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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미터와 159미터, 천정대 · 낙화암. 추적 에피소드1 (이야기나 사건의 줄거리에 끼인 짤막한 토막 이야기). 부일사학 국사편찬위원회 (57)

이원환 전문 기자
  • 입력 2023.04.23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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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일 일요일, 평일처럼 일찍 일어났다. 422일 토요일 역사 유튜버 (유튜브에서 역사관련 이야기를 전문적으로 제작 방송하는 사람) ‘책보고와 촬영후 저녁 식사를 한 다음날이다.

 

사용자가 찾아본 유튜브 영상과 비슷하거나 참조할 만한 영상을 인공지능 등을 이용하여 유튜브 회사가 알려 준다. 역사 시리즈를 쓰는 필자에게 유튜브 회사가 권한 영상이다. “ [한사모] 한자는 우리 글이다(전편)-우창수/한뿌리사랑 세계모임 제33차 역사포럼_20170928 (마로니에 방송을 보게 되었다.

 

우창수 선생은 역사 모임에서 몇 번 만났고, 그의 매우 독특한 경험 ( 차이나 돈황에서 몇 년간 생활을 했고, 역사 문화재 촬영등 수집한 자료를 차이나 경찰에 뺏기고, 차이나 감옥생활도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때문에 왠만한 그의 동영상은 다 보았다. 이 동영상도 예전에 본 것이지만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로웠다. 그간 필자의 공력이 상승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나쁜 기억력을 애써 합리화했다.

 

서론이 길었지만,

우창수 선생은 방송에서 한서 위현전의 기록을 소개했다.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대목을 그대로 소개한다.

 

[漢 武帝東伐朝鮮 起玄菟樂浪 㠯 斷匈奴之左臂’(漢書』「韋賢列傳)라고 한 發言]

 

한나라 무제가 동쪽으로 조선을 정벌하여 현도, 낙랑을 세워서 흉노의 왼팔을 절단하였다이다. 조선과 흉노가 같은 편임을 명확하게 보여 주는 기록이다.

 

구글링 (구글을 통하여 정보를 수집하는 행위)를 하다 보니 역사의 고수 심제(도불원인) 이진우 박사가 이 대목을 수집하여 글을 올려 놓은 상태임을 알게 되었다. 다른 분들도 많이 올렸으며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중국정사조선전 > 사기(史記) > 조선열전(朝鮮列傳) 23에도 나와 있다. 우창수 선생의 동영상을 보면서 우창수 선생이 소개한 책을 두 권 주문했다.

 

연이어 우창수 선생의 다른 동영상 한자에 대한 오해와 진실2,한자는 우리 글이다,우창수 원장,국제도인연합회 1월 강좌, 선아리랑 을 보았다.

 

고려 말 이색의 아버지 이곡가정집이라는 문집에서 당나라가 신라로부터 역사와 글자 (漢字)를 가져갔다고 기록했다.”고 우창수 선생이 방송했다.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당 대목은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곡은 목은 이색의 아버지이다. ‘가정집초간본은 아들 이색()이 편집하고, 사위 박상충(朴尙衷)이 금산에서 1364(공민왕 14)에 간행하였다. (부록 참조)

 

가정집을 처음부터 훑어 보다가 멈춘 대목이 있다. 이곡이 부여성을 배를 타고 관광한 기록이다. (한국문집총간 > 가정집 > 稼亭先生文集卷之五 > 주행기 舟行記)

 

문제가 되는 대목이 부여성 호암(虎岩) 서쪽에 1,000척 높이의 절벽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주행기에는 낙화암, 조룡대, 천정대 모두 나온다.

 

네이버 부여시 낙화암, 조룡대, 천정대를 찾아 보았다. 근처에서 제일 높은 산이 옥천산으로 해발 158.7미터이다. 가정집에서 천정대의 높이는 1,000, 300미터, 물론 해발 고도가 아님으로 실제 해발고도는 300미터를 훨씬 넘을 것이다.

 

어쨌든 부여시의 천정대 보다 약 2배 높은데, ‘이곡 가정집에 나오는 부여성을 한반도 부여시로 그냥 비정하고, 소개를 하고 있다. 무언가 이상하다.

 

가정집에 나오는 지명을 가지고 바이두, 구글에서 찾아보았다. 찾기 힘들었다. 바이두에서 낙화암을 찾으면 충청남도 부여시로 나온다. 다른 지명은 없다. 천정대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도 심제 (도불원인) 이진우 박사가 연구하고 게시한 글을 보게 되었다. 부여성으로 추정되는 차이나 여러 지역을 제시했지만 결론을 내지 않았다. 이진우 박사도 추적했지만 추적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차이나 대륙에서 가정집에서 낙화암, 조룡대, 천정대로 묘사한 지형과 비슷한 지형이 있는 지방을 빨리 찾아내어야 하는데...

 

부여시를 가정집에 나오는 것을 인용하여 소개하고 있는 것은 대한민국 코리아의 잘못이다. 세밀하게 검토했다면 부여시 낙화암, 천정대가 가정집에 실린 부여성의 낙화암, 천정대와 같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누구하나 제대로 찾아본 적이 없는 것이다!

 

물론 유명한 분이지만 국사교과서에 실리지 않아 입시, 입사 시험문제 출제 가능성이 ‘0’ 퍼센트인 이곡가정집임으로 왜곡, 변조될 이유가 없다. 100척을 1,000척으로 잘못 기재했을 수가 있어 한문 원문을 보았다. () ()을 혼동할 가능성은 조금도 없다.

 

[ 조룡대에서 서쪽으로 5리쯤 가면 강의 남쪽 언덕에 호암(虎岩)이라는 승사가 있다. 거기에 암석이 벽처럼 서 있고 그 암석을 절이 등지고 있는데, 암석에 마치 바위를 타고 올라온 것 같은 호랑이의 발자국이 완연히 남아 있다.

 

그리고 호암의 서쪽에는 1000() 높이의 단애(斷崖) 있는데, 그 꼭대기를 천정대(天政臺)라고 부른다. 대개 이곳은 백제 시대에 하늘과 통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람을 등용할 때면 언제나 그 사람의 이름을 써서 이 천정대 위에 올려놓고는 군신이 조복(朝服) 차림에 홀()을 쥐고 북쪽 강안의 모래톱 위에 줄지어 엎드려서 기다리다가 하늘이 그 이름 위에 낙점한 뒤에야 뽑아서 썼다고 한다. 그 지방 사람들이 서로 전하는 이야기가 이와 같다. 호암에서 걸어서 천정대에 오르니, 대에는 옛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은 없고 오직 바위가 반공에 솟아 있을 뿐이었다.

 

謂之釣龍臺自臺而西五里許江之南岸有僧舍曰虎岩岩石壁立寺負岩岩有虎迹宛然若挐而上者岩之西有斷崖千尺崖頭曰天政臺盖百濟時得與天通每當用人書其名置臺上君臣具袍笏列伏于北岸沙渚以侯侯天點其名然後取而用之土人相傳如此自虎岩步至其臺臺無遺址惟石聳于半空耳此所謂扶餘之四詠]

https://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grpId=&itemId=BT&gubun=book&depth=5&cate1=A&cate2=&dataGubun=%EC%B5%9C%EC%A2%85%EC%A0%95%EB%B3%B4&dataId=ITKC_BT_0014A_0060_010_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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