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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건설이 인생의 꿈이었다는 유구영이 그리워”

강승혁 전문 기자
  • 입력 2023.05.01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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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마석모란공원에서 ‘노동운동가 고 유구영 동지 27주기 추모식’ 열려

'노동운동가 고 유구영 동지 27주기 추모제'가 열린 마석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서 비가 내리는 가운데, 추모객들이 우산을 쓰고 고인을 기리고 있다. 정면에서 우산 쓴 옆 모습의 사람이 이날 추모제에서 진행하고 있는 배기남 선생의 모습이다. Ⓒ강승혁
'노동운동가 고 유구영 동지 27주기 추모제'가 열린 마석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서 비가 내리는 가운데, 추모객들이 우산을 쓰고 고인을 기리고 있다. 정면에서 우산 쓴 옆 모습의 사람이 이날 추모제에서 진행하고 있는 배기남 선생의 모습이다. Ⓒ강승혁

 

지난 29일 오전 11, ‘노동운동가 고 유구영 동지 27주기 추모식이 마석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서 열렸다. 이날 비가 내리는 가운데 고 유구영추모사업회 회장인 권영길 전 의원과 유족 등 20여 명의 추모객이 참가해 고인을 기렸다.

 

권영길 회장은 추모사에서 우리가 가신이를 추모하고 그리워 하는 것은 고인의 생전의 삶의 길을 돌아보고 오늘 우리의 삶의 지표로 삼기 위한 성찰이다. 오늘 우리에 대한 성찰 없이 가신 이를 추모한다는 것은 진정한 추모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라고 시작했다.

 

이어서 요즘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운동, 사회운동을 해온 사람들이 폄훼당하고 있어 분노와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 없지만, 노동운동, 진보 정치운동가들에게도 성찰이 요구되고 있다그러한 면에서 오늘 비 내리는 날, 유구영 동지 묘소에서 동지의 삶을 되돌아보며 '운동가의 품성'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 열정, 헌신, 희생의 삶이 유구영의 삶이었다. 짧았지만 강렬한 삶이었다라며 유구영은 우리에게 운동가의 품성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그의 실천적 삶으로 보여주고 떠났다. 민주노총 건설이 그의 인생의 꿈이었다는 유구영이 그립다며 추모했다.

1. '노동운동가 고 유구영 동지 27주기 추모제'가 열린 마석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서 비가 내리는 가운데, 추모객들이 우산을 쓰고 고인을 기리고 있다. 정면에서 우산 쓴 옆 모습의 사람이 이날 추모제에서 진행하고 있는 배기남 선생의 모습이다. Ⓒ강승혁
1. '노동운동가 고 유구영 동지 27주기 추모제'가 열린 마석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서 비가 내리는 가운데, 추모객들이 우산을 쓰고 고인을 기리고 있다. 정면에서 우산 쓴 옆 모습의 사람이 이날 추모제에서 진행하고 있는 배기남 선생의 모습이다. Ⓒ강승혁

 

 

고 유구영 동지와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같이 활동했던 신철영 선생(아이쿱 생협 창립 멤버)진보 정당의 약화가 안타깝다. 우리가 엄혹했던 시절에 잡혀서 맞고 고문당하고 하면서도 언젠가는 이걸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는데, 지금 현 정권이 엉망으로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걸 우리가 뚫고 나갈 수 있는 진보적인 힘이 강성하게 있다고 하면 훨씬 더 큰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안타깝게 생각한다힘이 있는 한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 하겠다고 고인 앞에 다짐했다.

 

세 번째 추모사에서 이재웅 전 민주노총 사무총장은 열심히 비정규 노동자 조직하고 투쟁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두운 곳에 비정규 노동자들이 너무 많이 형성되어 있어서 그런 부분들과 관련한 책임을 많이 느끼고 있다힘이 닿는 동안은 노동자들의 투쟁과 비정규 노동자들의 아픔을 함께 끌어안고 저도 열심히 활동해서 유구영 동지 추모식에서 늘 부끄럽지 않은 활동가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랜드 노조 위원장을 역임한 장석주 전 위원장은 고인을 추모하며 지금 이주 노동자들을 바라보면서 그래도 내가 또 활동해야 할 공간이 있구나라고 하고 또 새롭게 비정규직 조직하고 이런 삶을 살아가는 것들이 다시 30년 전에 만났던 유구영 동지와의 인연 아니었을까 싶다저도 이제 새로운 인연들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됐다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지막 유족 발언에서 고 유구영 동지의 아버님은 세월이 흐르고 철이 바뀌어도 사랑하고 또 사모하는 여러분들의 끈끈한 우정과 동지애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하시는 일 뜻대로 소중히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화답했다.

 

 

고 유구영 동지의 생전 모습 Ⓒ고 유구영 추모사업회
고 유구영 동지의 생전 모습 Ⓒ고 유구영 추모사업회

 

유구영 동지는 1957112일 충북 오창에서 출생했으며, 1976년 고려대 행정학과에 입학하여, 유신체제에 맞서 학생운동을 하였고, 1981년 졸업과 동시에 노동운동에 투신하였다. 1982년 보성금속, KC전기에 근무하 면서 노동자들의 현장조직화를 위해 힘썼으며 현장생활의 와중에서도 청주직업훈련원 전기과를 야간으로 이수하였다. 영등포 산업선교회 교육간사, 영등포 기계공단노조 사무국장, 대한중전기 분회장을 거치는 동안 동지는 민주노조운동을 일궈내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였다. 한편으로 노동자들이 지역적 연대를 위해 1990년부터 2년여 동안 서노협 선봉대장을 말았다. 동지는 탁월한 조직가이면서 동시에 인기 있는 교육가였다. 1993년 서노협 정책기획실장을 맡아 노조 운동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취약한 영역인 섬유와 유통, 영세사업장의 조직화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쏟았다. 사무국장을 지낸 영등포 기계공단노조는 공단 내의 영세사업장 노동자로 구성된 지역노조였다. 활동비 한번 제대로 못 받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동지는 웃음을 잃지 않았으며 운동에 대한 낙관과 일에 대한 열정, 자상한 선배이자 동료로서 근성 있는 불굴의 활동가상을 보여주었다. 간암 선고가 내려지기 전날 밤에도 동지는 민주노총의 핵심적 과제 중의 하나이면서 최대 관심사의 하나였던 노동자 정치세력화 방안을 만들기 위해 밤을 지새웠다. 동지는 민주노총의 정책기획국 부국장으로 활동하며 꿈에도 염원하는 민주노총 건설이 실현되고, 자신의 땀이 밴 그 조직이 이제 막 새롭게 활동을 펼치려던 199652, 민주노총 권영길 위원장을 비롯한 동지들과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새벽 225분경, 서른아홉 살의 짧은 생애로 운명하였다.[고 유구영 동지 묘소의 약력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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