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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구의 `평화의 섬 제주에서 바티칸까지` 58

문정기
  • 입력 2023.03.31 05:34
  • 수정 2023.03.31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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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해의 석양)

 

평화의 섬 제주에서 바티칸까지 58

(에게 해의 석양)

밤새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더니 아침이 되어도 비는 계속 추적추적 내린다. 나는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짐을 싸서 유모차에 실으며 속으로 읊조렸다. 이건 말이지 순례야, 그것도 평화의 순례. 평화의 순례라고 나선 사람들도 많지만 자신의 모든 걸 걸고 나선 길, 마라톤 평원의 승전보를 기필코 알리고 쓰러진 그리스의 병사처럼 평화의 승전보를 알리고 쓰러져도 쓰러질 것이라 나선 길이야.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들이 빗물을 튕겨주고 가도 그래 이건 순례야! 손이 시리고 코가 얼얼해야 제대로 순례인 거지! 단지 아름다운 풍광이나 구경하며 감동을 먹으려고 있는 가슴이 아니야. 화려하고 고색창연한 궁전이나 사원에 하나씩 늘어나는 주름진 얼굴 들이밀고 사진이나 남기려고 나선 길이 아니라고. 인류가 다 같이 살아갈 아름다운 궁전, 한마음을 모을 사원을 찾아가는 순례길이지!

그리스로 넘어가는 출국사무실의 출국 도장도 받고 세관도 순조롭게 통과하고 실비 바르탕의 강 마리차 강만 건너면 되었다. 비바람 속에도 휘파람이 절로 나왔다. 지난 3년 반신마비가 되면서 혀도 마비가 되어 휘파람 소리도 잃어버리고 살았는데 들판으로 나온 지 6개월 만에 완벽하진 않지만 휘파람 소리를 다시 찾았다. 그런데 강 입구 초소에서 군인 둘이 나오더니 제지를 한다. 차들은 지나다니는데 사람은 지나가지 말라는 게 이해가 안 갔으나 군인들한테 항의해 보았자 소용없는 일인 걸 잘 알고 있었다.

다시 세관으로 나왔다. 세관 직원이 픽업트럭이 지나가면 잡아줄 테니 기다리라고 하여 비바람 부는 벌판에서 기다리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7시간을 기다리게 될 줄은 몰랐다. 춥고 배고프고 떨리는 7시간이었다. 중간에 픽업트럭이 한 대 지나갔지만 세관 직원의 부탁에도 막무가내로 안 된다며 지나갔다. 7시간 만에 버스가 지나가는 걸 세관직원이 이 사람 좀 태우고 국경까지 가라고 하니 자리가 없다고 안 된다고 하더니 세관직원이 올라가서 자리가 이렇게 많은데 태우고 가라고 하니 그제야 마지못해 나를 태웠다.

국경을 넘으면 보통 국경 마을이 있고 호텔이 있는데 여기는 마을도 없고 음식점만 하나 있었다. 전화기 심카드도 바꿔 끼워야하고 날은 어둑어둑해져 가는데 몸은 추위에 떨어서 피곤했다. 일단 음식점에 들러 샌드위치부터 챙겨 먹었다. 결국 밤 8시 30분이 되어서 숙소를 잡았다. 그리고 식당을 찾았다.

그리스는 서쪽으로 이오니아 해와 남쪽으로 지중해를 동쪽으로 에게 해를 면하고 있다. 서구문명의 요람으로 바다를 통해 선진 문명을 수입해 다시 문명의 꽃을 피웠다. 히타이트인들에게는 철기 문명을, 페니키아인들에게는 문자를, 이집트인들에게는 건축과 예술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민주적인 정치가 시작되었고, 인간 중심의 이성적 사고를 하였다.

 

오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에 눈이 시리다. 언덕을 넘자 푸른 에게 해가 보인다. 멀지않은 바다 한가운데 설산 사모트라키 섬이 보인다. 조금 더 달리다보니 빨강 기와지붕의 아름다운 해변 도시가 보인다. 알렉산드로 폴리스이다. 부왕이 멀리 원정을 떠나면서 16세의 알렉산드로스에게 섭정을 맡겼다. 이때 북방에서 쳐들어오는 적을 물리치고 그 도시를 알렉산드로 폴리스라고 명명했다.

오늘은 이번 여정 중 가장 추운 날씨다. 동남아시아와 인도는 남쪽 나라라 덥거나 쌀쌀한 정도였고 튀르키예와 그리스 등 나머지 나라는 지중해성 기후로 포근할 것을 예상했다. 예상 외로 3월 말의 온도가 0도까지 기온이 떨어진다. 11시가 되자 기온이 다소 올라가서 야외 까페에 사람들의 삼삼오오 모여서 차를 마시며 담소하기 시작했다. 어느 까페에선가 폴모리아 악단의 ‘에게 해의 진주’가 흘러나온다.

고대 그리스는 산이 많아 이동에 어려움이 많아 영토국가로 발전할 수 없었다. 그래서 큰 산 아래 중심을 잡고 도시별로 성벽을 세우고 도시국가로 발전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그리스를 하나로 묶는데 성공했다.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세상 끝까지 가보자고 페르시아, 인도까지 원정을 떠나 도시국가를 제국으로 팽창시키며 헬레니즘 문명을 탄생시켰다.

부왕 필리포스 2세는 어느 날 ‘부케팔로스’라는 명마를 데려다 훈련시리라고 했는데 마케도니아의 내로라는 병사들이 길들이는데 실패하자 어린 알렉산드로가 이 말을 길들였다. 그 모습을 보고 감동한 아버지는 ‘아들아 너한테 맞는 왕국을 찾아라. 마케도니아는 너에게 너무 좁구나!’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아들의 스승으로 아리스토텔레스를 모셔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드로스를 13세 때부터 3년간 각종 학문을 가르쳤다. 알렉산드로는 스승을 존경했고 “아버지는 나에게 생명을 주었으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훌륭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최고의 정부는 통치자들이 국민들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정부라고 믿었다.

이렇게 민주주의의 씨앗은 오래 전에 뿌려져서 피로 적시며 키워왔는데 지금은 민주주의라는 간판을 내건 일부 엘리트 계층과 자본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권력을 가진 정치체제를 말한다. 이건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워싱턴을 비롯한 글로벌 이슈이다. 그동안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수많은 전쟁 범죄와 인권유린을 저질러 왔다.

글로벌 노스(Global North)는 대량 생산, 대량 소비 사회를 가리키는 것이다. 제국적 생활양식은 비교적 선진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풍요로운 생활을 선사해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바람직하고 매력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글로벌 사우스의 사회집단과 지역에서 자행되는 수탈이 있다.

그동안 미국은 임의적으로 규칙을 만들어 이를 따르도록 하였고 이에 불복하는 나라는 악의 축이라고 비난하고 제재를 가하거나 응징했다. 우리는 제국의 몰락을 목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을 통해서이다. 미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전쟁을 준비해왔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이길 것이라는 계산에서 시작한 전쟁이 아니다.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던 경제제재를 통해서 러시아를 반신불수를 만들어 버릴 셈이었다. 그러나 너무 많이 사용해서 칼날은 무디어져 있었다. 경제제재를 받는 나라끼리 똘똘 뭉쳤다. 중국과 러시아, 이란이 손을 잡고, 미국에 감정이 안 좋은 브라질, 인도가 가세하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슬며시 여기에 가세하는 형국이다. 그리고 전 세계 인구의 75%을 차지하는 글로벌 사우스가 은근히 참여하는 형국이다. 미국의 허약한 하체가 만천하에 들어났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화해는 미국에게 치명적이다. 시리아 내전과 예멘 내전이 끝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마지막 석양빛을 돛에 가득 품고 미끄러져 들어오는 요트는 환상적이며 황홀하기까지 하지만, 제국의 지는 석양빛을 안고 한반도 근처에서 군사연습을 하며 안간 힘을 쓰는 항공모함은 처량하기만 하다.- 정리 jgm

 

전문기자 문정기

공학박사/과학문화평론가

전 국가과학기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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