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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황금보검, 키질석굴 벽화속의 보검과 쌍둥이, 코리아 경주의 황금보검. 추적 에피소드3 (이야기나 사건의 줄거리에 끼인 짤막한 토막 이야기). 부일사학 국사편찬위원회 (59)

이원환 전문 기자
  • 입력 2023.04.25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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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옛날 수도 알마티에서 차이나 제일 서쪽 우루무치 까지 869, 알마티에서 우루무치로 가는 길인 차이나 신장위구르자치구에 키질 석굴이 있다. 키질 석굴 69굴 벽화 속에 여성으로 보여지는 인물 3명 중 가운데 인물이 황금보검을 차고 있다. 벽화 속의 황금보검과 코리아 경주시내 한복판에서 발굴된 황금보검이 꼭 같다.

 

역사연구가 우창수 선생은 벽화 속의 여성이 코리아 삼신 할머니라고 설명한다. ‘가운데가 곰 할머니, 왼쪽이 호랑이 할머니, 오른쪽이 추(, 이리) 할머니라고 한다. [한사모] 한자는 우리 글이다(후편)-우창수/한뿌리사랑 세계모임 제34차 역사포럼_20171026 유튜브 1시간 3219초부터}

 

는 승냥이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三神(삼신) 할머니 중의 한 명이 麻姑(마고) 할머니라는 설명도 있다. 는 계집 ()에 옛 () 이다. 최초의 여성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한편 카자흐스탄 북쪽 보로보예에서 발굴된 보검 장식과 경주 황금보검의 보검장식 과 기본 모티브는 같다.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두 보검 장식은 3개의 태극 문양(계림로)3개의 검은 정사각형 문양(보로보에) 등에서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기본 모티브는 같았다. 특히 두 보검 장식에는 홍마노 등 유색 보석이 감장(嵌裝·금판 위에 청옥 등을 박은 알집을 또 다른 금판으로 만들어 붙여서 장식하는 기법)된 다음 테두리가 누금세공기법으로 장식된 공통점이 있었다. 이러한 양식의 보검은 중국 신장의 키질석굴 제69굴 벽화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벽화 등에서도 보인다.

 

[경주와 보로보에 쌍둥이 보검 장식카자흐스탄 길목의 문명을 만나다. 경향신문

2018.11.26.]}

 

중앙아시아의 ~ 스탄 (카자흐 스탄, 키르키즈 스탄 등) 국가에서 발굴된 유물과 인접한 차이나 신장위구르 자치구 키질벽화에 그려진 황금보검과 같은 황금보검이 동쪽 끝 코리아 경주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태양)을 쫓던 유목민족이 한반도 동쪽 끝까지 와서 멈추고 이미 살고 있던 농경 정착민족과 합쳐서 같이 살아온 것이 한반도의 역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다.

 

三神(삼신) 할머니는 사기 오제본기에 나오는 다섯 종족 중의 세 종족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사마천의 사기 제일 처음 오제본기 두 번째 문단이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부록 참조)

 

원래 염제 신농씨가 최고 권력자였는데 힘이 약해지자 헌원이 쿠데타를 일으켜 “ 2종류의 곰, 비휴(), 이리, 호랑이를 교육시켜 판천(阪泉)의 들판에서 염제(炎帝) (신농씨) 와 싸워이겨 최고권력자가 되었다. 신농씨 편이었던 치우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제압하여 황제가 천자, 최고권력자가 되었다.

 

2종류의 곰, 비휴, 이리, 호랑이는 동물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을 토템으로 하는 제후, 부락, 종족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教 熊 羆 貔貅 貙 虎 (웅 비 비휴 추 호)以 與炎帝 戰於阪泉之野

 

여기에 , 큰 곰, 貔貅비휴 () , 이리, 호랑이가 있음을 기억하자. 이를 현실적으로 번역하면 웅 비 비휴 추 호 다섯 종족을 끌어들여 염제 신농씨와 판천에서 싸웠다.” 가 되겠다.

 

 

부록

 

01-01[史記(사기) 本紀(본기)] 01. 五帝本紀(오제본기) (1/7) - 황제(黃帝)

swings81 2020. 1. 9.

 

헌원(軒轅) 시대에는 신농씨(神農氏)의 후대가 쇠퇴해져 제후들이 서로 침략 정벌하고 귀족들에게 포악하게 굴었으나 신농씨가 정벌할 수 없었다.

 

이에 헌원은 군사를 훈련시켜서 조공하지 않는 제후들을 정벌하니 모두 신하로 복종했다. 그러나 치우(蚩尤)는 가장 포학하여 토벌할 수가 없었다.

 

염제(炎帝) 신농씨가 제후들을 치려고 하자 제후들이 모두 헌원에게 귀의했다.

헌원은 덕을 닦고 군대를 정비하였으며, 오행(五行)의 기운을 다스리고 다섯 가지 곡식을 심는 등 만민을 어루만지고 사방의 토지를 측량했으며,

 

, 비휴, 이리, 호랑이를 등 맹수들을 훈련시켜 판천(阪泉)의 들판에서 염제(炎帝)와 싸웠다. 세 번의 전투 끝에 그의 뜻을 이루었다.

 

치우가 반란을 일으켜 황제의 명을 따르지 않았다. 이에 황제는 제후들의 군사를 징발해 탁록(涿鹿)의 들판에서 치우와 싸워 마침내 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 그러자 제후들이 모두 헌원을 천자로 받들어 신농씨를 대신하게 하니 이 사람이 바로 황제이다. 천하에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황제는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정벌하였고 평정한 곳은 떠나며 산을 개간하여 길을 개통하느라 편하게 지낸 적이 없었다.

 

사기 五帝本紀

 

2

黃帝者少典之子姓公孫名曰軒轅生而神靈弱而能言幼而徇齊長而敦敏成而聰明

 

3

軒轅之時神農氏世衰諸侯 相侵伐暴虐百姓而神農氏弗能征於是軒轅乃習用干戈以征不享諸侯咸來賓從而蚩尤最為暴莫能伐炎帝欲侵陵諸侯諸侯咸歸軒轅軒轅乃修德振兵治五氣藝五種撫萬民度四方教熊羆貔貅貙虎以與炎帝戰於阪泉之野三戰然後得其志

 

蚩尤作亂不用帝命於是黃帝乃徵師諸侯與蚩尤戰於涿鹿之野遂禽殺蚩尤而 諸侯 咸 尊 軒轅 為天子代 神農氏是為 黃帝天下有 不順者黃帝 從而征之平者去之披山通道未嘗寧居

신라 황금 보검이 왜 카자흐스탄에서? 한겨레 2019-01-12 에서 캡쳐 편집
신라 황금 보검이 왜 카자흐스탄에서? 한겨레 2019-01-12 에서 캡쳐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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