거리에 이르러 아차 싶었다. 그제야 차에서 내려 안내판을 읽었다. 지나가는 객처럼 오는 게 아니었다. 먼저 네거리의 장승에게 빌었어야 했다. 이 험난한 지경을 빨리 벗어나게 해주소서. 미군이 진정한 우리 아군이자, 미국이 진정한 우리 동맹국이 되게 해주소서.

이제 생각이 정리된다. 여기 사는 대추리 주민들은 주암댐의 수몰 지역의 주민, 광명시의 철거민, 봉천동의 철거민처럼 모두 다 개발이란 미명 하에 집 빼앗기고 땅을 빼앗긴 원주민, 미국의 아메리칸 인디언과 다를 바 없다. 그들은 한결 같이 집을 잃고 삶을 잃고 타지에서 속 가슴을 앓으며 살아간다. 물론 보상을 받았다. 하지만 돌아서면 같은 땅을 살 수 없으니 집을 떠나는 난민신세가 되고 말았다.

오늘의 안내자 현 소장은 평택 기지의 칼라 지도를 펼친다. 브리핑이 시작되고 오늘 주요 방문 루트를 소개한다. 여기에서 4km 거리의 평택 미군기지와 캠프 험프리스의 5개의 주요 게이트가 목표이고 전체 둘레 18킬로의 반 정도, 자동차로는 이용이 가능한 지역을 방문하기로 했다. 자전거만이 통행이 가능한 나머지 절반은 시간 관계로 뒤로 미룬다.

평택 미군기지의 북쪽을 흐르는 안성천 강변으로 바람이 시원하여 금방 더위를 잊는다동행한 바위 위의 율려춤 귀선님은 양팔을 들고 바람이 가는 대로 몸을 맡긴다. 그리고 느낀다피부에 닿는 피부를 지나 온몸에 전해지는 기운을. 몸의 동작만이 아니고 `춤은 저항이다`. 새삼 인도 어떤 교수의 말이 떠오른다. 그녀는 저항한다. 나쁜 기운에의 거스름을.

춤을 주실 건가 물음이 구차하여 이를 포기하고 내심 섭외에 성공했구나 기뻤다. 우린 백만 대군을 얻은 것이다.

사실 안내하는 사람이 없으면 쉽게 험프리스 기지의 정문을 찾기 힘든다. 동네 이름에서 따온 안정리 게이트가 정문이다. 전체 5개의 게이트 중 cpx 게이트는 폐쇄되었고 우리는 동창리 게이트에서 출발하여 기지 철조망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여 안성천과 만나는 지점에 이른다.

다시 돌아 나와 근처 높은 곳에 올라가 험프리스를 내려다본다. 우선 좌우가 길다. 왼쪽에서 출발한 활주로가 동서로 뻗혀있다. 길이가 2.5킬로미터이니 대형 군용 수송기의 이착륙이 가능하다. 뿌연 서쪽 하늘을 배경으로 누런색의 건물이 멀리까지 뻗쳐 있다. 저들은 저 속에서 뭘하고 있을까

다음은 윤게이트, 용산 미8군의 메인 게이트에서 보는 것과 비슷한 한옥 지붕의 랜드마크가 있다. The Army Home in Korea. Welcome to Humpreys. 그 아래에 14개 부대 표지가 있다. 주특기 표지라는데 거리가 멀어서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돌아가신 모친의 본향이 평택 林씨, 조신한 모습이셨다.  또 1969년 군 입대시 오산 쑥고개의 방공포여단, 말하자면 미사일부대에 배치를 받아 오산공군기지를 간 인연이 모두였다. 이제는 잃어버린 땅과 우리의 평화주권을 위해 여기에 왔다.

해가 기웃거리며 저녁을 부른다. 험프리스를 뒤로 하고 대추리 마을회관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반나절 대추리 탐방을 마쳤다.  

정리하면 평택은 군사도시이다.

대추리는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이다.

외국 사람이 우리 땅에 있다.

평화는 총칼로 지켜지지 않는다. jgm

--

문정기가 쓰고 현필경이 살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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