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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구의 `평화의 섬 제주에서 로마까지` 60

문정기
  • 입력 2023.04.06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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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와 김건희)

평화의 섬 제주에서 로마까지 60

(비너스와 김건희)

그리스 북부 비스토니다 호수는 강릉 경포호와 같이 바다와 맞물린 담수호이다. 요즘 그리스의 날씨는 며칠 화창하고 며칠 비 오고를 반복하는데 이 날은 화창한 봄 일요일이어서 사람들이 많이 야외에 나왔다. 바다와 호수가 서로 입술을 마주 대고 찰랑거리며 희롱하는 모습이 정겹고도 애처롭다. 굽이치는 파도는 호수와 맞닿은 지점에 와서는 신비하게도 온순하게 살랑거린다. 호숫가에는 갈대밭이 무성하고 여러 종류의 새들이 서로 희롱하며 하늘을 치솟기도 하며 하강하기도 한다.

백조들의 사랑은 우아하기도 하려니와 평화롭기도 하다. 호수 위에는 양털 구름도 희롱하듯이 오고가는 것이 넉넉한 풍경이었다. 호수 주변의 나무들도 꽃을 피워 서로를 희롱한다. 올리브나무는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해 초라하다. 아직은 올리브 꽃을 피워 내기에는 일조량이 부족한 것이다. 나는 과연 이번 여정 끝에 노아가 날려 보낸 비둘기처럼 올리브 가지를 꺾어 물고 판문점에 짜짠하고 나타날 수가 있을까?

저 편에 세워진 허름한 빨간 버스에서 경적소리가 나더니 창문으로 나를 향해 흔드는 손이 보였다. 다가가니 당신을 튀르퀴예에서 봤는데 다시 보게 되어 반갑다고 악수를 청했다. 안에 부인과 딸도 미소를 지으며 반겼다. 버스를 캠핑카로 개조해 가족이 여행을 다닌다고 한다. 허름한 버스에 풍족한 행복이 가득 실린 것 같아 보기 좋았다.

조금 더 가다 조그만 팬션 같은 숙박업소가 있어 들어가 얼마냐고 했더니 35유로라고 했다. 적당한 가격이었지만 예산이 빡빡한 나는 한번쯤은 깎아달라고 부탁을 한다. 30유로 해준다고 하더니 안에 들어갔다 딸들과 같이 나오더니 25유로로 해주겠다고 한다. 딸들이 한국을 좋아해서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면서. 결국 BTS 덕을 또 본 셈이다.

굽이치는 파도에서 태어난 비너스는 물보라처럼 온몸이 새하얗게 빛났다. 비너스는 영어식이고 아프로디테는 그리스어 발음이다. 사랑과 미(美)의 신이다. 바다와 하늘이 서로 희롱하는 곳에서 태어난 비너스의 눈부신 미모에 모든 신들은 앞 다투어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아름다운 그녀와 눈길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욕망에 몸이 훌끈 달아올랐고, 상사병을 앓곤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밀로의 비너스’는 그리스 조각가 프라시텔레스가 미의 여신인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 여신상을 제작할 대 프리네라는 당시 1%의 헤타이라를 모델로 하여 조각하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춘부 등급은 미모 순으로 정해지지만, 미모 하나만으로 '상위 1%'에 들기는 어렵다. 프리네는 직업적으로 남자를 상대하는 헤타이라 신분이지만 당시 남성들만의 특권인 정치, 사회, 문화 등의 토론과 철학적 논의에 참여했다.

이오니아 지방 출신인 그녀는 미모가 출중하고 입담이 출중하고 수사학의 대가로 알려졌으니 페리클레스의 연설문을 작성할 정도였다. 프리네(Phryne)는 아마도 인류역사상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웠던 여인이었을 것이다. 뛰어난 미색으로 그리스 남자들을 사로잡은 그녀는 아무나 그녀를 가질 수는 없었다.

그녀는 품위를 철저히 유지했으며, 아무리 부유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절대 상대해주지 않았다. 그녀는 선택받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위치에 있었다. 프리네의 주변은 늘 그리스 최고의 엘리트들인 정치가, 철학자, 예술인들이 몰려들었고, 그들의 애간장을 타게 만들었다.

고대 그리스의 가장 성대한 종교행사로 바다의 신 포세이돈 축제에서 프리네가 발가벗은 몸으로 머리를 늘어트린 채 비너스를 모방하여 바다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퍼포먼스를 했다. 이것을 자신의 청혼을 거절한데 앙심을 품은 권력자가 신성 모독죄로 고발했다. 당시의 신성모독은 그리스 최고의 범죄이며 그것은 곧 사형을 의미했다.

하지만 미인이 어려움에 처하면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난다. 그녀의 애인 중의 한 사람인 철학자 히페레이데스가 변론을 자처하고 모든 논리력을 총동원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여기에 그림 한 점이 있다. 프랑스 화가 장 레옹 제롬이 그린 ‘배심원 앞에선 프리네’ 라는 그림이다. 그림을 보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백옥 같은 피부의 아름다운 여인이 무슨 이유인지 수많은 남성들 앞에서 가운이 벗겨진 채 부끄러운 듯 얼굴을 가리고 서 있다. 이것은 배심원들이 바라보는 앞에서 마치 신상 제막식 같은 연출이었다.

가운이 벗겨지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의 육감적인 알몸이 재판정에 드러나자 재판정은 순식간에 얼음조각이 되었다. 그녀는 슬쩍 당황하는 척하며 두 팔로 눈을 가린 그녀의 몸짓은 배심들에게 그녀의 몸을 마음껏 훔쳐볼 수 있게 만들었다. 여인은 본능적으로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취하고 있다. 모델이 가장 우아해 보이는 포즈로 체중을 한 쪽 다리에 실어 몸의 실루엣을 한층 돋보이게 만들어 준다. 소크라테스도 살려내지 못 한 법 앞에서 여인의 아름다움은 그녀를 살려냈다. 그녀의 알몸을 본 배심원들은 경탄을 금치 못하며 정신 나간 소릴 했다.

그리스인들은 ‘아름다운 것에 선함이 깃든다.’고 믿었다. 배심원들은 “저토록 눈부신 아름다움은 신의 의지를 담지 않고서는 도저히 탄생할 수 없는 것이다. 저 여인의 아름다움 앞에서 한낱 인간이 만들어 낸 법이 무슨 효력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아름다움은 선하고 무죄다.”

아름다워지기 위해서 얼굴을 성형하는 것을 트집 잡을 생각은 없다. 논문을 성형하고 경력을 성형하여 무속과 결합하여 어렵게 이룩한 민주화와 천신만고 끝에 만들어 가던 모든 남북 간의 평화적 진척의 시계를 되돌려 놨으니 그것을 한탄한다. -정리 j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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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 문정기

공학박사/과학문화평론가

전 국가과학기술위원

*본 기획기사는 강명구씨와의 협의에 의해 시리즈로 작성, 제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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