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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勃(발)海(해)郡(군)’의 ‘海(해)’=한韓=마한馬韓=진辰’. 차이나 대륙에서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를 지워라. 거대한 음모 (5) 부일사학 국사편찬위원회 (74)

이원환 전문 기자
  • 입력 2023.07.0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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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후한서 한조 끝부분을 최대한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번역을 존중하여 필자 입장에서 의역하여 위치 비정에 중요한 부분을 게시하면 다음과 같다.

 

1) 조선왕 준朝鮮王 準이 위만衛滿 (위만조선의 그 위만이다) 에게 패하여, 자신의 남은 무리 수천명을 거느리고 발해군 (. ()나라 103()중 하나이다)지역으로 도망했다.

 

[당시 발해군은 이름만 ()이지 ()나라가 실제 지배를 하지 못하던 곳이다. ]

 

2) 조선왕 준은 발해군 지역에 있던 마한을 공격하여 쳐부수고 스스로 마한의 왕 韓王이 되었다.

 

조선의 왕에서 마한의 왕이 된 준의 후손이 끊어지자, 마한 사람이 다시 스스로 진나라의 왕辰王= 마한의 왕이 되었다.

 

3) ()나라 건무 20( 기원후 44, 백제 다루왕 多婁(, , ) 17) 에 마한의 염사廉斯사람인 소마시蘇馬諟 등이 낙랑樂浪에 와서 공물을 바쳤다. ()나라의 광무제는 소마시를 낙랑군 염사읍의 읍군으로 삼아 낙랑군에 소속시키고 조공하도록 했다.

 

[ : 마한의 염사 지역이 낙랑군의 염사 읍()’이 된 것이다. ‘마한의 일부= 낙랑의 일부라는 말이 성립하는 것이다.]

 

()나라 영제 말년에 마한과 예가 모두 강성해져 ()나라의 군현이 제대로 제압하지 못하자, 난리에 고통스러운 백성들이 마한으로 도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4) 위 글에서 마한, , 낙랑 모두 동일한 지역이었거나, 서로 경계가 맞붙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조선왕 준이 들어간 () 는 차이나 역사서에서는 발해군 이며 최소한 마한 연방 (마한, 진한, 변한, 변진)이라고 본다.

 

2. 후한서 동이열전 한조 번역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순서)

1) 은 옛날에 진연방이었다. 세 국가(종족)이 있었다. 마한, 진한辰韓, 변진弁辰이다.

 

[ : 삼국지는 처음에는 마한, 진한, 변한이라고 기록하다가 본문에 들어가서는 마한, 진한, 변진의 순서로 쓴다. 진한을 변진이라고 쓴 것으로 보인다.

 

마한연방은 대방의 남쪽에 있는데, 동쪽과 서쪽은 바다로 한계를 삼고, 남쪽은 왜와 접경하니, 면적이 사방 4천리 쯤 된다. 마한 연방에는 세 종족이 있으니, 하나는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 弁韓인데, 진한은 옛 진나라辰國이다.]

 

2) 마한은 서쪽에 있고, 54개 군이 있다. 마한의 북쪽은 낙랑樂浪이다. 남쪽은 왜와 접하여 있다.

 

진한은 동쪽에 있고, 12개 군이 있다. 진한의 북쪽은 예맥濊貊과 접하여 있다. 변진弁辰은 진한辰韓의 남쪽에 있고, 역시 12개 군이 있다. 그 남쪽은 왜와 접해 있다.

 

모두 78개 군 (54 +12 =12) 이고, 백제伯濟는 그 중의 한 나라이다.

[ : 삼국지 마한의 군 설명에 백제伯濟國가 있다.]

 

큰 군은 만여 호, 작은 군은 수천 가이다.

[ : ‘의 차이는 알 수 없다.]

 

각기 산과 바다 사이에 있어서 전체 국토의 넓이가 방 4천여리나 된다.

 

3) 동쪽과 서쪽은 바다를 경계로 하니 모두 옛 진연방이다.

 

마한이 가장 강대하여 그 종족들이 함께 왕을 세워 진연방의 황제으로 삼아 목지국目支國에 도읍하여 전체 삼한 지역의 황제로 군림하는데, 연방의 황제는 모두 마한 나라(종족)의 사람이다.

 

[ : 삼국지 마한 설명에 진나라 왕辰王은 월지국月支國을 통치한다.” 가 있다. 삼국지 마한 군 월지국月支國 은 후한서 마한의 도읍 목지국目支國과 같다. 이 맞는 표기인지 월이 맞는 표기인지는 연구해 볼 일이다.]

 

마한 사람들은 (중략) 소도蘇塗 를 만들어 거기다가 큰 나무를 세우고서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귀신을 섬긴다.

[ : 삼국지 마한 설명에 소도蘇塗 국이 나온다]

 

마한의 남쪽 경계는 왜에 가까우므로 문신을 한 사람도 있다.

 

4) 진한辰韓은 그 노인들이 스스로 말하되, 기원전 220년경 차이나 진나라에서 망명한 사람들로서 고역을 피하여 진한에 오자, 마한이 그들의 동쪽 지역을 분할하여 주었다 한다.

 

(중략) 차이나 진나라 말과 흡사하기 때문에 혹 진한秦韓이라고도 부른다.

 

[ : 차이나의 속국이라고 억지로 우기고 있는 것이다! 앞 문장에서 진한은 전체 () 연방의 동쪽, 즉 마한의 동쪽에 있는데 마한이 차이나 () 나라의 서쪽에 있지 않으면 설명이 안 되는 구절이다]

 

5) 성책과 가옥이 있다. 모든 작은 읍에는 각각 거수渠帥가 있다. 강대한 자를 신지臣智라 하고, 그 다음은 검측儉側, 그 다음은 번지樊秖, 그 다음은 쇄예殺奚, 그 다음은 읍차邑借가 있다. (중략) 아이를 낳으면 머리가 납작하게 되도록 하려고 모두 돌로 눌러 놓는다.

 

[ : 삼국지 해당 부분이다.

변진弁辰12으로 되어 있다. 또 여러 작은 별읍이 있어서 제각기 거수渠帥가 있다. 세력이 큰 사람은 신지臣智라 하고, 그 다음에는 험측險側이 있고, 다음에는 번예樊濊가 있고, 다음에는 쇄예殺奚가 있고, 다음에는 읍차邑借가 있다.

 

이 험으로 바뀌었고 로 바뀌었다. 서로 베끼면서 혼동이 온 것이다. ]

 

[ 거수渠帥 조선의 마지막 왕은 右渠(우거) 이다. 左渠(좌거)왕이 있을 수 있다.

검측儉側, 단군왕검의 검과 우리 편, 우리 측 할 때 측이다.

쇄예殺奚 殺 의 발음은 시, , , 4종류이다. 의 발음은 , .

쇄예殺奚 , , () 의 발음과 같은 것이다. ]

 

6) 변진弁辰 사람들은 진한辰韓 사람들과 뒤섞여 사는데, 성곽과 의복은 모두 진한과같으나 언어와 풍속은 다른 점이 있다. 변진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 신체가 장대하고 머리칼이 아름다우며, 의복은 깨끗하고 형법은 엄격하다. 변진은 왜국倭國과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문신한 사람이 상당히 있다.

 

7) 처음에 조선왕 준朝鮮王 準이 위만衛滿 (위만조선의 그 위만이다) 에게 패하여, 자신의 남은 무리 수천명을 거느리고 발해군 (()나라 103()중 하나이다)지역으로 도망했다.

 

[ : 당시 발해군은 이름만 ()이지 ()나라가 실제 지배를 하지 못하던 곳이다. ]

 

8) 조선왕 준은 발해군 지역에 있던 마한을 공격하여 쳐부수고 스스로 마한의 왕 韓王이 되었다.

 

조선의 왕에서 마한의 왕이 된 준의 후손이 끊어지자, 마한 사람이 다시 스스로 진나라의 왕辰王= 마한의 왕이 되었다.

 

9) 한나라 건무 20( 기원후 44, 백제 다루왕 多婁(, , )17) 에 마한의 염사廉斯사람인 소마시()蘇馬諟 등이 낙랑樂浪에 와서 공물을 바쳤다. ()나라의 광무제는 소마시를 낙랑군 염사읍의 읍군으로 삼아 낙랑군에 소속시키고 철마다 조공하도록 했다.

 

()나라 영제 말년에 마한과 예가 모두 강성해져 ()나라의 군현이 제대로 제압하지 못하자, 난리에 고통스러운 백성들이 마한으로 도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10) 마한의 서쪽 바다의 섬 위에 주호국 州胡國이 있다. 그 나라 사람은 키가 작고 머리를 깎으며, 가죽 옷을 입는데 상의만 입고 하의는 입지 않는다. 소나 돼지 기르기를 좋아하며, 배를 타고 왕래하면서 마한 땅 안에서 물건을 사고 판다. .

 

[ : 주호국 에 대한 기록은 신빙성이 매우 떨어진다. 마한이 차이나 대륙에 있음으로 마한의 서쪽에 바다는 있을 수 없다. 설사 마한이 한반도에 있었다 해도 한반도 서쪽에 어느 섬을 지징했는 지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제주도 라고 하는데, 제주도는 한반도 기준 남쪽 혹은 양보해도 남서쪽 (서남쪽이 아니다)이지 절대 서쪽은 아니다 ]

대청광여도 1785년  캡쳐 편집https://dl.ndl.go.jp/pid/2543120/1/2
대청광여도 1785년  캡쳐 편집https://dl.ndl.go.jp/pid/25431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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