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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구의 '평화의 섬 제주에서 바티간까지' 75

문정기
  • 입력 2023.06.15 09:36
  • 수정 2023.06.1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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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의 개성상인)

평화의 섬 제주에서 바티칸까지 75

        (베니스의 개성상인)

 나는 베네치아를 연결하는 다리를 타고 갯벌을 지나 베네치아에 도착하자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유난히 높이 떠 있다고 생각했다. 갯벌은 낮아서 물이 황새들 발목도 안 차게 찰랑거린다. 베네치아는 한때 세계 최고의 무역항이었다. 높이 떠있는 흰 구름을 따라 내 생각은 세계가 우리를 부르는 이름인 코리아(Korea)를 알리기 시작한 고려의 수도 개성 앞 12㎞ 떨어진 예성강변의 항구도시 벽란도로 단숨에 달려간다. 예성강은 수심이 깊어 선박운항이 자유로운 국제 무역항이었다.

 강화 교동도에 가면 바로 앞에 바라보이는 개성의 관문이다. 아버지의 고향은 거기서 지척인 송림이다. 교동도에서 사회운동을 하시는 김영애 선생님이 스위스에서 열리는 국제회의 에 참석차 오는 길에 이곳까지 순무김치를 싸와서 내세 힘을 실어주었다. 마트에 가서 삼겹살을 사서 숙소에서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구워 먹는 맛이 최고이다.

한 푼을 벌기 위하여 천 리길도 마다하지 않고 길을 떠났다는 개성상인이 수많은 아라비아 상인이 들려주는 백 배, 천 배의 이문을 남긴다는 소리를 듣고 베네치아 행을 하지 않았을까? 아라비아와 페르시아, 중국, 동남아 유럽의 상인들이 드나들던 벽란도에서 개성상인도 자연스럽게 그 유명한 고려청자와 비단, 고려인삼을 바리바리 챙겨서 큰 선단을 꾸려서 아라비아 상인들이 들려주는 꿈같은 이야기를 좇아 기꺼이 온갖 위험을 감수하고 먼 여행길에 나섰을 것이다. 다만 전해져 오는 기록이 다 지워졌을 뿐일 것이다.

 개성상인이 누구이던가? 서양인보다 2백 년 전에 복식부기로 재산을 관리하던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피가 오늘날 자원 하나 없는 가난한 나라를 무역으로 세계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나라를 만든 것이 아닐까?

 오래 전 읽었던 소설이 떠오른다. 지워진 역사의 희미한 기록을 찾아서 상상력을 더하여 소설가 오세영은 ‘베니스의 개성상인’을 탄생시켰다. 안토니오 코레아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잡혀가 베네치아에 정착하며 거상이 되었다는 줄거리이다. 바로크 미술의 거장 루벤스가 그린 소묘 한 점 속의 인물이 누가보아도 아시아 사람의 얼굴이고 그가 입은 복식이 조선시대의 무관의 복장인 철릭(天翼)으로 추정된다.

 한복을 입은 남자의 입가에 진 미소는 여유로움이 절로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모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루벤스가 생존할 당시인 1600년경 이탈리아에 건너간 한국인 중의 하나인 안토니오 코레아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임진왜란 때 포로로 일본에 끌려갔다가 카를레티라는 이탈리아 신부에게 팔려간 안토니오 코레아로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거기에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탈리아 남부에 알비라는 작은 마을에 코레아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 있다고 한다.

카를레티가 남긴 회고록에는 “조선의 해안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남녀노소가 노예로 끌려왔다. 그들은 헐값에 매매되고 있었다. 나도 12스쿠디를 주고 5명을 샀다. 그리고 세례를 준 다음 그들을 데리고 가서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플로렌스로 데리고 왔다. 그는 이제 안토니오 코레아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과거에 베네치아는 갯벌과 섬으로 고립되었던 도시국가였다. 아드리아 해에 떠있는 118개의 섬이 수많은 운하와 다리로 연결된 물의 도시이다. 본국의 간섭을 받지 않아 신흥 상인들이 활동하기에 좋았다. 예나 지금이나 상인들은 정부의 규제가 없으면 날개를 활짝 펼친다. 베네치아로 자본은 몰리고 이들은 해외무역에 전념할 수 있었다. 거기다 십자군 원정 때 약탈해 온 보물들이 가득 찼다. 이런 보물들은 ‘산타루치아’의 선율을 타고 지중해의 햇살을 받으며 부르는 것이 값이 되었다.

 베네치아는 한때 서양의 자본이 이곳으로 몰려들어 문화를 꽃피웠던 곳이다. 자본이 몰려들자 피렌체의 가죽 장인, 피렌체 베키오의 귀금속 장인, 유리공예 장인이 몰려들었다. 과거의 영광을 잃고 ‘아름답고 고풍스런 유럽의 박물관’으로 전락했지만 모든 이들이 한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다. ‘셰익스피어가 모든 문학가 가운데 우월하다면 베네치아는 모든 도시 가운데 우월하다’라고들 베네치아의 아름다움을 찬양한다.

 벽란도는 오래전부터 개성-베이징-시안- 타슈켄트-아라비아-로마를 잇는 육상실크로드의 출발지이자 부산포-나가사키-마닐라-호이안-말라카-케이프타운-로마를 잇는 해상실크로드의 출발지였다. 당대 동북아 최고의 허브 항이었다. 인도와 아라비아로 빈번하게 무역선이 오가며 아라비아 상인들을 통해 도자기와 비단 차가 지중해로 수출되었다.

베네치아의 푸른 바다를 보면서 4백여 년 전에 펼쳐졌을 안토니오 코레아의 삶과 도전을 생각한다. 전쟁에서 무참히 해하고 포로로 끌려가 노예로 팔렸다가 기독교에 귀화하고 지구의 반대편으로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상인으로 성공하여 이국인들의 인정과 존경을 받았다. 또 흔적은 지워져서 알 수는 없지만 벽란도에서 일확천금을 꿈꾸며 고려청자나 비단과 홍삼을 모아 선단을 꾸며 베네치아로 떠나왔을 개성상인을 생각한다.

 자기 자신을 믿는 진정한 도전정신의 개성상인! 그 피가 내게도 넘실거려 반신불수의 몸을 이끌고 조그만 통일의 불씨라고 일구어보려고 이렇게 길을 나선 것이 아닐까?-정리 j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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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 문정기

공학박사/과학문화평론가

전 국가과학기술위원

*본 기사는 강명구씨와의 협의에따라 시리즈로 연재되는 기획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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