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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쓰듯 독백을 했다

이진성
  • 입력 2023.07.18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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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8.00:47

오디션 하나를 끝내면 기진맥진이다. 그렇다고 오디션을 체력으로 준비하는 것은 아니나, 일종의 긴장감이 나를 피로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금요일에 오디션이 끝났는데 조금만 쉬어야지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월요일이다.

나는 말하는 대로 이뤄진다고 믿는 것들 중에 하나가, '저 감독님과 작품 하고 싶어.'였다. 우연한 계기로 그것들을 이뤄왔고 작은 역할이지만 함께 했음에 감사하곤 했다. 이번 오디션도 마찬가지다. 이 감독님의 초기 작품과 독립영화부터 익히 봐왔었고 그 작품에서 독백을 발췌하여 오디션을 봤었다. 그 독백은 나에게 많은 작품을 안겨주었고 무난한 독백을 보여줄 때에는 꼭 선택하는 대사다. 그만큼 자주 했던 대사임에도 일부분의 내 어딘가에서 떨림이 있었다. 비대면 오디션이라면 긴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대면 오디션은 뭐랄까 스쳐 지나가 기억도 안 날 것 같다는 생각에 기대감이 없었다. 이건 실물 오디션이니까 반드시 맞게 되겠지. 그런 미세한 본능들이 생각을 훑고 지나니까 약간 긴장하게 됐다.

편하게 들숨을 코로 들이킨다. 날숨도 앞에서 눈치채지 않을 정도로 옅게 코로 뱉는다. 보이는 테이블 위에 맥주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옆에는 포크가 있고 포크 끝에 샐러드 마요네즈가 묻었다고 상상한다. 전상황을 생각한다. 흔히 말하는 전사를 5초 정도 생각한다. 미리 그려놓은 내 눈에만 보이는 인물에게 말을 하기 시작한다. 마지막 대사까지 차례대로 내뱉고 연기를 마친다.

나는 편지를 쓰는 기분으로 연기를 했다. 연기하기보다는 감사와 존경을 담았으니 편지라 함이 옳다. 달려라 하니가 '없다. 나 잘 지내고 있어요. '하듯, '감독님, 덕분에 잘 연기하고 있어요!'라고 말한 편지였다. 이런 걸 힙합 용어로 리스펙이라고 하나. 샤라웃이 맞겠다. 샤라웃 윤종빈 감독님. 나 오늘 좀 힙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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