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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랜드

이진성
  • 입력 2023.06.16 03:00
  • 수정 2023.06.1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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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0.

아침 일찍 촬영이 끝났다. 집에 가기 아쉬워 근처에 있는 성일이 형 분식집에 들렀다. 나는 실내보다는 외부에 앉는 것을 좋아한다. 날이 좋아 제법 이국적인 풍경이라고 생각했다. 옆가게는 카센터이고 마주 보는 배경은 북서울 꿈의 숲이라는, 유월의 녹음(綠陰)이다. 맞은편 꿈의 숲에서 분식을 먹고 있는 나를 보면, 아마 유럽 어느 나라 작은 로컬에 앉아서 브런치를 먹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고 상상한다. 왜 그 스마트폰 필터처럼 손쉽게 보정을 해서 상상으로 나를 본다면, 나는 떡순튀가 아니라 브런치 메뉴를 먹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았다. 어차피 밀가루는 똑같잖은가.

 

지나가는 손님들은 마치 단골집에 들르듯 문을 열고 주문한다. 나는 몰랐던 드림랜드의 룰을 지켜서 스스로 쟁반에 수저를 챙기고 수기로 노트에 오더를 적는다. 몇 년을 알았던 형과 나의 거리에서는 알 수 없는 언어가, 손님과 주인사이에 있었다. 새삼스러웠다.

 

내 아버지뻘 되는 손님과 자기 이름이 적힌 축구복을 입은 9살 남짓 손님이 왔다. 손님 둘은 인사 잘하느냐 등 시답잖은 얘기로 분식을 기다리신다. 일상을 보낸다. 어떤 손님은 손부채를 하며 들어오는 게, 아까 그 유럽 필터를 끼고 본다면, 영락없이 '아이다호 감자와 감바스 하나 알리오 올리오 포장이요.'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여기선 쫄면과 오징어 튀김 6개를 주문해서 나간다. 감바스나 오징어 튀김이나 어차피 해산물이다.

 

주인, 성일이 형은 참 성의가 있다. 그 쫄면을 삶아서 찬물에 헹구는 데에, 왼다리는 구부려 몸을 지탱하고 골반의 체중은 왼쪽으로, 오른팔은 삼두가 쭉 펴져서 오른 상부승모가 힘을 대신 받아주고 있다. 팔기보다는 만들기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아까 테라스에서 지켜보던 내 시선에서 형의 김밥 싸는 뒷모습을 봤다. 김밥 하나 마는데 다소곳이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팔꿈치 높이로 팔을 구부리고 두 손으로 꼭꼭 눌러 말고 있었다. 익숙함이나 노련함보다는 성의가 있었다.

 

촬영이 끝나고 내 일상 중, 남의 일상에 들어가 브런치 한 접시 때리고 청명한 하늘까지 더 하니 잠시 꿈을 꾼 거 같았다. 그래서 드림랜드인가. 유럽 필터로 상상하는 나의 오늘 드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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