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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린터의 연규

이진성
  • 입력 2023.05.31 02:07
  • 수정 2023.06.01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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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31. 00:49.

최근에 내가 출연하는 장편영화 <스프린터>가 개봉했다. 전국에 독립영화를 틀어주는 극장에서 상영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2년 전에 찍고 개봉하고 내가 극장에서 보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린 것 같다. 그동안 나는 많은 작품을 했나 자취를 뒤적여 본다. 2년이라는 시간을 잘 달려온 걸까?

크레딧에 나는 '연규'라는 역할로 나온다. 캐스팅 때는 '실업선수'라는 가칭이 붙어 있었다. 감독님께서 내 프로필에 이름 있는 역할 하나 더 적으라고 만들어주신 것 같다. 이름이 있고 없고는 생명력이 다르다. 이름이 생기면 생기가 생긴다. 마치 이름 없던 훈련병에게 이병 아무개 하는 것처럼.

작품의 간략한 줄거리를 말하자면 100미터 달리기 선수를 스프린터라고 부르는데, 1년에 한 번 혹은 올림픽 전에 뽑는다. 국가대표 선발전을 향해 달리는 인생을 그린 이야기라고 하고 싶다. 작품 안에서 나는 선발전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이유가 나오지는 않지만 아마 더 잘 달렸으면 나오지 않았을까? 물론 작품에서 말이다.

선발전에서 주목받는 캐릭터는 딱 4등까지다. 아쉽게 4등을 한 주인공과 선택받은 1등부터 3등. 선택이란 말이 좀 웃기다. 본인의 기량으로 결승선을 통과한 것인데.

5등부터는 나오지 않는다. 이야깃거리가 되려면 10등이 차라리 낫다. 불문의 1등. 살리에르 2등. 난 언제나 턱걸이 었어 3등. 노력했으니 잘했어 4등. 재능 없어도 해도 돼? 10등. 5,6,7,8,9 등은 때로는 인생에서도 주목받지 않는다. 사람들은 5~9등을 주목받는지 안 받는지조차 생각해보지 않는다.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순위다.

영화를 보면서 자꾸만 나를 돌아본다.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연규'가 나 같아서. 주연도 단역도 아닌 '진성' 같아서, 다행인 것은 인생은 100미터가 아닌 것. 긴 달리기를 오늘도 주목받지 않는데도 묵묵히 보내고 있다. 수고했다. '진성'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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