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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만이 먼저 거주한 상하장上下鄣 은 진번조선의 땅, 황하 유역 어딘가에 있다. 황하 북남으로 황하 서쪽에 쌓은 장성. 다시보는 조선열전(5-1) 부일사학 국사편찬위원회 (62)

이원환 전문 기자
  • 입력 2023.05.13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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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조선열전(5) 에서 계속.

지난 번 글에서 조선열전에서의 요동’(이하 황하서쪽요동이라 한다)은 지금의 낙양시를 기준으로 하여 동북쪽이 아니라 서쪽 혹은 서북쪽이라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황하서쪽요동은 시대가 바뀌면서 황하동쪽요동이 되고, 황하동쪽요동은 지금의 진황도시근처요동이 되고, 진황도시근처요동은 지금의 심양시근처요동이 되었다.

 

사기 조선열전 첫 부분이다.

(至浿水 爲界 屬燕.) 燕王 盧綰 反, 入 匈奴, 滿 亡命, 聚黨千餘人, 魋 結 蠻夷服 而 東走 出塞, 渡浿水, 居 秦故空地 上下鄣,

연나라 왕 노관이 반하여 흉노로 들어갔고 위만은 망명하였다. 1000여 명을 모아 무리를 지어 상투를 틀고 만이(蠻夷)의 복장을 하여 동쪽으로 달아나 새()를 나와 패수를 건넌 후에 옛 진국(秦國)의 공터인 상하장(上下鄣)에 살았다

 

稍 役屬 眞番朝鮮 蠻夷 及 故燕 齊 亡命者 王之都 王險.

점차 眞番朝鮮 蠻夷 들을 복속하여 거느렸다. 옛날 연나라와 제나라(齊國)의 망명자들의 왕이 되었는데 도읍은 왕험(王險)이다.

 

1) 패수 까지 () 를 경계로 하여 에 속하게 했다. 이 구절에서 서에서 동으로 패수까지()인가? 동에서 서로 패수까지()인가? ()만의 진행 방향으로 보아 당연히 서에서 동으로 패수까지()이다.

 

번 문장을 기억해 보자. 연나라는 진번조선을 침략하여 지배하고 있었다. (嘗略 屬)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함으로써 연나라가 지배하던 진번조선 땅은 당연히 진나라가 지배하게 되었다. 이것이 번 문장이다.

 

自始全燕時, 嘗略 屬 眞番朝鮮, 爲置吏, 築 鄣 塞. 처음 나라의 全盛期로부터 일찍이 眞番朝鮮을 침략하여 복속시키고, 관리를 두어 국경에 성과 요새를 쌓았다.

秦滅燕, 屬 遼東外徼. 漢興爲其逺難守, 復修遼東故塞, 至浿水 爲界 屬燕.

을 멸한 뒤에는 [그곳을] 遼東 外徼에 소속시켰는데, 이 일어나서는 그곳이 멀어 지키기 어려우므로, 다시 요동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浿水에 이르는 곳을 경계로 하여 에 복속시켰다.

 

2) 그렇다면 나라의 동쪽 경계가 패수인데, ‘나라의 서울, 중심지는 어디일까? 당연히 패수의 서쪽이다. 그러면 북남으로 쌓은 장성을 나라가 지었다면, 누구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인가?

 

당연히 패수 동쪽에 있는 조선의 침공을 막기 위한 것이다! 조선은 왜 침공을 할까? 연나라에게 빼앗긴 진번조선 땅을 회복하기 위해서 침공했던 것이다. 첨부 지도의 , 장성 사이의 삼각형 모양 땅일 것이다.

 

3) 적국 연나라가 진나라에 멸망당하자, 혼란기에 조선연방은 빼앗긴 진번조선 땅을 되찾으려 공격을 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패수 동쪽에 있는 땅 중에서 진나라가 실효적 지배를 하지 못해 공터가 된 땅에 秦故空地 ()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이다. 居 秦故空地 上下鄣 그 땅의 이름이 상하장이고 진번조선의 땅인 것이다.

 

이에 원래 살던 진번조선 사람들 (만이) 뿐만 아니라 옛날 연나라 사람, ()나라 유민, 심지어 제나라 사람들까지 몰려 들어서 ()만이 왕이 되고 도읍한 곳이 왕험이라고 사기열전에 기술한 것이다.

 

()만이 살던 곳, 원래는 진번조선 땅이고 옛날에 진나라 땅인 적이 있었고, 이름이 상하장이며, 고연·(·진번조선 사람들이 모여들기 쉬운 황하 동쪽, 황하 북쪽의 땅은 어디일까? 상하장 은 다음 호에서 찾아보자.

 

4) ‘조선열전만 본다면 ()만이 처음 와서 살기 시작한 곳에 도읍을 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삼국지30, 위서30 오환선비동이전은 위략이라는 역사책에서 옮겼다고 하면서 “ ()만이 쿠데타를 일으켜 조선연방의 왕인 준을 몰아내고 조선연방의 왕이 된 것으로 써 놓았다.

 

()만은 상하장에서 준왕이 살던 조선연방의 수도 왕험(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으로 옮겨갔을까? 아니면 상하장이 왕험일까?

 

 

(至浿水 爲界 屬燕.) 燕王 盧綰 反, 入 匈奴, 滿 亡命, 聚黨千餘人, 魋 結 蠻夷服 而 東走 出塞, 渡浿水, 居 秦故空地 上下鄣,

연나라 왕 노관이 반하여 흉노로 들어갔고 위만은 망명하였다. 1000여 명을 모아 무리를 지어 상투를 틀고 만이(蠻夷)의 복장을 하여 동쪽으로 달아나 새()를 나와 패수를 건넌 후에 옛 진국(秦國)의 공터인 상하장(上下鄣)에 살았다

 

稍 役屬 眞番朝鮮 蠻夷 及 故燕 齊 亡命者 王之都 王險.

점차 眞番朝鮮 蠻夷 들을 복속하여 거느렸다. 옛날 연나라와 제나라(齊國)의 망명자들의 왕이 되었는데 도읍은 왕험(王險)이다.

 

5) 기원전 200년 경 상황은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하여 연나라는 없고 이라는 지역만 있었는데, 한고조 유방의 친구 노관이 나라 왕이 되어 지방으로 배치되었다. 진나라때 망한 의 유민들이 새로 으로 부임한 노관을 잘 따를 리가 없다.

 

흉노 기준으로 하면 동()쪽에 이 있고 ()쪽에 요동이 있고 요동동쪽에 패수가 있고, 패수 동쪽에 진나라 옛날 빈터가 있고 그 곳에 상하장이 있었고, 진번조선이 있었다.

 

한나라 입장에서 사기를 쓴 사마천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조선의 역사를 줄이고, 없애야 하는데, ‘진나라 옛날 빈터빈터가 아니라 진번조선의 강역이었다고 쓸 이유는 없다.

 

다만 사마천이 한무제로부터 처벌 받으면서까지 사기를 저술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마천이 양심이든 엘리트의 자존심이든 후대가 알아볼 수 있도록 힌트를 남긴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만은 조선사람이 아니고 옛날연나라사람이며, 상투를 틀고 만이의 복장, 즉 조선사람 옷을 입고 귀순했다고 표현했다. ‘조선은 패수를 경계로 장성을 쌓고 대치할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아 수시로 전쟁을 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조선사람 옷과 차이나 사람 옷은 옷섶을 왼쪽으로 덮느냐 오른쪽으로 덮느냐 즉 좌임이냐 우임이냐로 판별했다고 한다.

 

사마천의 조선열전 집필 의도는

[ 진번조선을 포함한 조선연방이 한나라와 싸워서 최종적으로 져서 조선연방이 와해 되고 조선을 배반하고 한나라에 빌붙은 다섯(5) 제후가 생겼다.]

는 것을 밝히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6) ‘빈터는 진번조선의 강역일 수 밖에 없다. ()만이 옛날 연나라 사람이고, 조선연방의 마지막 왕이 ()만의 후손 우거이니, 조선의 왕실과 옛날 연나라의 왕실이 같은 조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조선연방은 사실상 ()만에 의해 이미 해체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연나라의 시조는 연 소공이며 연 소공은 은나라를 멸한 주나라 무왕의 동생이다. 연 나라의 시조와 조선의 시조가 피가 섞이는 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순 임금은 동이족이라고 맹자가 말한 바 있다.

 

사실 나라는 조선고려의 대륙지배를 지워야 하는 차이나 왕조들이 사마천 이래 많은 차이나 역사가들을 시켜 만들어 낸 창작물일 가능성도 있다.

 

이는 나라를 잇겠다고 나선 전연, 후연, 남연, 북연... 이 많은 에서 그 단초를 얻을 수 있다. 이 많은 연나라, 심지어 한서지리지의 남연현의 위치가 서로 모두 다른 듯 보인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연나라였을까? 진정 연나라는 존재한 것일까? (계속)

고조선 사라진역사 142쪽 에서 캡쳐 편집 ( 2006.1.25 성삼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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