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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으로 본 고구려·백제·신라의 서울. 차이나 대륙에서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를 지워라. 거대한 음모 (2) 부일사학 국사편찬위원회 (71)

이원환 전문 기자
  • 입력 2023.06.24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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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식으로 본 고구려·백제·신라의 서울

1) 2000년 당시 서울대 천문학과 교수 박창범은 일식 최적 관측지로 삼국의 수도를 추정했다. 그가 제시한 지도를 보면 고구려는 바이칼호 동남쪽 지금의 부리야트 공화국과 내몽고 후룬베이얼시 (편의상 부리야트 국 동남이라 한다), 백제는 지금의 차이나 북경시·천진시 인근, 신라는 지금의 차이나 양자강 중류 지역 장사시·중경시 인근인 것으로 보인다.

(“ 현존하는 최고의 역사서 800년논쟁 삼국사기의 진실은” [역사실험] KBS 2000.11.18. 방송 KBS 실험실 https://www.youtube.com/watch?v=zbfrW3TZozw )

 

2) 박창범 교수의 학설 대로라면 동북으로는 부리야트 국 동남’, 차이나의 수도 북경·천진시 인근, 서남으로는 양자강 중류 장사시·중경시 인근이니, 차이나 전역이 코리아의 역사 무대였다. 이 학설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논리가 가능하다

 

 

차이나 대륙 전역이 고조선 때부터 코리아의 강역이었다.

 

차이나는 전해지는 역사책에서 코리아의 지배 흔적을 지우고자 노력했다.

 

차이나의 가장 오래된 역사책 순서로 코리아의 지배 흔적이 더 많이 남아 있을 것이며 후대로 올수록 코리아의 지배 흔적은 없을 것이다.

 

차이나 대륙에서 발굴되는 문화재 유적은 차이나에 유리한 것만 발표된다.

 

漢字(한자) 자체가 역사를 증명해 주는 중요한 흔적이 된다.

 

漢字(한자) 로 남아 있는 지명, 인명 등이 코리아의 지배 흔적을 증명해 주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

 

광개토대왕 비 등 비석에 남아있는 기록을 탁본 형태로 볼 수 밖에 없지만, 탁본이 그나마 위변조가 가장 덜 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차이나 역사책으로 보면 나라가 작고, 기간이 짧으며, 차이나 남부에 있었던 나라일수록 그 나라, 그 왕조가 편찬한 역사책이 도리어 진실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다.

 

가장 오래된 역사책도 전해져 오면서 위변조된 부분이 많다.

 

1150년경 편찬된 삼국사(), 1280년경 편찬된 삼국유사 등은 코리아·차이나 고대사를 밝히는데 그렇게 유용하지 않다. 시간이 900년 이상 경과되었고, 차이나 역사책도 많이 참조하였기 때문이다. 오래된 차이나 역사책을 우선하여 차이나 역사책의 위변조 흔적을 추적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2. 현재까지의 추적 결과

진번·임둔·낙랑·현도 한4군은 없다. 그냥 지명일 뿐이다. ‘사기 조선열전에서 한사군을 설치했다는 기록 [為四郡(위사군)] 은 기원후 100년에 반고가 漢書(한서)를 만들면서 삽입한 것이다. 원문장에서 보듯이 4군의 이름은 없고, 5 제후만 있다.

 

遂定 朝鮮(수정조선)為 四郡(위사군)封 參 為 澅清侯(봉삼위획청후)陰 為 荻苴侯(음위적저후)唊 為 平州侯(겹위평주후)[] 為 幾侯([]위기후)最以 父死頗 有 功(최이부사파유공)為 溫陽侯(위온양후)

 

소위 진번·임둔·낙랑·현도 한사군은 지역 이름일 뿐이고 실제 설치된 적이 없다. 역사 분쟁에서 먼저 자기들의 영토임을 주장하고 기록해 놓는 침바르기행동에 불과하다.

 

- 임둔 군, 진번 군은 한서지리지 103개 군국에 나오지 않는다.

 

- 현도군은 고구려 현, 서개마 현, 상은대 현 달랑 3개이다

 

- 낙랑군은 아예 조선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조선현이 있다.

 

한서지리지 103개 군국중 ()나라가 조세를 거두는 등 실효적 지배를 한 곳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는 83개가 ()이며 20개가 ()이라는 기록, 끊임 없이 전국적으로 일어나는 반란, 군국에 속하는 현의 수와 인구 수가 전혀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반증한다.

 

차이나의 코리아역사 지우기는 고구려’ ‘부여의 시작 시간을 추적할 수 없도록 숨긴다.

 

사실상의 1개의 국가인 조선=고리=코리아를 부여(夫餘)고구려(高句麗)동옥저(東沃沮)읍루(挹婁)()() 6개로 분리하고, 백제·신라는 기재하지 않음으로 백제·신라와 차이나의 전쟁이나 외교 관련을 유리하게 서술할 수 있도록 한다.

 

3. 차이나 사서에 나온 소위 동이열전

 

1) 국사편찬위원회는 소위 동이라는 표현을 쓰는 데 항상 주의할 것을 표기해야 한다. 코리아 한민족은 스스로를 동이라 부른 적이 없다. 차이나가 동이라고 불렀을 뿐이다.

 

사기 조선열전’, ‘한서 조선전이 있을 뿐 동이라는 표현은 없다. 조선을 직접 가리키는 말은 두 책에 나오는 진번·조선·만이 (야만 오랑캐) 이다. 두 책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부여 예맥 등 열전이 없다.

 

2) 차이나 사서에 나온 소위 동이열전을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따라 살펴 보자

 

기원후 285년 경 진수가 편찬한 삼국지에 비로소 오환선비동이전이라는 이름으로 오환·선비, 부여(夫餘)고구려(高句麗)동옥저(東沃沮)읍루(挹婁)()()이 나온다. 오환·선비를 동이와 구분하는 것으로 제목을 달아 두었다. 오환·선비·동이는 같은 민족으로 분류해도 충분하다. 그럼에도 진수는 굳이 이를 분리했다. 이유는 단 하나다. 차이나 대륙 모두를 지배한 조선을 지워야 하기 때문이다.

 

鮮卑(선비)’는 글자 그대로 조선朝鮮 鮮卑선비이다. 사학자 한영우는 선비가 고조선 시대부터 내려온 지성인 (지식인)이라고 했다. 꼬장꼬장해서 요즘 말로 꼴통이라는 의미로도 낮춰 부르는 선비漢字(한자)로 쓸 수 있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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